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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동원
유일사 입구에서 우리는 다소 놀랐다. 끊임없이 밀려드는 관광버스 행렬과 주차장을 가득 메운 그 많은 차 때문이었다. 차를 세웠다기보다 간신히 틈바구니를 비집고 들어가야 했다.

유일사 입구에서 시작되는 등산로는 중간까지는 아주 길이 넓고 좋다. 그리고 그 뒤로는 구불구불한 산길이 이어진다. 태백산의 유일산 입구 등산로는 현대적인 영월까지의 새 도로와 영월에서 태백까지의 옛 도로를 그대로 닮았다.

그 길의 초입에 오늘 사람들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차림새가 모두 등산복이란 것을 제외하고 나면 혹시 태백산 꼭대기에 출근길의 지하철역이 있는 것은 아닐까 덜컥 의심이 들 정도였다. 그러나 이렇듯 많은 인파 속에 묻혀 밀려가듯 오르는 산행은 그 나름의 맛이 있다.

이렇게 산을 오르면, 제 체력으로 산을 오르기 어려운 사람들도 자기도 모르게 그 많은 인파 속에 묻혀 얼떨결에 정상까지 갈 수 있다. 뒷사람이 떼는 한 발이 앞사람의 등을 밀어주고 앞사람이 떼는 한 발은 뒷사람의 발길을 끌어준다.

사람이 너무 많아 조금 번잡하긴 했지만 그래서 그 많은 사람이 함께 산을 오르는 장면은 한편으로 흐뭇했고, 우리 일행도 그 속에 묻혀 즐겁게 산을 올랐다. 또 그 많은 사람을 모두 다 받아주는 태백산의 넉넉함도 고맙기 그지없었다.

ⓒ 김동원
정상에 오른 기쁨이 산이 주는 즐거움 중의 하나인 것만은 분명하지만 풍경을 안고 굽이굽이 돌아가는 강원도의 옛길처럼 뽀드득거리며 발밑에 밟히는 눈 소리를 들으며 호젓하게 천천히 오르는 산길의 즐거움도 매우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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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산의 명물 중 하나는 등산길의 여기저기서 만나는 주목이다.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을 간다는 주목은 그 무궁한 세월로 제 몸을 키워 태백산의 풍경을 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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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은 원래 저 깊은 땅속에서 색깔을 길어 올려 피는 것이련만 눈꽃은 물길마저 숨을 죽인 한겨울에 허공을 날던 물알갱이를 가지 끝에 모아 피어난다. 겨울의 태백산 꼭대기 칼바람 속엔 하얀 꽃가루가 날아다니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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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산의 정상 장군봉 가는 길. 겨울엔 붉은 주단이 아니라 희디흰 눈비단을 깔아서 사람들을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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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산 정상의 눈꽃. 정상은 오르기 위해서 가는 것이 아니라 이 눈꽃을 보기 위해 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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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이를 얻었을 때의 큰 즐거움 중 하나는 시선을 거리낌 없이 멀리까지 날려 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시선이 멀리 날면 그 순간 가슴이 시원해진다. 높은 곳에서 우리의 시선이 그냥 멀리 보는 것이 아니라 멀리 날고 있다는 분명한 증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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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꽃은 바람이 찰수록 더욱 오래간다. 태백산 정상의 바람은 매서웠지만 눈꽃의 한가운데서 그 아름다움에 취하면 누구나 잠시 겨울 추위를 잊고 만다.

ⓒ 김동원
나뭇가지는 봄과 여름에는 푸른 잎의 자리이고, 가을엔 단풍의 자리이다. 겨울엔 대부분 그 자리를 휑한 하늘로 채워두지만 때를 잘 맞추면 잠시 그 빈자리를 찾아온 눈꽃을 볼 수 있다.

ⓒ 김동원
내려오는 길에 늦은 오후의 햇볕이 나뭇가지 사이로 언뜻언뜻 제 얼굴을 내밀며 계속 나를 따라왔다. 태양과 안녕을 고한 뒤에는 고향 친구 엄기탁에게 전화를 걸어 서울 사람들과 함께 태백에 내려왔는데 저녁으로 같이 하기에 좋은 게 뭐 없느냐고 물었다.

기탁이는 영월 읍내로 들어가서 청산회관의 곤드레밥을 대접하라고 권해주고는 예약까지 해주었다. 저녁값은 같이 간 서울의 진표 네가 냈다. 모두가 맛있다고 했다. 사람들이 하나같이 즐거워하니 고향으로 안내한 나도 행복했다.

덧붙이는 글 | 개인 블로그에 동시에 게재했다. 블로그-->김동원의 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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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를 갖고 돌아다니면 세상의 온갖 것들이 말을 걸어온다. 나는 그때마다 사진을 찍고 그들의 말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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