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찢어진 시작노트 아래 시인은 절규했습니다.
찢어진 시작노트 아래 시인은 절규했습니다. ⓒ 여행자
지난 일요일(22일) 천상병 시인은 다시 살아났습니다. 대학로 동숭아트센터 동숭홀에서였습니다. 한평생 '거지'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가난한 생활을 보냈지만 직업을 물을 때마다 당당하게 시인이라고 외쳤던 천상병 시인은 극단 여행자의 연극 '소풍'에서 해맑게 웃고 있었습니다.

아내가 나가 돈을 벌어야할 정도로 찢어지게 가난했던 그였지만 아이 같은 웃음을 잃지 않던 생전 모습에서는 미소가, 시국 사건에 연루되어 안기부에서 고문 받으며 그가 자식처럼 아끼던 시작노트를 찢기는 장면 등에서는 관객석 곳곳에서 한숨과 탄식이 터져 나오기도 했습니다.

이 작품의 작가 김청조(61)씨는 천상병 시인이 작고하기 2년 전 겨울밤이 시인을 다시 '하늘'에서 '지상'으로 내려오게 했다고 말합니다. 안국동 버스정류장에서였습니다. 시인은 비틀거리며 걸어와 버스에 달려들었답니다. 꼭 차에 치일 것 같은 불안한 모습이었습니다. 김 작가는 버스는 서지 않고 '달아났다'고 그 당시 상황을 표현합니다. 그렇게 3대나 지나갔습니다. 시인은 극도로 초췌한 모습이라 노숙자로 오인 받는 듯했다는군요.

다음 버스가 왔을 때 김 작가는 버스의 몸통을 두드려 차를 세웠습니다. "이분은 중요한 분이니 잘 모셔야 해요"라고 버스기사에게 외쳤던 그. 쓰러질 듯 버스에 올라탄 시인은 그렇게 사라졌다고 합니다. 오랜 세월 시인의 모습을 보아왔지만 그렇게 처참한 모습은 김 작가에게도 처음이었습니다.

시인은 사람의 가슴을 쥐어뜯으려 김 작가 앞에 나타난 것 같았다고 당시를 회고합니다. 한참을 버스가 사라진 방향으로 멀거니 지켜만 봤던 김 작가는 언젠가 그에 대한 글을 써야겠다고 다짐했답니다. 그것이 작년이었고 마침내 연극 '소풍'은 김 작가에게 서울연극제 희곡상을 안겨 주었습니다.

자신은 떡을 썰고 아들은 글을 썼던 한석봉 모자의 이야기처럼 김 작가는 글을 쓰고 '한석봉' 아들 양정웅씨가 연출을 맡아 시인을 다시 살려냈다는 대목은 더욱 눈길을 끕니다. 아들은 이미 대사보다 몸짓, 행간의 의미에 더 초점을 둔 '이미지 연극'의 선구자로 평가받고 있는 연출가였기에 함축과 생략이 묘미인 천상병 시인의 시들과도 잘 맞아떨어졌습니다.

특히 찢어진 시작노트가 무대 전면을 가득 채운 가운데 시인은 가냘픈 몸으로 잃어버린 자식을 찾아 헤매듯 습작과 절규를 반복하는 장면은 압권이었습니다. 천 시인을 그 어떤 악조건 속에도 오로지 시만 썼던 '예술 순교자'로 생각한다는 작가와 연출가의 공동 인식이 읽혀졌기 때문입니다.

영화공부에 나선 김청조씨에게 '출발은 이제부터'였다.
영화공부에 나선 김청조씨에게 '출발은 이제부터'였다. ⓒ 박수호
김 작가는 요즘 부쩍 젊은이들과 많이 만나고 있습니다. 작년부터 직접 영화촬영을 배우고 있기 때문이라네요. '인생은 60부터'란 이를 두고 하는 말인 듯 싶습니다. 본격적으로 예술가들을 그린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그는 얼마 전 젊은이들과 단편영화를 완성해 자체 시사회를 갖기도 했답니다. 그의 처녀작을 볼 날도 얼마 남지 않았겠지요?

살면서 누구와 싸워 본 적이 없었던 그가 요즘 '싸움의 기술'을 익혔다는 말도 인상적입니다. 영화에 대한 열정은 누구 못지않은 그인지라 단편영화 실습작업 도중에 젊은이들과 의견 충돌이 잦았기 때문이었다네요. 하지만 그마저도 돌아서면 허허 웃을 수 있는 여유가 그에게는 묻어났습니다.

'아침은 매우 기분 좋다/오늘은 시작되고/출발은 이제부터다'라는 천상병 시인의 시 '아침'처럼 김 작가는 인생의 황혼기에 또 다른 아침을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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