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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는 이름 때문일까요? 얼음을 무척 좋아합니다. 매점아줌마 앞에서 노래 부르고 받은 얼음을 들고는 저리 기뻐하네요.
여름이는 이름 때문일까요? 얼음을 무척 좋아합니다. 매점아줌마 앞에서 노래 부르고 받은 얼음을 들고는 저리 기뻐하네요. ⓒ 김미영
며칠 전 하루 휴가를 냈다. 특별한 일이 있었던 건 아니고 순전히 '찜질방'에 가기 위해서다. 지난번에 찜질방에 갔을 때 다음날 아침에 출근을 하려니 너무 힘이 들었던 경험이 있기 때문에 휴가까지 내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주말에 가자니 아이도 있는데 사람들이 너무 많을 것 같고 주중에 가자니 아침에 출근이 힘들고…. 더구나 이번엔 아이뿐만 아니라 여든이 넘으신 외할머님도 모시고 가기로 한 터였다.

퇴근하고 부랴부랴 집으로 갔다. 근처에 사정상 혼자 사시는 외할머니(진주할머니)께서도 이미 친정집에서 나를 기다리고 계셨다. 3대에 이어 이번엔 4대가 함께 찜질방에 가게 된 것이다. 나오는데 깜빡 잊고 카메라를 챙기지 않은 것이 생각났다. 그날따라 날씨도 춥고 해서 그냥 갈까 하다가 다시 집으로 들어가 카메라를 챙겼다. 사진을 찍으신 지 오래 되었을 할머니 사진을 찍어 드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여름이는 팥빙수에 너무 환호하며 즐거워 했지요.
여름이는 팥빙수에 너무 환호하며 즐거워 했지요. ⓒ 김미영
평일저녁이라 그런지 찜질방은 예상대로 사람이 많지 않았다. 일단 4대가 나란히 앉아 목욕부터 하고, 옷을 갈아입고 찜질방으로 올라갔다. 엄마는 삶은 달걀, 고구마, 귤 그리고 얼마 전 만드신 수정과까지 챙겨오셨다. 사실 찜질방 입구에는 '음식물반입금지'라고 써 있지만 그걸 지켜 음식물을 가지고 들어가지 않는 사람은 별로 없는 듯했다.

아이는 찜질방에 올라가자마자 고구마부터 집어 들었다. 나는 할머니께 드리려고 식혜도 사고, 지난번 아이와 약속한 대로 큼직한 그릇에 담아 나오는 팥빙수를 한 그릇 주문했다. 할머니는 차서 잘 안 드실 거라고 생각했는데, 달콤한 팥빙수가 맛이 있으신지 생각보다 잘(?) 드셨다.

여름이는 진주할머니를 참 좋아합니다. 먹을것이 있어도 먼저 잘 챙겨드리구요. 뽀뽀도 이렇게 잘 해드린답니다.
여름이는 진주할머니를 참 좋아합니다. 먹을것이 있어도 먼저 잘 챙겨드리구요. 뽀뽀도 이렇게 잘 해드린답니다. ⓒ 김미영
아이는 팥빙수 앞에서 기분이 좋은지 '진주할머니'와 '할머니' 입에 번갈아가며 팥빙수를 먹여 드리는 애교도 부렸다. 그 모습을 보며 사진을 찍고 있으니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찜질방에 서너 번 들어갔다 나왔다를 반복하고, 놓여 있는 간식거리도 먹고 하다보니 시간이 훌쩍 지났다. 할머니의 이런저런 모습을 사진에 담아 두려고 사진을 찍으니 할머니께서는 찍지 말라고 하신다. '늙고 볼품없는데 사진 찍어서 뭐 하느냐'고 하시면서… 그 말씀을 들으니 왠지 마음이 아팠다. 할머니의 팔십여 년 삶이 결코 평탄치 않았음을 알고 있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밤이 깊어지니 찜질방은 사람들이 많이 없어졌고, 여름이도 졸린지 하품을 하네요.
밤이 깊어지니 찜질방은 사람들이 많이 없어졌고, 여름이도 졸린지 하품을 하네요. ⓒ 김미영
밤이 깊어 주무시려는 할머니 옆에 바짝 다가가 누웠다. 갑자기 궁금한 생각이 들어 할머니께 여쭤 보았다.

"할머니, 할머니는 언제가 젤 행복했어요?"

"난 지금도 행복하다. 그래두 생각해 보면 고생스럽긴 했어도 갓 결혼했을 때가 젤 행복했지. 얼굴도 모르고 결혼했는데, 난 할아버지가 그렇게 좋았다."

"에이, 그래두 할아버지 바람피웠잖아~~."

"그랴~ 이 핼미가 바보 같아서 그런지, 글쎄 바람을 피워도 그냥 좋았어."

찜질방에 있는 안마의자인데요, 천원을 넣으면 작동합니다. 생각보다 한참 안마를 해주더군요. 할머니와 엄마도 안마를 받으셨어요. ^^
찜질방에 있는 안마의자인데요, 천원을 넣으면 작동합니다. 생각보다 한참 안마를 해주더군요. 할머니와 엄마도 안마를 받으셨어요. ^^ ⓒ 김미영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삼남매를 두셨다. 할아버지는 그리고서 다른 여자와 살림을 차리셨고, 그 사이에서 낳은 자식 셋까지 모두 여섯을 남겨두고 내가 세 살 되던 해에 돌아가셨다.

홀로된 할머니는 여섯 남매를 고생고생하며 키우셨다. 그런데도 할아버지가 좋았고, 그 시절이 가장 행복하셨다니….

새벽이 되어 남편도 가게가 끝나고 찜질방에 오고, 다음날 아침엔 친정아버지께서도 오셨다. 찜질방에서 그렇게 온전하게 밤을 지내고, 아침을 맞이한 건 처음이다.

사진을 자꾸 찍었더니, 할머니께서 찍지 말라며 돌아 앉으셨어요~
사진을 자꾸 찍었더니, 할머니께서 찍지 말라며 돌아 앉으셨어요~ ⓒ 김미영
아침이 되니 찜질방이 텅 비더니, 낮 시간이 되어가자 하나둘 다시 사람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우리는 오후 세 시가 되어서야 찜질방에서 나왔다.

나는 할머니께서 피곤하지 않으실까 걱정했는데 재미있었다고 하시면서 다음에 또 오자고 하셨다. 앞으로 몇 번이 될지 모르겠지만, 올 수 있는 한 많이 할머니를 모시고 찜질방에 오리라. 할머니는 찜질방보다도 많은 사람과 함께 있는 이 공간이 좋으셨던 것이 아닐까?

덧붙이는 글 | 할머니의 팔십평생 삶은 들어도 들어도 싫증나지 않습니다. 어떻게 저렇게 살아오셨을까 싶기도 하고, 듣다보면 화가 나는 일도 한두 가지가 아니지요. 지금 할머니께서 살고 계신 모습도 그렇구요. 자주 찾아뵈어야 하는데, 지금은 제 딸 여름이가 저보다 더 자주 진주할머니를 찾아뵙고 있는 형편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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