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수용하기로 한 이후에, 최재천 열린우리당 의원이 잇따라 정부 문서를 공개하면서 파문이 일고 있다. 정부와 보수언론은 최 의원이 공개한 문서는 국가기밀에 해당된다며 비난하고 나섰다. 이에 대해 최 의원은 국민의 알 권리와 외교안보팀의 부실 외교에 따른 국익 손실을 문제삼기 위해 계속해서 비밀문서를 공개하겠다고 맞서고 있다.
최 의원이 공개한 문서의 핵심적인 요지는 크게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는 정부가 전략적 유연성이 한미상호방위조약에 위배되고 이를 합의할 때 국회 동의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절차를 생략한 채 합의해주었다는 것이다. ▲둘째는 외교안보팀이 2003년 10월 초 미래 한미동맹 정책구상회의(FOTA) 4차 회의에서 사실상 전략적 유연성에 합의해줬다가, 노무현 대통령이 2005년 3월 공사 연설에서 전략적 유연성을 부인하는 듯한 발언을 해 한미간 마찰 요인을 제공했느냐는 것이다. ▲끝으로 NSC를 포함한 외교안보팀의 대통령에 대한 기망 행위 여부이다.
특히 둘째와 셋째 문제에 대해서 청와대가 작년 4월에 NSC를 상대로 조사를 벌인 바 있지만 여러 의문점에도 불구하고 "대미협상과정에서 문제가 없었던 것"으로 결론을 냈다. 당시 언론들도 NSC 등 외교안보팀이 정말 부실협상을 해온 것인지, 대통령 기망 의혹이 사실인지를 밝히려는데 초점을 맞추지 못하고, 팀내 갈등과 이종석 사무차장의 흔들리는 위상에만 관심을 보이고 말았다.
그리고 추측만 무성했던 당시의 사정을 비교적 자세히 알 수 있는 문건이 공개되었는데, 바로 최재천 의원이 공개한 '국정상황실 문제제기에 대한 NSC의 입장'이 그것이다.
4차 FOTA 회의에서 사실상 합의는 끝났다
이 문건에서 NSC는 전략적 유연성에 대해 줄곧 "신중한 접근"을 했고, "한미간 합의단계에 진입했다는 증거"가 없으며, 노무현 대통령의 공군사관학교발언에 대해 미국은 "한국의 입장번복으로 인식하고 있지 않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여러 소식통을 종합해볼 때, 이러한 주장은 상당 부분 거짓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는데 가장 중요한 진실, 즉 외교안보팀이 오래 전에 사실상 전략적 유연성에 합의해줬는지 여부를 밝히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이 실체를 밝혀내면, 다른 의혹들은 비교적 쉽게 풀릴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미국으로부터 전략적 유연성에 대한 논의를 요청받은 시점은 2003년 초이다. 선제공격 전략과 대중국 사전억제 전략을 공식 채택한 부시 행정부는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2003년부터 본격적으로 해외주둔 미군 재배치(GPR)를 추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우선적 협상 대상으로 한국을 지목하고 FOTA 1차 협상(2003년 4월 6일)때부터 한국 협상팀에게 이를 설명했다.
이에 대해 정부는 "미국의 입장을 존중하되 한미상호방위조약과의 관계, 북한 및 주변국과의 문제, 국민적 반발 등을 고려해 시간을 두고 검토하자"는 입장을 제시했다. 그리고 FOTA 회의를 용산기지 및 2사단 이전 등 주한미군 재배치에 초점을 맞췄다.
