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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츠버그 스틸러스가 5일 디트로이트에서 벌어진 제40회 수퍼볼에서 시애틀 시호크스를 21-10으로 대파한뒤 피츠버그의 하인즈 워드가 어린 아들을 안고 기뻐하고 있다.
피츠버그 스틸러스가 5일 디트로이트에서 벌어진 제40회 수퍼볼에서 시애틀 시호크스를 21-10으로 대파한뒤 피츠버그의 하인즈 워드가 어린 아들을 안고 기뻐하고 있다. ⓒ AP/연합뉴스
하인즈 워드라는 이름이 갑자기 뉴스에 나온다. 처음 듣는 이름이다.

사실 한국에서 미식 축구를 보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나. '슈퍼볼'의 '볼'이 'Ball'이 아니라 'Bowl'이라는 걸, 올해엔 어떤 팀들이 슈퍼볼에서 맞붙었는지 아는 사람은 또한 얼마나 되겠는가. 하지만 하인즈 워드는 어머니가 한국인이다. 이 점 하나면 국내 언론에게는 충분하다.

8일자 신문들은 거의 다 (아마도 전부인 것 같지만, 모든 신문을 확인해 보지는 못했으므로), 워드가 슈퍼볼 트로피에 키스하는 사진을 1면으로 실었고, 피츠버그가 우승했건 해태 타이거즈가 우승했건 알 바 아닌 나까지도 그 사진을 억지로 봐야만 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언론의 이런 '오버'가 싫다. 솔직히 말해 역겹다. 한국인들 중에 미식축구 좋아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 미식축구는 솔직히 말해 미국이라는 나라에서만 인기있는 '동네 스포츠'일 뿐이다. 피츠버그란 곳이 어디 있는지도 모르겠다.(메이저리그 팬이라면 알지도 모르겠다. 거기 야구팀도 있는 것 같으니)

그런데 언론에서 하도 팡파르를 불어대니, 우리는 그들이 마구 써대는 워드의 '풀 스토리', 즉 주부들이 미장원에서 뒤적거리는 잡지에 잔뜩 나오곤 하는 류의, 그렇고 그런 기사들을 억지로 봐야 하는 형편이다.

한국 언론의 이런 '난리블루스'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일단 황우석 교수가 몰락한 뒤(황우석 팬들의 분투는 대단하지만, 한번 깨진 영웅 신화는 복구가 거의 불가능하다), 언론에겐 새로운 '영웅'이 필요했다고 본다. 마침 그때, 하인즈 워드라는 청년이 나타난 것이다.

한국 사회의 이방인 배타성은 전혀 거론 안돼

미식축구를 하든 수중 발레를 하든, 애초에 종목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월드컵 때 응원하던 그 수많은 사람들이, 애초에 축구가 좋아서 그랬던 건 아니지 않은가? 부계만 광적으로 따지는 한국의 풍조도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어머니가 한국인인 것이 오히려 좋을 수도 있다. 어머니의 눈물겨운 미국 생활과, 지극한 자식 사랑! 이렇게 감동의 '휴먼 스토리'를 만들 수 있는 소재가 앞으로 또 흔하겠는가? 물론 그 과정에서 기삿감이 못 되는 '거시기한' 이야기, 이를테면 어머니를 결국 미국으로 건너가게 한 한국 사회의, '이방인'에 대한 편협함과 몰인정 같은 것은 당연히 덮어진다.

미국 언론에도, 워드는 자국의 어두운 면을 감추는 데 좋은 '거리'가 되는 인물이다. 말만 '인종의 용광로'지, 백인이 아닌 사람들은 태어날 때부터 명확하게 그어진 한계 안에서만 살아가야 하는 폐쇄적인 사회가 미국이다. 특히 흑인은, 운 좋게 중산층 이상 가정에서 태어나 관료가 된 사람들이 아니라면, 스포츠나 랩 음악 말고는 성공 같은 건 꿈도 꾸기 어렵다.

과연 워드가, 미식축구가 아닌 다른 길, 예를 들어 변호사나 학자 같은 걸로 성공하려는 꿈이 있었다면, 결과는 어땠을까? 그러나 미국의 주류 언론은 워드를 영웅시함으로써, 사회 문제인 인종 문제를 개인의 '노력'의 문제로 왜곡해 버린다. 틈만 나면 하층민들 복지 예산 깎아먹기에 열중하는 공화당 정부는, 워드의 '자수성가'를 크게 찬양하며, 하층민들의 비참한 처지를 모두 그들의 '못난 본성' '게으름' 등의 탓으로 몰아세울 것이다.

워드와 그의 어머니는 그들의 주장을 입증하는 데 유용한 도구가 될 것이다. 이리하여, 복지예산 깎아 다른 나라 사람 죽이는 무기나 만들어대는 미국 정부는, '영웅'의 뒤로 쏙 숨어버린다.

'하인즈 워드'가 지금 가장 중요한가

물론 워드는 노력을 많이 했을 것이다. 그건 칭찬받을 일이고, 본인도 성공을 마음껏 즐길 권리가 있다. 하지만 내 솔직한 심정은, '고만 좀 해라'다. 물론 워드에게 하는 말이 아니고, 역겨울 정도로 '오버'하는 한국과 미국 언론에게 하는 말이다. 나에게 이것은 그저 해외 토픽 급이나 되는, 어디까지나 관심 없는 외국 스포츠 이야기일 뿐이다.

미국 언론들의 위선과 가증스러운 속내도 짜증 나지만, 일단은 국내 언론들만 좀 비판하고 싶다. 더 중요한 뉴스거리가 산더미같이 있다. 강정구 교수는 결국 직위해제 되었다. 스크린쿼터 문제가 다시 불거졌다. 이건희 회장은 돈으로 얼렁뚱땅 넘어가려고 한다. 이라크에선 지금도 사람들이 죽고, 죽고, 또 죽고 있다. 고작 딴 나라 공놀이 이야기 갖고 수선을 떨 때인가? 스스로 3류 주간지가 되고 싶으면, 제호라도 바꾸고 수선을 떠는 게 좋을 것이다.

그리고 정부 훈장이라니 당치도 않다. 하인즈 워드 이미 충분히 명예롭고, 돈도 많다. 그는 자기 자신과, 자기 팀 동료와 팬을 위해 땀 흘려 뛰었던 것이다.

당치도 않은 쇼는 집어치웠으면 한다. 지금도 국내에는 워드만큼이나 능력 있고 꿈 많으면서도, 나라 떠날 생각하는 혼혈 청년들 많다. 그 청년들 모두 떠나버리기 전에 정신 차리기 바란다. 헛나팔에 장단 맞추는 건 이젠 조금, 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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