"산 사람으로서 망자에게 해서는 안 될 일을 한 데 대해 분노를 느낀다." (임방규 통일광장 공동대표)
지난해 타계한 통일운동가이자 북한전문가였던 고 김남식씨 유가족들과 통일운동단체들이 김씨 묘역을 훼손시킨 혐의로 일부 보수단체를 고소·고발했다.
조국통일범민족연합남측본부,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 통일광장, 민족민주열사추모연대 등 회원 20여명은 25일 오전 서울 서대문 경찰청 앞에서 '통일애국지사 김남식 선생 묘역 훼손 보수단체 만행 규탄 및 공동 고소고발을 위한 기자회견'을 연 뒤 민원실을 통해 고소·고발장을 접수했다.
자유넷, 활빈단, 인천 HID(북파공작) 특수임무청년동지회 등 보수단체들은 지난 15일 경기 남양주시 마석모란공원 민족민주열사묘역에서 "위장간첩 묘비에 '통일애국지사'라는 문구를 쓸 수 없다"며 김씨 사진과 약력이 들어간 안내 표지판을 훼손시켰다. 다행히도 보수단체의 기습을 예상한 유가족들이 당일 묘비를 미리 치운 덕에 묘비는 훼손을 면했다.
"봉건시대에도 묘역 훼손은 금기돼었는데..."
통일운동단체들은 "분단 반 세기동안 모든 민중의 삶을 짓눌러왔던 반공·반북·반통일의 망령이 고 김남식 선생 묘역을 무참히 짓밟는 만행을 자행했다"며 "묘역 훼손 행위는 봉건시대에도 인륜에 반한다는 이유 때문에 금기됐던 것"이라고 성토했다. 이어 "묘역을 훼손하는 비열하고 저급한 행위는 국민들의 지탄을 피하지 못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오종렬 전국연합 상임의장은 "민족·통일을 위해 한 평생 헌신한 사람의 묘역을 공격하는 것은 사람으로서 해서는 안 될 용서받지 못할 일"이라며 "수구세력이 민중의 생존을 위협하는 테러행위에 다름 아니다"고 규탄했다.
임방규 통일광장 공동대표도 "우리 조상들은 적군의 장수라 해도 목을 자른 후에는 묘비를 만들고 장례를 치러줬다"면서 "김구 선생을 살해한 안두희의 묘소에 '애국지사'라는 글귀를 남겼어도 묘역만큼은 훼손시키지 않았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규재 범민련남측본부 의장은 "반인륜적인 작태는 대명천지에 용서받지 못할 것"이라고 밝힌 뒤 경찰의 철저한 수사와 엄중한 법처리를 촉구했다.
잇따른 '통일애국지사' 묘역 훼손, 통일단체 사무실에 계란 투척도
'애국단체'임을 자칭하는 일부 보수단체에 의해 '통일애국지사'들의 묘역이 훼손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HID(북파공작) 특수임무청년동지회와 대한민국 애국청년동지회 등 보수단체 회원들은 지난해 12월 5일 경기 파주 광탄면 보광사에 몰려가 경내에 조성된 '통일애국투사묘역 연화공원'을 훼손했다. 연화공원은 지난해 5월 실천불교전국승가회와 파주 보광사가 조성한 비전향장기수 공동묘역이다.
당시 HID 회원들은 쇠망치로 비석을 파손했다. 일부 회원들은 해머로 묘비를 부순 데 이어 미리 준비해간 붉은색 스프레이로 묘역 안내석에 '반역들의 무덤'이라고 쓰기도 했다.
보수단체 회원들은 또 지난 11일에도 전국연합과 범민련이 위치한 서울 용산구 동자동 금성빌딩 앞에서 고 김남식씨 묘역의 철거를 촉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당시 이들은 사무실 진입을 시도하고 전국연합 사무실에 계란을 투척했다.
한편, 고 김남씩씨는 1925년 충남 논산에서 태어나 해방 후 통일정부수립 운동에 참여했고 한국전쟁 이후에는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통일부, 국제문제조사연구소, 평화연구원 등에서 한국 현대사와 통일관련 연구활동을 계속해 왔다. 통일전문 인터넷신문인 <통일뉴스> 상임고문을 맡고 있던 지난해 1월 7일 80세의 나이로 타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