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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도 좋고 담 밑에 있던 큰 돌은 아이들 놀이터였습니다. 이젠 시골마을에 숨바꼭질 할 동무나 있을까 모르겠네요. 가족끼리 한번 해볼까요?
나무도 좋고 담 밑에 있던 큰 돌은 아이들 놀이터였습니다. 이젠 시골마을에 숨바꼭질 할 동무나 있을까 모르겠네요. 가족끼리 한번 해볼까요? ⓒ sigoli 고향-맛객
아쉬운 설날이 어둑어둑 짙은 어둠 속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숨바꼭질 할 사람 요리요리 붙어라. 숨바꼭질 할 사람 요리요리 붙어라."
"야 색끼들아 요리 붙어."
"아따매…. 얀년아, 요짝으로 붙으란 말이다."

맨 먼저 "숨바꼭질 할 사람 요리요리 붙어라"를 외치며 손을 쥔 채 두 번째 손가락 검지를 하늘로 치켜 올리는 사람 앞으로 서너 살 터울 아이들이 몰려들어 한 명 두 명 탑을 쌓아올리자 예닐곱이나 된다.

손을 펴서 앞뒤로 엎기를 반복하여 "소다이 소다이 멸치!" "소다이 소다이 멸치!"로 한명씩 줄여나간다. 마지막 두 명이 남으면 '가위바위보'로 술래를 정했다.

"성열이! 성열이 너다."
"에이~"
"욜로 허자. 이 독뎅이 있지?"
"알았어."

사돈댁 막둥이 성열이는 세살 아래지만 나중에 일찍 학교에 들어가 1년 후배가 되었다. 두 손을 포개 눈에 가린다.

"머리카락 보일라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꼭꼭 숨어라."

다들 나무가 아닌 담장 밑에 있는 큰 돌임을 확인하고 후다닥 뛰어 숨기 바쁘다. 마루 밑으로 숨는 아이, 급한 김에 장독대 뒤에도 숨다가 달가닥거리는 뚜껑 소리에 주인에게 쫓겨나기도 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담을 타고 오르다 돌담이 와르르 무너지기라도 하면 나 몰라라 도망을 치기도 했다. 무슨 숨바꼭질 한번 하는데 잡히면 곤장이라도 맞는 것으로 생각한 건지 숨는 방법과 장소도 기상천외하고 기발하다.

주위가 잠잠하다. 홀로 남겨진 아이는 인기척이 없어도 한 번 더 확인을 해야 한다.

"다 숨었어? 글면 찾으로 간다~"

두리번거려도 아무도 없다.

'다들 어데로 숨었간디 한나도 없댜?'

그 때였다. 해섭이가 바짝 옆에서 숨을 죽이고 앉아 있다가 술래가 어둠 속을 헤매고 있을 때 쏜살같이 다가와 쥐도 새도 모르게 찍고 만다.

"젠!"
"성, 뭐여 시방!"
"내가 어쨌간디…."

허탈할 수밖에 없다. 코앞에 두고 놓치다니! 살금살금 발소리를 죽여 사립문 안을 쳐다본다. 뒤가 구리듯 자꾸 켕겨서 멀리 가지 못한다. 언제 우르르 몰려와 찍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발목을 잡고 말았다.

그 시각 나는 처음엔 사립문 앞에 쭈그리고 있다가 안 되겠다싶어 우리집 정지 나무청에 들어가 조청에 인절미를 발라 먹고 있었다. 성호는 조금 멀다싶은 지네 집 방에 들어가 밥을 먹고 있다. 이제 떡을 하나 손에 들고 헛간 앞에서 나갈까 말까를 저울질하고 있다.

그뿐인가. 병문이는 외양간 위 짚더미 단 속에 파묻혀 있다. 이러니 사람이 보일 리 없었다. 해섭이는 성열이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같이 찾기도 하고 놀려대기까지 한다. 만만한 것이 있기 마련, 걸음 느리고 숨을 곳을 쉽사리 찾지 못한 어린 동생들과 여자애들이다. 미화와 순희가 대문 뒤에 숨어있었다.

"깜짝이야! 너너…."
"야아~"

돌부리가 있든 아이들이 낮에 광을 내어 반들반들한 얼음이 있어도 앞뒤 보지 않고 마구 뛴다. 세 사람이 뛰다가 미화가 귀퉁이로 밀려 울음을 터트린다. 성열이와 순희가 달음박질을 했다.

"야 연놈들아 천천히 다녀. 글다 넘어지겄다."

열서너 살이 넘는 선남선녀들이 마땅히 방을 마련하지 못해 동네를 돌며 어슬렁어슬렁 서성이고 있다. 이웃 동네에서도 동창끼리 원정을 왔지만 마치 집 잃은 강아지 꼴이다.

"미화 순희 젠! 니 둘은 죽었어."
"헉헉헉"

순희는 아쉬운 듯 바위 주변에서 헐떡거리며 숨을 고르고 있다. 미화는 한참을 뒤쳐져 씩씩거리며 못내 따질 기세다. 그래봐야 일부러 밀친 것이 아니니 별무 소용없는 짓이다. 여자애들을 찾으러 간 사이 나와 병문이, 성호, 병용이가 차례대로 망을 보다가 안전하게 찍어서 첫 판은 싱겁게 끝나고 말았다.

둘째 판이 시작될 무렵엔 아이들 숫자가 스무 명 가까이 불었다. 동네가 떠나갈 듯 시끄럽다. 새로 합류한 아이들과 죽은 두 아이가 술래를 정하느라 다소 시간이 지체됐을 뿐 분위기는 한껏 고조됐다. 이제 술래는 양님이가 되었다.

