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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궁과혈(推宮過穴)은 내상을 입고 혼절해 있는 사람을 치료하는데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전신을 쓸고 때리며, 밀고 두드려 막힌 기와 혈을 타통하고, 뭉쳐진 근육을 풀어주며 혈을 자극해 위치를 벗어난 내장을 제자리로 되돌리는데 매우 효과적이었다.

시전하는 사람이 부족함이나 과함이 없이 기를 조절해야 하고, 제법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내력이 많이 소모되는 단점이 문제였지만 의술에 조예가 없고, 특별한 영약을 가지고 있지 못한 무림고수에게 임시처방으로는 유일한 방법이랄 수 있었다.

사실 아직 자신의 몸도 제대로 추스르지 못한 담천의에게 추궁과혈은 무리였다. 하지만 그는 아직 혼절해 있는 백결을 편안하게 눕혀놓고 벌써 반시진이 지나도록 추궁과혈을 해주고 있었다. 백결은 부상을 입은 상태에서 무리를 해서인지 좀처럼 깨어나지 못했다.

허나 담천의의 꾸준한 노력과 상승의 경지에 달한 백결의 무위 덕에 흩어진 기가 모여들고 오장육부가 제자리를 잡아가는 듯 했다. 처음보다는 한결 쉬워졌지만 담천의의 이마에서는 굵은 땀방울이 쏟아지고 있었다.

무인에게 있어 굵은 땀방울이 쏟아지는 것은 그의 몸이 정상이 아니라는 것을 뜻했다. 그가 이 정도로 버틸 수 있는 것은 하나의 고비를 넘어 또 다른 깨달음의 세계에 들어왔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가 가진 선천지기는 광폭한 기운을 흡수하고 동화시켰지만 본래 가진 내공을 모두 회복시키지는 못했다.

다행스러운 일은 지쳐 있었지만 이제 진기의 흐름이 매우 원활하고 몸이 자유스럽게 느껴진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진기의 운용에 있어 한 단계 도약했고 그것이 인간의 한계를 긋는 신체의 제약에서 벗어난 화경(化境)의 경지에 오른 자만이 느낄 수 있는 성취임을 보여주는 것이지만 담천의 스스로는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추궁과혈을 계속 시전해야 했지만 이런 곳에서 오랜 시간을 끌 수 없다고 생각했다. 임시방편으로 백결의 몸을 추스른 다음에 스스로 회복하게 해야 했다. 그는 추궁과혈을 멈추고 백결의 품 속을 뒤져 녹색병을 찾아냈다.

바로 얼마 전 남궁정천에게 먹인 적이 있는 속명단이 들어있는 그것이었다. 속명단은 특별한 영약은 아니었지만 단기간에 원기를 회복시켜주는 임시처방으로는 탁월한 효능이 있었다.

그는 속명단을 백결의 입에 넣어주고 혈도를 가볍게 쳐 넘기게 했다. 그리고는 그의 상체를 일으켜 명문혈(命門穴)에 장심을 대고 진기를 불어넣어 주기 시작했다. 좀 더 빠르게 백결을 깨어나게 하려는 생각이었다.

헌데 얼마쯤 진기를 불어넣어 주고 있었던 것일까? 백결의 몸에서 그런대로 진기가 유통되면서 무의식적이나마 스스로 운공이 가능하게 된 순간이었다. 갑자기 냉랭한 목소리가 담천의의 고막을 파고들었다.

"쥐새끼 같은 놈들… 이곳까지 들어와 있었군."

바로 상엽과 남은 두 형제들이었다. 더구나 상엽의 옆으로 금색 면구(面具)를 쓴 한 인물이 날카로운 안광을 발하며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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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곁에서 지켜보았던 운령마저도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할 정도였다.

방백린은 마지막 남은 양심이 있었던지 장철궁에게 직접 손을 쓰지는 않았다. 하지만 중요한 고비마다 발휘하는 그의 염화심력은 장철궁에게 매우 치명적이었다. 정상적인 상태에서도 대군과 회마의 합공은 매우 위협적이었고, 반드시 이긴다고 장담할 수 없었던 터였다.

그런 와중에서 결정적인 고비마다 진기의 맥을 끊어놓는 방백린의 염화심력으로 인해 장철궁의 전신은 상처투성이로 변해갔던 것이다. 치명적인 공격을 수차례 당했음에도 장철궁은 마치 선불 맞은 멧돼지처럼 더욱 광폭하게 변해갔다.

그것을 지켜보고 있던 좌중의 얼굴에는 매우 다른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운령은 안타까움과 슬픔이었지만 방백린은 안타까움과 경탄이었다. 장철궁이 자신의 사람이 되어 준다면 무서울 것이 없었을 것이다. 일대일로는 그를 꺾을 인물이 존재하지 않을 것이란 그의 무위에 대한 경탄과 그를 얻지 못하는 안타까움이었다.

