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친구들과 모여서 얘기를 하는 도중 등산에 관한 얘기를 나눴는데 대부분이 등산에 대해 초보자이기도 했지만 산에 오르면서 달리기하듯 빠르게 오르내리는 등산은 매력이 없다는 것에서 의견 일치를 보았다. 그리고 즉석에서 "그럼 우리 산악회 하나 만들까? 음~ 산악회 이름은 '느림보 산악회'가 좋겠다"고 한 것에서 이번 산책길 산행을 하게 된 구체적인 이유였다. 어찌 보면 '느림보 산악회'가 첫발을 내디딘 셈이랄까?
다솔사에 가면 사람들에게 꼭 당부하는 것이 있다. 절 바로 아래까지 차를 가져가지 말고 아래에 있는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가라고 얘기한다. 촘촘히 들어선 솔숲 사이로 자동차의 매연을 뿌리고 가는 것도 그렇지만 비록 지금은 아스팔트로 포장된 길일지라도 그 길을 걸으며 새소리 바람소리를 꼭 듣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일방통행로인 이곳을 조금 걸으면 특별한 나무를 두 그루 만날 수 있는데 소나무와 참나무의 연리지(連理枝) 때문이다. 이제 어찌 보면 그들은 둘이 아니고 하나이다. 연리지는 쉽게 보기 어려운 현상인데 다른 나무 두 그루가 하나로 합쳐진 것을 말하며 지금은 금슬 좋은 부부를 이르는 말이기도 하다.
대부분 식물은 서로 다른 종류가 한곳에 있으면 경쟁을 하는데 연리지는 그렇지 않고 따뜻한 교류를 한다. 어느 한 나무만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서로 도우면서 살아가는 것이 연리지의 미덕이 아닌가 싶다.
지금까지 연리지가 된 나무를 세 곳에서 봤는데 첫 번째로 본 곳이 고성 옥천사 입구에서다. 하지만 이 연리지는 안타깝게도 몇 년 전 태풍 매미에 쓰러지고 말았다. 그리고 두 번째로 본 곳이 지난번 창녕 화왕산 등산할 때였다. 관룡사를 지나 산길을 오르는데 거기에도 참나무와 소나무가 짝을 맺은 연리지였다. 세 번째 연리지는 바로 다솔사 입구에 있는 이 연리지이다.
조금 걸어서 적멸보궁 바로 아래 대양루(大陽樓)를 만날 수 있는데, 대양루는 1749년(영조 25)에 세워져 지금까지 보존되어 있는 2층 맞배집으로 건평이 106평에 이르는 규모가 큰 건축물이다. 또한 대양루의 기둥과 주춧돌은 구례 화엄사의 그것처럼 되어 있었다. 돌의 굴곡을 그대로 살리고 나무를 그 굴곡에 맞춰서 다듬은 것이다. 우리 선조의 지혜를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다솔사 산책로는 최근 1년 사이에 벌써 네 번째다. 지난해 봄에 왔을 때는 마침 생강나무가 꽃을 피워서 좋았고, 가을에 왔을 때는 늦가을에 볼 수 있는 용담꽃도 보았다. 지난 가을에는 아침 일찍 간단한 운동을 겸해서 사진을 찍은 지 오래되기도 해서 바람도 쐴 겸 혼자 산행을 했었다.
이 산책로를 걸을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세상에 이 길보다 아름다운 데이트 길이 또 있을까 하는 생각이다. 그만큼 연인들이 산책하기에 좋은 길이기도 하다. 물론 가족들의 화기애애한 산책로로도 그만이다. 지난 가을에는 산책로를 걷는 내내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에 귀 기울이며 걸었고 이번에는 소나무 사이로 불어오는 솔바람에 넋을 잃기도 했다.
봉명산 산책로는 말랑말랑한 땅을 밟으며 걸을 수 있어서 좋다. 이번에는 겨울이라 맨발로 걸을 수 없는 점이 아쉽긴 했지만 날이 풀려서 다시 생강나무가 꽃을 피울 무렵이면 맨발로 그 길을 걸을 수 있지 않을까.
