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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한 손님 자리에 모신 시골 간장
귀한 손님 자리에 모신 시골 간장 ⓒ 장옥순
생전에 잡채를 유난히 좋아하셨던 시부모님이 어제 일처럼 그립습니다. 자잘한 손질이 많이 가는 잡채는 평소에 잘 하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나이가 들면 부엌에 들어가기 싫은데 팔순이 넘으신 어머님이셨으니 어쩌다 주말에 가서 진지라도 해드리면 아이들처럼 좋아하셨던 모습이 눈에 밟힙니다. 이렇게 그리움이 많이 남을 줄 알았더라면 좀 더 자주 가서 좋아하시는 음식을 해드릴 것을.

시골집에서 어머님 역할을 하시며 찾아온 친지들을 맞는 형님께 어리광을 부렸습니다.

"형님, 아직도 어머님이 담그신 간장이 남아 있나요? 미역국을 끓일 때 그 간장을 넣어야 맛이 나는데."
"그럼. 조금 남아 있으니 갈 때 한 병 담아줄게."

어머님이 세상을 떠나신 지 벌써 2년이 넘었지만 어머님의 손끝이 닿아 있는 시골 간장을 소중한 보물처럼 안고 오며 나는 다시 중얼거렸습니다.

'이렇게 진한 장맛을 어디 가서 맛볼까? 단내가 나는 장맛이 생전에 그리도 부지런하고 깔끔하신 어머니 성품을 닮았네. 어머님! 이제 저도 오래 묵을수록 깊은 맛을 내는 삶을 준비할게요.'

음식 맛은 장맛이라며 생전에 간장을 소중히 하시던 어머님 말씀이 '사람 맛은 마음에서 비롯된다'고 마음 속으로 발효시켜 봅니다. 장맛이 변하면 집안에 우환이 생긴다며 햇볕 좋은 봄날에 장독 뚜껑을 열어놓고 해바라기시키며 "거 참 장맛이 달구나!"하시던 어머님.

'어머님! 당신이 남기고 가신 단내 나는 간장 한 병을 귀한 손님 모시듯 앉혀 놓고 사진 한 장 남깁니다. 부디 세상 짐 내려놓은 그곳에서 이젠 편하소서!'

덧붙이는 글 | 설날에 가져온 시골 간장을 맛보며 이제는 그리움으로 남은 시간들을 사진 한 장에 실어 보냅니다. 독자 여러분, 부모님 마음은 단내나는 장맛처럼 우리 삶을 맛깔스럽게 하는 보물단지랍니다. 2006년 씩씩하게 살아봅시다. <에세이> 에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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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매에는 사랑이 없다> <아이들의 가슴에 불을 질러라> <쉽게 살까 오래 살까> 저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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