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담사로 향하던 차를 처음 멈춘 곳은 홍천의 외삼포리였다. 눈은 마을의 길 위에서 인적을 끊어버리고 대신 흰빛 고요로 세상을 덮은 뒤 한 폭의 그림으로 마을을 펼쳐들고 있었다. 분명 평상시엔 논의 한가운데 있는 작은 숲이었겠지만 눈이 내린 날 그곳을 갔다 나온 나는 마치 흰 바다를 건너 섬에 다녀온 느낌이었다.
속초에 갈 때면 항상 화양강 랜드라는 휴게소에서 한번 쉬고 가게 된다. 휴게소의 한 켠에 트럭 세 대가 나란히 서 있었다. 평상시의 앞 유리 대신 멋진 흰빛 선글라스를 쓰고 있었다.
차를 가지고 눈 내린 강원도를 갈 때는 가다서다를 반복할 수밖에 없다. 차창 밖의 풍경이 잡아끄는 그 강력한 자장을 거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차를 세우고 들어간 한 마을에선 오래된 나무 한 그루가 오늘 온통 눈으로 치장을 하고는 나를 맞아주었다. 나뭇가지 사이에 높다랗게 얹힌 까치집에 눈에 보였다. 까치는 오늘 아침 일찍 제 집을 파고든 눈을 치우긴 치웠을까.
나무는 위로 자라고 집도 위로 솟는다. 눈은 나뭇가지 위로, 혹은 지붕 위로 내린다. 그 둘이 만나면 그냥 사람 사는 강원도의 어디나 풍경이 된다. 눈의 풍경은 위로 자라거나 솟는 것들이 아래로 내리는 눈과 손을 맞잡는 즐거운 만남의 다른 모습이다.
빈 듯 보이는 어느 집의 마루에선 가을부터 그 자리에서 몸을 말렸을 옥수수들이 오늘 세상의 눈을 바라보며 노란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백담사가 가까워오면 차창으로 스치는 풍경에서 눈을 떼기 어렵다. 언젠가 버스를 타고 이 눈 내린 풍경을 지나칠 때 그냥 버스에서 뛰어내리고 싶은 욕망을 억제하느라 힘들었던 기억이다. 요즘의 버스는 창문을 열 수 없어 사진을 찍는 것도 불가능하다. 이번 여행은 차를 갖고 갔기 때문에 차창을 열고 지나는 풍경을 얼마든지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다. 그러나 사진은 그때 그 풍경의 아름다움을 10분의 1도 담아내지 못한다.
눈이 내린 날 강원도의 어디나 풍경이 된다는 것은 바로 산중턱이 빚어내는 이런 풍경을 두고 말함이다. 눈 내린 날 강원도에선 차창으로 이런 풍경이 내내 함께 달린다.
백담사 입구에 도착하자 먼저 장승이 나를 맞아준다. 눈이 내린 날의 흥겨움 때문인지 장승이 내게 장난을 치고 싶었나 보다. 장승은 내게 하얀 혓바닥을 낼름 내밀었다.
어떤 단지는 엉덩이를 쳐들고 그곳에 눈을 받아두고, 어떤 단지는 입을 시커멓게 벌리고 내리는 눈을 다 받아 마신다.
백담사로 들어가는 두 번째 다리의 난간에선 눈이 제 몸을 스스로 녹이고 늘어뜨려 목걸이 놀이를 하고 있었다. 누구의 목에 걸어주려 한 것이었을까. 궁금했지만 남의 사랑을 너무 깊이 캐는 것은 예의가 아닌 듯 하여 짐짓 모른 체 그냥 지나쳤다.
덧붙이는 글 | 사진이 많아 백담계곡과 백담사의 눈사진은 다음 기사로 올릴 예정이며, 이번 사진은 백담사 입구까지의 기록이다. 개인 블로그에 동시에 게재했다. 블로그-->김동원의 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