계단을 지나면 본격적인 산책로가 시작되는데 거기를 조금만 더 걸으면 지난 봄에 본 생강나무가 있는 곳에 이른다. 산책로를 걷는 내내 소나무 숲길을 걷지만 이곳은 돌무더기가 흘러내린 곳이라 그런지 앞이 탁 트여 있는 것이 이채롭다. 게다가 지난 몇 번의 산책에서는 보지 못했던 사천 앞바다를 보게 된 때문인지도 모를 일이다. 이번에는 날씨까지 좋아 이곳에서 바다를 볼 수 있다는 것이 너무 놀라웠다. 이번 산책길은 이런 뜻하지 않은 기쁨을 안고 갈 수 있어서 두고두고 기억 속에 남겨둘 수 있을 것 같다.
다시 소나무가 촘촘한 산책로를 접어들어서는 보안암으로 향했다. 가는 도중 친구들과 그림자놀이도 하고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사이 보안암에 계신 스님의 재미있는 글귀가 보였다. "나무 좀 가져다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지난번에도 나무를 암자까지 날라다 줬는데 이번에는 친구들이 거들어준 셈이다. 아쉽게도 사람들이 많이 다녀갔는지 나무들이 얼마 남아 있지 않았다.
보안암은 고려 말기에 세워졌다고 전해지며 석굴은 1972년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39호로 지정되었으며 경주 토함산 석굴암의 구조를 따랐다고 한다. 지난번 왔을 때는 날씨가 좋지 않아 석굴의 문을 닫아 놓았는데 이번에는 참배객도 보이고 문을 활짝 열어 놓아 석불을 제대로 볼 수 있었다.
다시 발길을 돌려 내려오는 길에 아래쪽에 있는 또 다른 암자에 들렀다. 지인이 다솔사 간다니까 꼭 그 암자에 들러서 맛있는 차를 한 잔 청하고 오라는 말에 주저 없이 암자로 향했다. 법당에서 삼배를 올리고 곧장 스님이 계신 방으로 들었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차를 마셨는데 어찌나 많이 마셨는지 차고문(?)을 당했다 싶을 정도였다. 처음에 마신 차가 녹차를 가루로 만든 말차인데 말차의 약간 텁텁하면서도 입속에 녹차향이 퍼지는 그 느낌이 지금도 남아 있는 것 같다.
점심공양이라도 하고 가라는 것을 약속이 있어서 발길을 돌렸다. 나오는 길에 보니 그날이 입춘(立春)이라 뜰 앞에 있는 작은 매화나무에 매화 봉오리가 꽃망울을 터뜨릴 날만 기다리고 있었다.
시간이 빠듯해 내려와서는 다솔사 약수 한 모금 들이킬 시간도 없이 종종걸음으로 줄달음치듯 다솔사 길을 빠져나왔다.
돌아오는 길에 친구들과 이제 느림보 산악회를 시작했으니 다음 산행은 언제 어디로 할까에 대해 얘기를 나누며 오늘 보았던 아름다운 산책로를 꽃피는 봄이 오면 다시 한 번 더 오자며 의견을 모았다.
덧붙이는 글 | 교통안내
1) 서울→ 대전→ 진주→ 곤양→ 다솔사
2) 남해고속도로 곤양 IC→ 다솔사
3) 항공편 : 서울 - 사천 1일 왕복운행(7회/주말8회/1시간 소요)
사천시 곤양면 서정리 비봉마을에 대밭고을이라는 곳이 있는데 거기서 대나무 삼림욕도 할 수 있고 찜질방도 있다. 숙박시설도 갖춰져 있어서 가족단위로 가도 좋다. 운이 좋으면 대나무 수액도 한 잔 얻어 마실 수 있다.
가까이에 별주부전 설화로 유명한 서포가 있다. 서포에 가면 계절에 따라 전어며 굴을 마음껏 먹을 수 있다.
한국관광공사(http://www.visitkorea.or.kr)에서 검색하면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