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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은 논에 말입니다. 가장 큰 논을 걸어보니 고작 서른 걸음입니다. 더 작은 논은 다섯 걸음도 되지 않습니다. 더구나 여기저기 돌도 있습니다. 그 작은 논에 큰 바위들까지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그러니 논은 더욱 작아집니다. 2-3평도 못 되는 논에 바위까지 있으니 이런 곳에 누가 농사를 짓겠습니까?
너무 작아서 웬만한 농기계 한 대가 들어갈 수도 없는 논입니다. 요즘처럼 대형화된 기계들이 넘치는 세상에 기계 하나 크기도 못 되는 논이 있으니 말입니다. 국제경쟁력이 없는 농업은 비전이 없다고 하는 사람들이 보면 콧방귀를 뀌겠죠. 저러니까 한국 농업이 비전이 없다고 말입니다. 저런 것은 빨리 집어치우고 다른 일을 해야지 저 작은 논에 무슨 놈의 벼농사냐고 호통이라도 칠 것 같습니다. 몇 만 평 논도 작아서 문제라는데 말입니다.
하지만 제 눈에는 작은 논은 그저 농사를 짓는 논으로만 보이지는 않습니다. 커다란 바위와 어울려 삼 층으로 이루어진 계단식 논에는 무려 다섯 개의 논과 두 개의 밭이 자연과 어울려 하나의 정원처럼 배치되어 있습니다.
인간의 손이 자연에 더해질수록 직선이 늘어난다고 합니다. 도시는 그런 면에서 직선의 세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인간의 손으로 만든 저 작은 논은 전혀 다른 모습입니다. 자연이 허락한 대로 층계를 이루고 꺾여 있으며 바위 함께 공존합니다. 그래서 자연과 어울리는 하나의 잘 꾸며진 작품처럼 보입니다.
만약 저 작은 논이 경쟁력이 없다는 이유로 농사를 짓지 않는다면 저 논은 점점 형태를 잃어버리고 잡초가 우거진 삭막한 풍경이 되어, 지금의 아름다운 모습은 볼 수 없을 것입니다. 누가 다시 저 작은 논에 농사지을 생각을 하겠습니까? 국제 경쟁력이 있어야 하고 규모와 이윤이 많아야 하는데 말입니다. 저런 작은 논에 농사지을 만한 소박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한 사람이나 있겠습니까?
우리 농업은 자급자족을 목표로 이룩된 것입니다. 이것이 자본의 논리에 의해 좌우될 때, 저런 작은 논에 농사를 짓는 소농은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 현재 농업인구는 1960년대 58%에서 1980년 28%로, 1990년 15.5%로 2000년 8.6%로 감소하였습니다. 규모화를 위한 정부의 노력이 결실(?)을 맺은 것입니다. 하지만 현재 WTO로 인하여 8%의 농업인구도 무엇을 해야 할지 막막한 시대가 되었습니다.
현재도 농업 정책을 담당하는 사람들은 규모화만이 살길이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그들이 원하는 규모화의 결과가 무엇일까요? 작은 논들을 지키는 소농이 모두 사라지고 직선화된 논에 거대한 농기계만 돌아다니는 농촌을 원하는 것일까요? 수십 만 평의 논을 겨우 1-2명이 농사짓는 농촌은 지금의 농촌과는 전혀 다른 풍경이 될 것입니다.
이제 3월이면 시장에서 수입쌀이 가정용으로 판매되기 시작합니다. 그러면 쌀 가격은 하락하여 가마당 14만 5천원 정도가 될 것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소비자 가격입니다. 이미 현지 쌀 가격은 12만 5천원입니다. 현재 소비자 가격은 16만원입니다. 14만 5천원이 되면 농민들이 쌀 한 가마니를 생산해서 얻을 수 있는 돈은 10만원 조금 넘는 수준이 될 것입니다.
저 논들 다섯 개에서 쌀이 아무리 많이 나와도 2-3가마니 정도입니다. 그럼 1년 농사를 지어 얻을 수 있는 돈은 20-30만원 정도입니다. 그러니 누가 농사를 짓겠습니까? 기계가 들어오지도 못하니 손으로 직접 심어야 하고 직접 수확해야 합니다. 결국 저 논은 황량한 풀들이 무성한 곳으로 변하겠죠. 이미 섬진강변 여기 저기 버려진 계단식 논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어쩌면 이런 농부가 직접 농사를 짓는 저런 작은 논은 앞으로 가장 보기 어려운 풍경이 될 수 있습니다. 잘 봐 두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지금 한국의 전통적인 집약식 농업이 사라지는 역사의 현장에 있습니다.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관심과 노력, 그리고 농업에 대한 사랑만이 농업을 살릴 진정한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덧붙이는 글 | 저 작은 논이 오랫동안 우리의 주변에 남아있을 수 있도록 농업에 관심을 가져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