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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님과 함께 오신 마을 어르신과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도중. 서울에서 따로 출발하신 지인께서 도착을 알리는 전화를 주셨다. 물론 얼굴을 아는 본인이 이장님과 함께 흥덕면사무소 근처까지 오신 지인을 모시러 나갔다. 가는 도중 이장님과 단 둘이 이야기를 나눌 시간이 있었는데, 농촌의 현실이랄까? 농촌이기 때문에 행정처로부터 무관심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는 이야기를 듣곤 안타까운 생각이 많이 들었다.
과거 우리나라의 1차 산업이기까지 했던 농업이 2차 3차 산업이 등장하면서 외면 받을 수밖에 없음에 답답한 마음이 들었던 것이었다. 몇 가지의 질문과 대답이 오가고 그동안 농촌 탐문기에서 얻었던 결론을 이야기 해보았다. ‘기획경작, 농어촌에 맞는 금융안’등을 설명해보았다.
예상외로 이장님께서는 그런 방안이 생긴다면 농촌도 경쟁력을 갖출 수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일단 지금 농어촌의 현실은 연체이자로 쓰러져가는 농가를 구해야하는 것이 가장 큰 핵심이 아닐까 하는 말씀을 하셨다.
참 서글픈 생각이 많이 들었다. 우리나라가 국가라는 틀을 형성해올 때 그 안에서 먹고 살아가는 문제를 해결해주던 농어촌이었는데, 한순간 수출로 먹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외면을 받아야 할 수밖에 없다는 것에 어느 한쪽을 곱씹어 볼 수밖에 없었다.
가슴이 답답했다. “왜 이렇게까지 누군가를 죽여서 살아가야 하는가?”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어째든 이야기가 무르익고 어느 정도의 결론에 도달했을 때 쯤, 지인과 만나기로 한 장소에서 만났다. 그때 역시 후포리 이장님의 손길은 아주 거대한 뜨거움을 손에 쥔 듯 했다. 서로 인사하고 악수를 하고 물론 형식적인 면이 있긴 했지만, 후포리 이장님의 손길은 아주 달랐다.
모르던 사람들이 어느 날 찾아와 돕겠다고 하니 얼마나 반가웠겠는가? 사실 본인은 이러한 감정을 모른다. 다른 사람의 도움이 왠지 어색하기 때문인데, 이러한 부분을 이장님께서는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 한 가지를 가르쳐 주신 듯 했고, 고맙게 받아들이는 사람 입장에선 더욱 고맙게 만드신 분이시기 때문에 존경스럽기까지 했다.
당일 늦게 찾아오신 손님 배웅을 해주신 이장님과 늦은 밤까지 마을 회관에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 안에서 농촌이 얼마나 어렵게 살고 있는지도 알게 되었다.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