반면에 나머지 뇌마와 오마(五魔)의 얼굴에는 은은한 두려움이 떠올라 있었다. 하늘 밖에 하늘이 있다더니 장철궁의 무위가 그랬다. 자신들은 세 명 정도가 합격해야 간신히 버틸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장철궁의 기세는 점차 누그러지고 있었다. 아무리 무신이라 해도 저렇듯 심한 부상을 입고 버틴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었다. 하지만 대군의 장이 장철궁의 가슴을 강타하고, 회마의 회음조가 목덜미를 파고드는 절대 절명의 순간에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장철궁은 약간 뒤로 물러나며 대군의 장을 완화시켰지만 여력을 가슴에 맞으면서 우수를 수도(手刀)로 하여 대군의 어깨를 내리쳤고, 좌수로는 자신의 몸에 박혀있던 요서보검을 뽑아 자신의 목덜미를 노리고 쏘아오는 회마를 향해 던졌던 것이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동귀어진하자는 마지막 발악 같았다. 자신이 죽더라도 두 사람을 저승길에 동행하자는 노골적인 수법으로 생각되었다. 허나 그 순간에 기괴한 일이 벌어졌다.

대군의 장을 맞고 비틀거리며 좌측으로 물러난 장철궁은 요서보검을 빼낸 상처에서 피가 솟구치고 입에서는 핏덩이를 쏟아 내고 있었다. 대군 역시 스쳐 맞은 어깨에 부서지는 고통을 느끼고 있었지만 기회를 놓칠세라 마지막 일격을 가하기 위해 물러서는 장철궁을 향해 폭사해 가는 순간이었다.

또한 요서보검을 피하기 위해 급히 몸을 낮추며 뒤로 주륵 물러나며 뒹굴었던 회마는 등이 벽에 닿는 느낌과 함께 바로 머리 위로 요서보검이 박히는 소리를 들으며 정신이 아찔했던 순간이었다.

느닷없이 회마가 기댄 멀쩡한 벽이 빙글 회전하며 회마의 몸은 열려진 벽 속으로 빨려 들어갔고, 동시에 바로 옆에 있던 서가(書架)가 빙글 회전되며 열렸다. 동시에 서가가 돌면서 뻥 뚫린 구멍 속에서 갑자기 시커먼 물체가 튀어나오더니 장철궁을 공격하는 대군의 가슴을 강타했던 것이다.

어디 그뿐이랴! 시커먼 물체는 비틀거리는 장철궁을 잡아끌고는 서가를 밀며 벽 속으로 사라져 버렸던 것이다. 그저 교묘한 장치가 되어 있는 벽과 서가가 단 한번 도는 순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나머지 인물들은 너무나 급작스럽게 일어난 일이라서 뻔히 보면서도 움직일 틈조차 없었다.

"우엑-----!"

분명 사람이었다. 하지만 너무나 빨라 그림자가 나타났다가 사라져 버린 것처럼 보였다. 비명은 나중에 터져 나왔고 대군의 몸은 허공에 호선을 그리며 피화살을 뿜었다. 그리고 그 뒤에 벌어진 광경에 좌중의 입에서는 경악에 찬 외침이 튀어나왔다.

"헉… 저런…!"
"이군(二君)!"

한 순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벽이 다시 빙글 회전하고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왔을 때 그 곳에는 회마가 걸려있었다. 요서보검에 가슴을 관통당하고, 벽에 매달려 축 늘어진 회마의 몸에서 흘러내린 피는 바닥을 홍건하게 적시고 있었다. 그는 이미 절명한 것 같았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앉은 자세로 끌려들어간 회마가 어찌 그토록 짧은 순간에 벽에 걸릴 수 있는지 납득할 수 없었다. 저 속에 괴물이라도 존재하는 것일까? 그것도 잠시 오마 중 넷째인 장마(掌魔)가 빠르게 달려가 요서보검을 뽑아내며 회마의 시신을 안아들고는 바닥에 눕혔다.

동시에 장마는 혼신의 힘을 다하여 회마가 걸려있었던 벽과 서가를 향해 장력을 날렸다. 가공할 위력을 가진 장력은 벽과 서가를 통째로 날려버렸는데 부서져 내린 모양을 보면 뚜렷하게 상황을 알 수 있었다.

콰---쾅---!

완전히 산산조각이 나서 부서져 내린 벽은 문짝 두개의 크기 정도였고, 그 안으로는 일장정도 넓이의 텅 빈 공간이 있었다. 허나 부서져 내린 벽 조각만 나뒹굴고 있을 뿐 그 안에는 나타났던 흑영도, 장철궁도 없었다.

"이런 젠장할…… 어떤 놈들이…?"

그는 성큼 그 안으로 들어가 무언가 살피는 듯 했다. 그러다가 바닥에 떨어진 핏자국 사이로 미세한 틈을 발견하고는 다시 손바닥으로 바닥을 쳤다.

퍼---퍽---!

마치 두부가 으깨져 버리듯 바닥이 부서져 나갔는데 한 사람 정도 드나들 수 있는 구멍이 밑으로 나 있었다. 누가 보더라도 누군가가 이 구멍으로 스며들어 장철궁을 구해갔음을 알 수 있었다. 장마는 서슴없이 그 구멍 속으로 뛰어 들었다. 말릴 사이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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