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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바람이 내 몸을 아랫목으로 내몰기 전에 인사동 나들이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흥정하는 사람들, 독특한 전통 공예품, 어찌 그리 신기한 것들이 많은지. 발 길이 닿는 대로 걷다보니 좁다란 골목으로 향하게 되었다. 철 길 위에 내걸린 ‘아빠 어렸을 적에’라는 푯말, 시골 동네 어귀에서나 본 듯한 낡은 우체통을 보는 순간 발길이 멈춰졌다. 향수어린 대문 풍경이 좋아서.
기름칠이 덜 됐는지, 대문을 여는 순간 삐걱 소리가 났다. 70년대나 입었을 법한 교련복과 ‘일 원이요, 이 원이요’를 읊조리며 분주하게 손가락을 움직여댔던 주판, 칼로 흠집을 파놓은 책상, 마룻바닥을 굴러다니던 몽당연필. 학창시절을 연상케 하는 소품들로 가득 메워져 있던 이곳은 카페였다. 그 곳에 앉아 따뜻한 보리차를 마시고 있자니 가슴 속 깊이 간직했던 초등학교 시절의 기억이 스물 스물 고개를 내밀었다.
그리고 한 동안 내 시선을 삼켜버린 풍금. 교실을 가득 채우던 풍금의 깊고 삐걱거리는 소리는 그때 그 시절의 배경음악이었다. 가난했던 그 시절, 한 학년에 풍금이 한 개라도 있으면 다행이다. 음악 시간이 되기 전이면 옆 반에 있던 풍금을 옮기느라 친구들과 힘을 빼기도 했다. 페달을 밟아 바람을 넣어 연주해야 하는 탓에, 선생님은 종종 반장이나 부반장을 의자에 앉혀 페달을 밟게 했다. 합창 대회가 있는 날에는 연주할 줄 아는 아이에게 반주를 일임하고, 선생님은 노래만 가르쳐주었다.
선생님이 연주하면 반 아이들과 입을 쩍쩍 벌리며 가사를 따라 불렀다. 곧 1분단부터 4분단까지 네 마디 씩 나눠서 “도미솔 솔솔, 미파솔미 도도…” 계명도 신나게 따라 불렀다. 쉬는 시간이 되면 그 풍금 뚜껑을 열고 페달을 밟으며 아무 건반이나 누르는 장난을 치곤했다. 힘껏 페달을 밟으면 소리는 일순간에 커진다. 깜짝 놀라 건반 뚜껑을 닫고는 도망갔던 일도 수두룩하다. 그러다 선생님한테 걸리는 날에는 매운 군밤 한 대다.
종례 후 아이들이 하나, 둘 교실 문을 나서고 선생님도 교무실로 가고 나면 몇몇 여자아이들이 풍금 앞으로 모인다. 어쩌다 피아노 칠 줄 아는 여자 아이가 있는 날에는 음악책에서 신청곡을 고르기도 했다. 곧 이어지는 우리들만의 작은 음악회. 깊은 울림의 소리, 여운을 남기며 사라져가는 그 소리가 좋았다. 내 마음 속의 풍금은 따뜻하고 푸근한 고향이다. 지나간 어린 시절이다.
덧붙이는 글 | Ennoble 잡이에 게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