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점심상을 치우고 얼른 밖으로 나갔다. 농사를 짓지 않으니 옥수수가 있을 리도, 전기밥솥에 밥을 하니 누룽지가 있을 리도 없다. 하니 튀겨 먹을 게 없다. 하지만 구경하는 데야 누가 돈 달라하지 않을 터. 고소한 냄새에 코라도 호사시킬 참이었다.
차 옆엔 벌써 동네아주머니 몇 분이 나와 계셨다. 연세 지긋하신 할아버지께서 차 위에 올라앉아 열심히 뻥튀기 기계를 돌리고 계셨다. 뒷집 할머니는 벌써 옥수수를 튀긴 모양이었다. 파란 비닐봉지에 노릇노릇한 강냉이가 수북하게 담겨 있었다. 앞집 영미엄마는 쌀을 튀긴 모양이었다. 하얀 쌀 튀밥을 한 자루나 들고 계셨다.
"애기엄마. 쌀이나 옥수수 좀 튀겨 먹어요."
"옥수수는 없고 쌀은 튀겨 먹으려니 아깝고. 이럴 때 누룽지라도 튀겨 먹으면 좋을 텐데. 그나저나 할아버지 연세가 어떻게 되셨어요?"
"일흔 넷이야."
"힘 안 드세요? 이렇게 동네마다 돌아다니시면서 뻥튀기 하시려면 힘드시겠어요."
"일이라고 생각 안 하고 운동이라고 생각하니까 힘 안 들어. 뻥튀기는 이 기계도 요즘은 자동으로 하는 게 있어도 난 일부러 이렇게 돌려. 팔운동 한다 생각하고."
"손님들은 많아요?"
"없어. 요즘 세상에 누가 집에서 강정 같은 걸 만들어야지. 돈만 들고 나가면 형형색색으로 잘 만들어 놓은 강정들이 지천이잖아. 그러니 나 같은 사람은 그저 기름값하고 용돈벌이나 하는 거지 뭐."
늦은 점심을 드신 아주머니 몇 분이 옥수수며 쌀을 들고 나와선 깡통에 차례차례 담았다. 할아버지는 열심히 기계를 돌리시고 '뻥'하는 소리와 함께 고소한 냄새를 실은 하얀 연기가 피어올랐다. 자루에 노릇노릇한 강냉이와 쌀 튀밥이 수북하게 튀겨져 나왔다. 너나 할 것 없이 구경꾼인 내게도 한주먹씩 나눠 주셨다. 따끈따끈한 것이 입에 들어가자마자 사르르 녹았다.
슬그머니 집으로 들어와 쌀을 조금 담아 가지고 나왔다. 우리 세 식구 몇 끼를 해먹을 쌀이었다. 하지만 쌀 튀밥을 만들어 아버지께 좋은 군입거리로 드리고 싶었다. 또 딸아이도 좋아할 것 같았다. 한 깡통의 쌀이 한 자루의 튀밥이 되었다.
아직도 따끈따끈한 고소한 튀밥을 한주먹 들어내어 아버지께 드렸다. 아버지는 한입 가득 튀밥을 밀어 넣으셨다. 꽤나 고소하신가보다. 우물거리시느라 말도 못하시는 아버지의 얼굴 위로 고소한 웃음이 연신 피어난다.
어린이집에서 돌아온 딸아이가 한 자루나 되는 쌀 튀밥을 보고선 좋아서 어쩔 줄 모른다. 한양재기 퍼서 안겼다. 작은 손으로 오므려 쉴 새 없이 입으로 밀어 넣는다. 하지만 입으로 들어가는 것보다 흘리는 게 더 많다. 하긴 쌀 튀밥은 손으로 퍼 먹는 게 또 제격이다. 딸아이도 어지간히 맛있나보다. 늘 간식으로 먹던 빵은 거들떠도 안 보니 말이다.
뻥튀기 할아버지는 서너 시간 동네에 머무르셨다. '뻥, 뻥'하는 소리가 쉴 새 없이 터져 나왔다. 온 동네가 다 고소했다. 할아버지 덕분에 이집 저 집 할 것 없이 고소한 강냉이며 쌀 튀밥을 실컷 먹게 됐다.
굳이 장에까지 가는 번거로움을 덜어 주셨다며 아주머니들은 할아버지께 고마워하셨다. 내년에도 할아버지께서 건강한 모습으로 우리 동네를 찾아 와 온 동네에 고소한 냄새를 피워 주셨으면 싶다. 지금도 내 입에선 고소함이 사르르 녹아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