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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농기계 창고로 쓰이는 곳입니다. 이 곳에 들어 있던 농기계는 모두 파손이 되었고 사용할 수가 없었습니다.
ⓒ 김경건
정읍역에 도착한 것은 12시 30분쯤이었다. 아침끼니를 거르고 출발을 하다 보니 점심 생각이 간절했다. 그래서 다른 분들께 양해를 구하고, 식사 대접을 하기로 했다. 이유는 너무 고맙기도 했지만, 아직 어려보이는 친구들이 누군가의 힘이 되어 준다는 생각에 이유 없이 감사했기 때문이었다.

정읍역 앞 상가를 이리저리 둘러보다 순대국밥 집에 들어가서 순대국밥을 시켰다. 이때 가장 먼저 의견통일이 이루어졌다. 식사는 “순대국밥!!” 정말이지 서울이나 수도권에서 먹는 음식과 아마 많은 부분에서 차이가 있을 것이다.

음식이 허름해 보이긴 했지만, 역시 시골에서 먹는 맛이란 다른 어떤 곳에서 먹는 음식보단 가장 좋았던 것 같았다. 식사를 하는 동안 식당주인 어르신께 흥덕면 사무소 가는 길을 여쭈어 보았다. 어르신께서는 눈난리가 났는데, 흥덕면에 무엇을 하러 가냐 하는 질문이 되돌아왔다.

물론 우리가 자원봉사를 하러왔다고 하자, 어르신의 얼굴에서 야릇한 표정 찾아볼 수가 있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서울에서 자원봉사를 하러 정읍까지 찾아온 사람이기에 생각지도 못한 손님을 만난 듯하셨고, 가슴 깊이 우러나오는 표정은 어찌해도 감출수가 없으셨던 모양이었다.

식사를 마치자 흥덕면으로 가는 버스는 어디서 타야하고, 어디서 어떻게 가라 세세히 알려주시곤 마지막 한마디를 하셨는데, 그 말씀 한마디가 참 고마웠다. 자원봉사 끝나면 돈 안 받을 테니 식당에 다시 들려 꼭 들려서 밥 한 끼 먹고 가라하시는 당부를 하셨다. 시골의 인심이 아닌 사람 가슴 속에서 피어오른 사람의 향기처럼 드렸다.

버스를 타기 위해서 한참을 헤매고 돌아 다녔다. 분명히 XX약국 앞에서 버스를 타면 된다고 하셨는데, 도무지 XX약국을 찾을 길이 없었다. 그래서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 주위를 둘러보던 중, 식당 바로 옆에 모퉁이를 돌아서니 XX약국이 있었던 것이었다. 한참을 걷고 헤매다보니 엉뚱한 시간만을 허비 한 것 같아서 최대한 빠른 시간에 흥덕면에 도착할 궁리를 하게 되었다.

먼저 택시를 타고 들어갈까?, 직행버스를 타고 갈까? 아님 시내버스를 타고 갈까? 시내버스를 기다리며 서로 이야기를 하던 중 택시는 비용이 너무 비싸서 그만두기로 했고, 직행을 타기로 했다. 직행버스를 타고 흥덕면에 도착해 흥덕면 주변에 내린 눈의 높이를 측정해보았더니 당일 도착 당시까지 녹고 남아 있는 눈의 높이가 무려 70Cm나 되었다. 봉사자들끼리 얼굴을 서로 쳐다보며 할 말을 잊었다.

흥덕면사무소에 도착해 당일까지 도움을 주셨던 면장님과 김모씨의 얼굴이 보고 싶었던 까닭에 누가 누구인지 묻고 서로 인사를 건네고 당일까지의 피해상황을 이야기로 들을 수 있었다. 피해상황은 최악의 상황은 아니었다고 했지만, 한 번도 그렇게까지 내린 눈을 본적이 없었다고 했다.

한참 면사무소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후포리 이장님께서 찾아 오셨다. 오랫동안 기다리시다 주변에 일을 보시고 자원봉사자들이 도착했다는 연락은 받고서는 면사무소로 다시 돌아오셨던 것이다. 얼마나 반가와 하시던지 오래전 잃어버린 형과 동생이 다시 만나는 듯했다.

그만큼 흥덕면 지역과 부안 지역은 한꺼번에 내린 눈 폭탄으로 인해서 모두가 쑥대밭이 되었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마을로 들어가기 전 후포리 이장님께서는 자원봉사자들에게 장화 한 켤레씩을 선물해 주시면서 찾아와서 정말 고맙다는 인사를 하셨는데, 집으로 돌아오는 날까지 이장님께서 자원봉사자들에게는 아주 큰 힘이 되어 주셨다.