"머리카락 보일라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꼭꼭 숨어라. 다 숨었냐?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무궁화 꽃 절구는 숫자가 많아질 때 당연히 시간 여유를 주기 위해 부르도록 약속이 되어있었다.

다들 어디로 갔을까? 쥐만 한 마리 담 벽을 타고 들어가다 말고 꼬랑지를 살살 휘저을 뿐 아무도 없다. 그래도 집히는 구석이 있는지 은신처를 찾아 진지를 떠난다.

숨는 데는 한 가락씩 하는지라 내를 건너 논두렁 밑에 숨는 아이, 나무더미 속에 머리를 처박고 있는 아이, 산몰랭이까지 가서 내려올 줄 모르는 아이, 뜨끈한 방 아랫목에 들어가서 잠자고 있는 아이도 있다. 더러는 재래식변소에서 일을 보는 척 하다가 엉겁결에 통 빠진 아이도 있었다.

맘대로 기웃거릴 수도 없는 것이 집집마다 개 한 마리씩은 길러서 언제 공격해올지 몰라 한없이 망설이는 게 아이들이다. 다시 돌아와 주변을 지키다가 안 되겠다 싶었는지 회관 옆 병주네 집으로 들어간다. 아랫방에 평소엔 사람 소리가 들려야 하는데 이상하리만치 조용하다. 밖엔 신발 하나 보이지 않는다.

"병주야. 병주 있냐? 거시기…병주 엄마 병주 없다요?"

이렇게까지 공을 들였으면 그 중 한명이 아무 대답이나 헛기침을 할 수도 있으련만…. 벌써 여기서 머뭇거린 시간이 꽤 지났으니 양님이는 늘 이런 일이 허다하다는 걸 아는 터라 방문을 열기로 작정을 했다.

이불 속에 고무신이나 운동화를 들고 들어간 그 때 그 친구들은 지금 어른이 되어 추억을 곱씹으며 살 겁니다. 이번 설에 만날 수 있을까요?
이불 속에 고무신이나 운동화를 들고 들어간 그 때 그 친구들은 지금 어른이 되어 추억을 곱씹으며 살 겁니다. 이번 설에 만날 수 있을까요? ⓒ sigoli 고향-맛객
긴장하여 문을 열자 어슴푸레한 빛에 유난히 이불이 잔뜩 배가 불러있다. 엎드려서 수사관이 솜이불을 확 뒤집자 이불을 덮어쓰고 네 명이나 있지 않은가.

"야~"

고무신을 든 채 이불 속에 있었던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나왔다. 꽁무니가 빠져라 뛰는 술래와 뒤따르는 아이들이 범벅이 되었다. 시시각각 가까워지자 서로 옷을 당기며 할퀴기까지 한다. 육박전이다.

맨 먼저 병용이가 여유롭게 들어와 발로 찍었다. 나머지 셋도 헤드퍼스트슬라이딩을 감행해 가까스로 위기를 모면했다. 형근이는 걸음걸이가 크고 동작이 굼뜨다. 속도도 문제지만 한 걸음 디딜 때마다 발이 허공에 오래 머물러 있다.

벌써 대다수는 돌아와 술래인 양님이는 울상이 이만저만이 아니라 형근이 꼬투리를 잡을 심정으로 한마디 했다.

"내가 먼처 찍었잖아."
"뭔 소리야. 야, 성호야 누구여?"
"양님이 니가 늦었당께."

딱 한명, 용기는 집에 갔다가 어머니께 붙들리는 통에 한 판이 또 끝이 났다. 숫자가 많으면 쉽게 찾을 것 같기도 하지만 반대로 정신이 더 없어 한명도 못 잡고 마는 일도 자주 있었던 일이다.

이제 술래에게 벌을 주는 차례다. 스무 살이 넘는 형, 누나들은 이미 누군가 집으로 예약된 듯 연애하는 느낌이 물씬 풍긴다. 더러는 대여섯이 팔짱을 끼고 걷기도 하고 몇몇은 얼굴이 불콰하고 코맹맹이 소리로 바뀌었다.

한명도 못 찾았을 때는 술래를 엎드리게 한다.

"여우야, 여우야 뭐하니?"
"잠잔다."
"잠꾸러기!"
"여우야, 여우야 뭐하니?"
"세수한다."
"멋쟁이!"
"여우야, 여우야 뭐하니?"
"밥 먹는다."
"무슨 반찬에?"
"개구리 반찬에."
"죽었냐 살았냐?"
"죽었다."
"와!" 하고는 여럿이서 등짝을 마구 두들겼다.

몰매를 맞은 양님이는 안 그래도 헝클어져서 살았는데 머리카락이 더 나풀거려 미친 듯이 보였다.

"나 안 할거야. 니기들끼리 해."

그렇게 해서 양님이는 구경을 하다가 집으로 갔다. 달리기 꽤나 했던 숨바꼭질은 이날 하루로 끝나지 않고 3월초까지 지속되었다. 고무신 바닥이 미끄러워 얼마나 자주 넘어져 무릎이 까졌는지 모른다.

덧붙이는 글 | 5년 째 어릴 적 추억을 퍼 올리다가 아쉬워 고향신문 시골아이 고향(www.sigoli.com)을 이번 설을 맞아 창간했습니다. 많이 오셔서 축하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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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환은 서울생활을 접고 빨치산의 고장-화순에서 '백아산의 메아리'를 들으며 살고 있습니다. 6, 70년대 고향 이야기와 삶의 뿌리를 캐는 글을 쓰다가 2006년 귀향하고 말았지요. 200가지 산나물을 깊은 산속에 자연 그대로 심어 산나물 천지 <산채원>을 만들고 있답니다.도시 이웃과 나누려 합니다. cafe.daum.net/sanchaewon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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