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저는 양백여상 제1회 졸업생입니다. 산업현장에서 근무하면서 교대 조마다 한 학급씩 3학급으로 짜인 산업부설학교는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3교대로 근무하면서 하는 학교생활은, 아침 6시부터 오후 2시까지 1교대 근무가 끝나면 바로 오후 수업에 들어가야 했고 오후 2시부터 밤 10시까지의 2교대 근무가 있는 주에는 오전 수업을 받아야 했으며 밤 10시부터 새벽 6시까지의 온전한 야근이 있는 주에는 오후 수업을 받았습니다. 그렇게 3교대로 교차하는 3년 동안의 여고시절이 꿈만 같습니다. 대학진학 공부에 바빠 학원에 다니는 시간도 쪼개는 지금의 고등학생들에게는 언뜻 이해가 안 가는 산업부설학교 학생들의 모습일 것입니다.

가난 때문에 일찍부터 산업현장에 나온 꿈많은 청소년들에게 공부할 기회를 주고자 회사 내에 세운 학교가 바로 산업체 부설학교입니다. 일반고등학교에 위탁교육을 하는 회사도 그 시절에는 있었습니다. 십대 시절에 제가 근무하던 주식회사 대농은 청주에 있는 방직공장으로 제법 규모가 큰 회사였습니다.

양백여자상업고등학교, 중학교 과정을 독학으로 공부한 저로서는 교복을 입는 학창시절이 마냥 꿈만 같았습니다. 어릴 때부터 꿈꾸던 문학에 접하여 마음껏 날개를 펴게 된 그 시절, <여고시대> 문학상과 제1회 노동문화제에서 특상을 받고 친구들과 선생님들과 기쁨을 나누던 때가 어제만 같습니다.

누구나 학창시절은 있었겠지만 그 시절의 우리만큼 동질의 희로애락을 같이한 사람들은 드물 것입니다. 방적, 방직기계 앞에서 일하던 소녀 적의 우리가 벌써 40대에 들어섰듯이 세월도 시절도 바뀌어서 이제 학교가 폐교될 것이며 마지막 졸업식이 바로 내일이라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여고에서 상업학교로 바뀌면서 23회 졸업부터는 남학생도 배출해낸 학교입니다.

산업현장에서 번 돈을 동생들 학비에, 부모님의 생활비에 보태는 것으로 온통 마음이 부풀어 오르던 시절이었습니다. 근로 청소년이라는 말이 어엿하게 있었음에도 공순이라는 말을 그저 흘려들어야만 했던 70년대와 80년대가 흑백사진 속의 추억이 되어 버렸습니다.

야근을 하고 학교에 가면 졸음 때문에 꾸벅거리기 일쑤였고 가끔은 작업현장의 기계 소리가 윙하고 귓전을 울리는 소리에 번쩍 정신이 들기도 했지요. 까딱 잘못하다가 기계에 머리카락이 휘감기는 사고를 당하는 모습도 보았고 손가락을 기계에 다치는 일도 심심찮게 일어났습니다.

오전 근무를 마치고 학교에 가는 날은 솜먼지 털어내기도 바빴지요. 솜먼지가 뽀얗게 머리에 내려앉으면 공기정화기로 날려버리거나 털어버려도 여기저기에 뭉쳐진 솜이 묻어있기 일쑤였습니다. 교복에 스타킹에 어느새 묻어있는 솜먼지들은 대농부설학생이라는 마크가 되어버립니다.

기숙사에서 지내며 학교생활을 하는 학생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청주가 집인 저는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집이 있는데도 기숙사 생활을 했습니다. 그만큼 시간에 쫓기는 생활이었던 거지요. 유난히 몸이 약했던 저에게는 육체적으로 무척 힘든 시절이었습니다. 시를 쓰던 저는 대외적으로 받은 상이 인정되어 특기장학생으로 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지요. 대학생활 내내 힘든 일을 하면서 학교에 다니는 후배들이 눈에 밟혔습니다. 덕분에 게으르지 않은 대학생활을 할 수 있었습니다.

양백상업고등학교가 배출한 1만 3천여 명의 졸업생 모두 사회의 요소요소에서 훌륭하게 제 역할을 감당하고 있겠지요. 남보다 어렵게 공부한 만큼 눈빛도 따뜻하고 당당한 우리입니다. 내일이면 제26회 마지막 졸업을 맞이하는 후배들에게 축하의 박수를 보냅니다. 비록 모교가 폐교될지라도 마음속의 모교는 언제나 그대로 교정 뒷산의 늘 푸른 소나무로 뿌리 내릴 것입니다.

오랫동안 뵙지 못한 은사님들께 멀리서나마 아쉬움 많은 감사인사를 드립니다. 어렵게 공부하는 저희를 가장 가까이서 지켜보시고 격려해 주신 그 마음 오래도록 기억할 것입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