▲ 처음 도착한 날 자원봉사자들이 농기계창고 철거를 위해 제설작업을 하고 있는 모습을 찍어보았습니다.
ⓒ 김경건
마을에 도착해 바로 작업복으로 갈아입곤 첫날 첫 삽을 뜰 곳을 소개 받았다. 김 용환 어르신 댁이었는데, 어르신 댁의 피해 상황은 비닐하우스 6동정도가 파손 되었고, 비닐하우스에 보관 중이던 농기계 모두 파손되었다. 그 댁의 어르신께서는 무릎이 좋지 않아서 얼마 전 치료를 받으셨기 때문에 피해복구는 엄두도 못하고 계셨던 것이었다.

일단 농기계 창고로 사용되던 비닐하우스를 철거하기로 했다. 창고로 들어가는 길이 얼마나 험하던지, 처음 발을 딛었던 곳이 있었는데, 첫발을 디딘 곳이 허벅지까지의 높이가 차는 곳이어서 놀라울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눈이 많이 와도 이렇게 까지 왔겠느냐 싶었지만 예상과는 달리 더 깊이 빠지는 곳도 있었다.

▲ 눈이 어느정도 치워지고 겉 천막을 벗겨내려 했지만, 벗겨지지 않아 이날 작업은 눈을 치우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습니다.
ⓒ 김경건
자원봉사자들이 눈 속을 허우적거리며 농기계 창고로 향했다. 비닐하우스로 된 창고는 말 그대로 눈 폭탄에 내려앉을 꼴이었다. 일단 모두가 제설작업은 처음이었고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라서 창고위에 쌓여있는 눈부터 치우기 시작했다. 반나절정도 눈을 치우고 창고위에 씌워진 천막을 거두어 내려했지만, 꽁꽁 얼어붙어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모두가 달려들어 한꺼번에 힘을 써봤지만 도무지 해결방안이 나오질 않았다.


그래서 다음 날 다시 작업을 하기로 하고 하루 일과를 마무리해야 했다. 그리고 자원봉사자들끼리 저녁을 해결하기 위해서 “총각들만의 저녁식사”를 준비하려 할 때, 이장님께서 마을회관으로 찾아 오셨다. 저녁식사를 하라고 찾아오신 것이었다. 그래서 식사는 자원봉사자들끼리 하기로 했다고 하니 그럴 수 없고 이미 준비된 식사를 물릴 수가 없으니 당장 모두 따라 나오라고 하셨다.

식사 준비는 처음 자원봉사 활동을 시작한 어르신 댁에서 '물메기'로 찌개를 끓여 주셨는데.. 아주 맛있었고 인상 깊은 맛을 느끼기도 했다. '물메기'라는 고기는 서울에서는 눈뜨고 찾아 볼 수 없는 것이 바로 '물메기'라는 고기라고 하셨다. 난생 처음 먹어보는 물고기 찌게반찬과 집에서 직접 담그신 복분자술을 내오셨는데, 그 맛이 아주 일품이었다.

▲ 짧은 해를 뒤로 하고 마을회관으로 돌아가는 자원봉사자들
ⓒ 김경건
어르신께서 복분자술을 따라주시며 하신 농담으로 하신 말씀이 있는데, “복분자술은 요강을 깨는 술이니 마을회관 변기에 일을 볼 때 정확하게 조준을 잘해야 한다”는 신신당부를 하셔서 밥을 먹는 동안 모두가 웃음을 참아야만 했다.

저녁을 배부르게 얻어먹고 마을회관으로 돌아오는 길에 하늘을 바라보니 어렸을 때 시골에서 바라보던 밤하늘의 풍경에 가슴 깊은 곳에 우러나오는 감탄사가 저절로 흘러 나왔다. 금방이라도 쏟아질 듯 한 별빛, 그리고 짙은 군청색으로 물든 하늘엔 오로라 같은 그림들이 하늘에 그려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참 아름답고 멋있는 곳이기도 했다.

다음 편에 계속...

덧붙이는 글 | 폭설피해지역 자원봉사기의 제목을 “별빛이 밝게 빛나던 곳을 떠올리며” 라고 지은 이유를 모르셨다면 지금 이글의 마지막 부분에서 그 해답을 찾으실 수 있습니다. 공해가 없는 시골 그곳의 하늘에는 별빛이 선명하게 보였고 또 그곳의 밤하늘의 기억이 남아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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