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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나에게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시루떡을 할 찹쌀과 떡가래를 만들 멥쌀이 같은 크기와 같은 색깔의 플라스틱 용기에 나란히 담겨져 있었던 것이다. 아무래도 정신없이 떡을 뽑다 보면 혼동이 생길 것 같았다.
보통 시루떡은 멥쌀과 찹쌀을 섞어서 하고, 떡가래는 멥쌀로 만든다. 먼저 팥으로 팥고물로 만들고 떡쌀을 빻고 난 다음, 시루에 떡가루와 팥고물을 번갈아 뿌리면 맛있는 시루떡이 만들어진다.
결국 내 불길한 예감처럼 문제가 생겨버렸다. 방앗간 아주머니가 멥쌀과 찹쌀을 혼동해 멥쌀을 쪄야 하는데 찹쌀을 쪄 버린 것이다. 시루떡을 만들 찹쌀이 멥쌀인 줄 알고 가래떡을 뽑는다며 찜통에 찐 것이다.
당황한 방앗간 아줌마는 이렇게 말했다.
"이것으로 시루떡 만드는 건 인자 글렀고 인절미나 만들어야 것는디."
"인절미를 만들려면 콩가루가 있어야 하잖어."
어머님이 시큰둥하게 대답을 하셨다.
"팥으로 어떻게 인절미를 헌디야."
옆에서 차례를 기다리시던 아줌마도 한마디 거들었다.
"팥으로 인절미를 해도 맛이 있다고 허든디."
나이 지긋하신 할머니는 방앗간 아줌마 편을 들으셨다.
"나는 지금까정 팥으로 인절미를 만든다는 말은 첨이네." 이렇게 어머님은 말씀하시면서 "설날에 시루떡을 허야는디 인절미떡을 하면 어떻게 제사상을 차린댜"라고 체념하듯이 말씀하셨다.
이렇게 해서 우리집에서는 설날에 팥고물로 인절미를 만드는 초유의 일이 일어났다. 다행히 남은 멥쌀로 떡가래를 뽑을 수는 있었다. 어머니와 나는 집에 돌어와 온가족을 불러모아 인절미를 만들기 시작했다.
며느리들은 한쪽에서 부침개(전)를 부치고 어머님과 자식들은 인절미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런데 메주콩 가루를 묻혀야 떡메로 친 찰떡에 콩고물이 잘 붙는데 팥고물로 만드니까 인절미가 모양도 나오지 않고, 제대로 만들어지지도 않았다. 뜨뜻한 인절미를 드시던 아버님은 "허허허" 웃기만 하셨다. 그래도 옆에서 맛보던 사람들은 맛있다고 하나씩 드셨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콩고물이 아니라 팥고물로 만들어서 가루가 인절미 떡에 착 달라붙지 않아 인절미 떡이 엉겨 붙기 시작한 것이다. 다시 팥고물을 묻혀 봤지만 여전히 들러붙었다. "인절미가 굳으면 괜찮겠지"라는 아버님 말씀에 따라 광에 인절미를 옮겨 놓는 것으로 설날 떡 만드는 일은 끝났다.
설날에 인절미를 만들기는 처음이라는 어머님의 얼굴에는 시루떡을 하지 못한 아쉬움이 오랫동안 남아 있었다. 시루떡이 팥으로 만든 인절미가 되어 버린 한 편의 에피소드를 남겨 놓고 설날은 추억 속으로 조용히 사라지고 있다. 고향과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만 남긴 채.
덧붙이는 글 | 노태영 기자는 남성고 교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