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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개 농민단체로 구성된 농민단체협의회 회장단이 25일 오후 국립경찰병원을 찾아 지난해 농민시위 과정에서 부상당한 전·의경을 위문하고 있다.
18개 농민단체로 구성된 농민단체협의회 회장단이 25일 오후 국립경찰병원을 찾아 지난해 농민시위 과정에서 부상당한 전·의경을 위문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위로를 느끼지 못했다. 병상을 찾아와 악수와 인사 몇 마디만 나누고 가는 게 말이 되나. 제사지낼 때 별 감정없이 절 몇 번 하고 마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사실 귀찮기도 하다" (전경 이장표씨)

농민들과 전·의경들이 만났다. 지난해 농민시위에서 부상당해 입원한 전·의경들을 농민들이 위로차 방문한 것이다. 전국농민단체협의회 소속 회원 18명은 25일 오후 과일, 떡 등 먹을거리를 모아 서울 송파구 가락동에 위치한 국립경찰병원을 찾았다.

그러나 전·의견들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전반적으로 냉담한 분위기 속에서 "인사치레가 아니냐"는 듯 얼굴을 붉히기도 했다. 시위에서 몸의 부상만큼이나 컸던 마음의 부상은 아직 낫지 않은 듯 했다.

"미안하다" 말에도 아물지 않는 마음의 상처

이날 농민단체협의회는 "순수하게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설날을 맞아 고향을 찾지 못하는 전·의경들의 아쉬움을 달래기 위한 것"이라고 방문취지를 밝혔다.

농민단체협의회 회원들은 이날 오후 4시경 경찰병원에 도착, 2층 세미나실에서 경찰병원관계자들로부터 부상당한 전·의경들의 상황에 대해 간략한 설명을 들었다. 서동엽 진료1부장에 따르면, 현재 전·의경 총 12명이 농민시위 때 다쳐 입원 중이다. 서 부장은 "한두 달 경과한 상황이라 치료는 완료단계다"고 밝혔다.

세미나실을 나온 농민단체협의회 회원들은 곧 5층 병동을 찾았다. 이 자리에서 이들은 "농민들이 시위를 하다보니 격하게 됐다, 미안하다" "이제 그런 일 없을 것이다" "농민들을 나쁘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빨리 부대로 복귀하길 바란다" 등 위로의 말을 건내고 빠른 쾌유를 빌었다.

하지만 전·의경들은 "진심어린 사과보다는 겉치레 인사를 하러 왔다"는 반응을 보였다. 무엇보다 농민단체협의회가 빨리 병원을 나서는 모습에 실망스런 모습이다.

이태훈 상경은 지난해 11월 농민시위 진압에 나섰다 목, 등, 허리 등에 중상을 입어 현재 국립경찰병원에서 2달여째 치료를 받고 있다.
이태훈 상경은 지난해 11월 농민시위 진압에 나섰다 목, 등, 허리 등에 중상을 입어 현재 국립경찰병원에서 2달여째 치료를 받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지난해 11월 15일 시위에서 30여명 정도에 둘러쌓인 채 각목, 쇠파이프 등으로 맞았다는 이태훈(23)씨. 그는 농민단체협의회 일부 회원이 취재 카메라 앞에서 위로의 말을 건네다 카메라가 돌아가자 말을 멈추고 재빨리 병실을 나서는 모습을 본 뒤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어 "말하지 않아도 아시겠죠"라며 농민단체협의회가 두고간 귤박스를 툭 치는 시늉도 해보였다.

이씨는 현재 목에 깁스를 했고, 허리·등·골반·발목 등에 골절상, 타박상을 입었다. 그는 "허리디스크는 평생 못 고칠 수도 있다는 말을 의사로부터 들었다"고 몸 상태를 설명했다. 이어 "농민들이 직접 찾아온 것은 폭력시위 사실을 인정한다는 말 아닌가"라며 "농민들이 우리를 아들로 생각했다면 쇠파이프나 각목, 병 등은 준비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성토했다.

같은 날 시위에서 돌에 맞아 어깨가 탈골됐다는 최원진(22)씨는 "실제 돌던진 사람이 아니라 높은 사람들이 대신 와서 사과하는 듯 해 기분이 썩 좋지만은 않다"고 털어놨다. 또 "제발 술먹지 말고 시위했으면 좋겠다"며 "술 때문에 폭력시위가 일어나는 듯한 착각이 일 정도"라고 말했다. 그는 또 "진심어린 사과를 하면 응어리가 풀어지겠다"고 말했다.

쇠파이프로 손등을 맞아 수술을 했다는 홍상완(21)씨도 "기분 좋을 리가 없다, 때려놓고 미안하다고 말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편치않은 마음을 전했다.

"진심어린 사과를 하면 응어리 풀어지겠다"

농민단체협의회는 이날 경찰병원을 방문하기 전 보도자료를 통해 "앞으로의 시위는 평화적으로 접근하도록 노력할 것이며 상호 사고의 전환에 동참하길 바란다"고 밝혔다.

지난해 12월 농민시위 때 쇠파이프에 맞아 발목 수술을 한 이장표(23)씨는 "매년 농민대회를 여는데 과격폭력시위만큼은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이태훈씨는 "시위현장에 가면 겁이 많이 나는 게 사실"이라고 털어놨다. 최원진씨도 "설 전에 찾아와 줘 고맙긴 했지만 지킬 건 지키자는 말은 꼭 전하고 싶다"고 밝혔다.

과잉진압으로 농민 고 전용철·홍덕표씨가 사망한 것은 경찰에 분명 책임이 있다. 그러나 많은 젊은 전·의경들을 다치게 한 폭력시위를 비판하는 여론 또한 만만찮다. 농민과 전·의경의 앙금을 풀기 위해선 무엇보다 평화시위 정착을 위한 대책마련이 필요한 듯하다.

전국농민단체협의회에는 농가주부모임전국연합회, 대한양계협회, 대한양돈협회, 생황개선중앙회, 우리마늘양파지키기전국운동본부, 전국버섯생산자협회, 전국새농민회, 전국한우협회, 한국관광농원협회, 한국농촌지도자중앙연합회, 한국민속채소생산자협회, 한국4-H본부, 한국사이버농업인연합회, 한국양록협회, 한국양봉협회, 한국오리협회, 한국포도회 등이 소속돼 있다. 전농은 지난 2003년 탈퇴, 이날 위로방문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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