그러나 3차 FOTA 때 미국 측이 전략적 유연성에 대한 한국의 입장을 요구하고 나서자, 4차 회의 때 한국은 이를 사실상 수용하게 된다. 당시 한국측은 전략적 유연성에 대한 지지 의사를 밝히는 대신, 북한 및 주변국과의 관계와 국민적 공감대 불충분을 거론하며 '공론화'에 신중해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특히 협상팀 수석대표였던 차영구 국방부 정책실장은 주한미군의 지역역할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며, 유사시 주한미군이 한반도에서 유출입하는 문제는 연합사령관의 권한사항이라고 말했다. 이미 4차 FOTA 때 전략적 유연성을 전폭 수용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유사시 주한미군 유출입은 연합사령관 권한"이라는 협상팀 대표
이를 반영하듯 미국 측은 양측의 의도가 같다는 것을 확인했다며 사의까지 표명했다. 그리고 이 회의 직후 외교부는 미국에 외교각서 초안을 보내 전략적 유연성에 대한 지지 입장을 확인해주었다.
이에 고무된 부시 행정부는 2003년 11월 25일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GPR 계획을 공식 발표할 때, 한국을 '모범 사례'로 거론할 계획이었다. 이에 따라 11월 17~18일 열리는 제35차 한미연례안보협의회(SCM) 참가차 방한한 럼스펠드 국방장관은 공동성명에 전략적 유연성에 대한 합의를 포함시키려고 했다. 그러나 이를 수용할 경우 감당하기 어려운 재정적·안보적 부담을 떠안을 수밖에 없다고 판단한 일부 관리들은 이에 제동을 걸었다.
이는 서울을 방문하기에 앞서 잔뜩 기대에 부풀어 있던 럼스펠드를 격분시킨 사건이다. 방한 다음주에 부시 대통령이 한국을 모범 사례로 들면서 GPR의 성과를 발표하려고 했는데, 한국 정부가 막판에 이를 뒤집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NSC는 미국 측이 전략적 유연성에 대해 합의단계로 진입했다고 인식하지도 않았고, 노 대통령의 공사 발언을 입장 번복으로 생각하지도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필자가 만나본 미국 국방부 관리들의 발언은 상당히 달랐다.
필자는 작년 5월초 미국 국방부를 방문해 전략적 유연성을 포함한 한미간 협상 대표단을 만났다. 이 시점은 전략적 유연성 및 작전계획 5029를 둘러싸고 한미간에 긴장이 높아지던 때였다. 이들은 한국이 4차 FOTA 회의에서 전략적 유연성에 대해 사실상 합의해주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노 대통령의 공사 발언은 이를 뒤집은 것이라며 강한 불만을 토로했다. 한국 NSC의 설명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었던 것이다.
책임 피하는 NSC, 손바닥으로 하늘가리기
NSC는 전략적 유연성에 대해 줄곧 "신중한 접근"을 했다고 강변하고 있다. 그러나 NSC를 포함한 외교안보팀이 신중을 기한 것은 전략적 유연성 그 자체라기보다는 이 문제가 '공론화'되는 것이었다.
정부는 협상 초기부터 미국이 요구한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수용하되 국내의 반발 여론을 고려해 비밀을 유지해달라고 미국 측에 요구했다. 당시 용산기지 이전비용을 전액 부담하기로 한 정부 방침에 비난 여론이 빗발치고 있었는데, 전략적 유연성을 인정해주기로 한 것이 공개된다면, 비난 여론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될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용산기지와 2사단 이전 협상은 물론이고 전략적 유연성과 관련해 정부의 외교안보팀은 협상 초기부터 부실과 기만으로 일관해왔다. 외교안보문제에 대한 문외한이었던 대통령과 그 내용을 잘 알 수 없었던 국민·국회·언론을 상대로 '사기극'을 벌여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이에 대해 NSC는 "잘 몰랐다"거나 "최선을 다했다"며 책임을 피하기에 급급해왔다. 그러나 이는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격이다. 1차 때부터 FOTA 회의는 NSC와 국방부, 외교부의 관계자들이 참여해 협상 준비회의를 하고 대화록을 비롯한 FOTA 회의 결과는 NSC에 계속 보고되었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이번주 <한겨레21>에도 게재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