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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새태우기가 절정에 이르렀을 무렵
억새태우기가 절정에 이르렀을 무렵 ⓒ 유근종
지난 2003년 행사 때 3만여 명이 다녀갔다는 말에 조금 겁을 먹기도 했지만 그냥 한 번 가보자는데 친구들과 의견을 통일했다. 창녕군청에 알아보니 너무 많은 인파가 몰릴 것을 예상하고 일부러 대외적으로 홍보를 하지 않았다는 얘기를 했지만, 이번에는 일요일이라 그 당시에 비해 사진 찍는 사람들이 많이 늘어서 4, 5만명은 올 거라 예상하고 있었다.

셔틀버스를 이용하는 관광객들
셔틀버스를 이용하는 관광객들 ⓒ 유근종
정월 대보름 오전에 친구들을 만나서는 창녕으로 향했는데 비교적 코스가 쉽다는 옥천매표소 가는 길에 차들이 늘어섰다. 차를 계성에 세우고는 셔틀버스를 이용해서 매표소까지 쉽게 올라갔다.

산행을 하는 중간 잠시 쉬는 관광객들
산행을 하는 중간 잠시 쉬는 관광객들 ⓒ 유근종
지난 번 친구와 함께 간 화왕산의 등산로는 관룡사를 지나 용선대로 오르는 등산로였는데, 이번에는 등산로가 아닌 임도였다. 등산로가 아니라 오르는데 어려움은 없었지만 등산을 하면서 느낄 수 있는 매력은 찾을 수 없었다. 억새 태우기 행사만 아니라면 그리고 친구들과 같이 가지 않았다면 땀도 충분히 흘릴 수 있는 관룡산 쪽을 이용했을 것이다. 그렇게 힘들지도 않으면서 등산의 묘미를 만끽할 수 있으니 좋은 곳이다.

억새 반, 사람 반
억새 반, 사람 반 ⓒ 유근종
처음에 예상과는 달리 화왕산을 향해 가는 길은 줄을 서서 갈 정도는 아니었지만 화왕산 5만여 평의 억새밭을 본 순간 놀라고 말았다. 사람들이 얼마나 많던지 억새보다 사람이 많은 것이 아닌가 착각할 정도였다. 오르는 길이 한 군데만 있는 것은 아니니 그럴 수밖에는 없겠지만 내 평생 한 장소에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본 것은 처음이다.

정상으로 오르는 시간이 비교적 짧게 걸린 탓에 억새밭에서 달집을 태우고 억새를 태우기까지 기다리는 시간은 꽤 많이 남아 있었다. 정상 맞은 편 배바위를 오르기도 하고 사람들이 모여 있는 모습을 사진에 담기도 했다.

한 꼬마가 연을 날리고 있는 모습
한 꼬마가 연을 날리고 있는 모습 ⓒ 유근종
여기저기서 꼬마들이 연을 날리는 모습도 보였는데 어린 시절 기억이 떠올랐다. 동네에 달집태우기를 하면 달집을 세우고 꼭 연 하나를 묶어서 달집과 함께 태웠다. 어린 시절 동네에서 연을 만들어 날리면 꼭 너무 높이 솟아 바람에 못 이겨 멀리 시집을 보내기도 했는데, 내가 만든 연을 달집에 태울 기회도 있었던 것이다.

날씨가 구름 한 점 없는 쾌청한 날씨였고 따뜻한 날씨라 어린아이들과 노인 분들도 꽤나 많았다. 옆에 있던 아내는 다음번에는 아들까지 데려오자고 할 정도였다. 하지만 내려오면서 고생을 많이 한 탓에 이번 행사가 우리가 경험하는 처음이자 마지막이라고 말했다.

한참을 기다린 끝에 드디어 달집태우기 할 때가 된 것 같아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자리로 옮겼다. 산을 오르는 길에는 사진 찍는 사람들이 별로 뵈지 않는 것 같더니 그래도 정상에는 꽤 많은 사진인들이 모였다. 저마다 좋은 장면을 사진에 담기 위해 진을 치고 있었는데 조금 위험한 곳에 자리한 사람들도 있었다. 나중에 억새에 불이 붙고 나서 잠깐 고립되기도 했는데 좋은 사진도 좋지만 그런 위험한 행동은 하지 말아야 한다. 사진은 사람보다 중요하지 않다.

달집이 타고 있다
달집이 타고 있다 ⓒ 유근종
달집에 불을 붙였는데 너무 많은 사람들이 모이다보니 이 때부터 행사 진행이 조금 이상하게 되어버렸다. 아직 억새에 불을 붙이면 안 되는데 누군가가 불을 놓으니 그것을 본 다른 사람들이 같이 불을 놓는 바람에 억새 태우기 행사는 거의 10여분 만에 싱겁게 끝나고 말았다. 한 순간의 잘못으로 행사를 진행하는 사람 그리고 그 장관을 보기 위해서 모인 수많은 군중들이 피해를 본 것 같다.

너무 일찍 불을 놓았다
너무 일찍 불을 놓았다 ⓒ 유근종
행사가 끝나고 이제 하산길이다. 그 때부터 이번 행사의 고행이 시작되었다. 등산로가 여러 곳으로 나 있지만 위험하지 않은 임도를 이용하려는 사람들이 많아 화왕산성 입구에 수많은 사람들이 몰리는 바람에 그 곳은 아수라장을 방불케 했다. 서로 먼저 이 문을 빠져나가려 하다보니 서로 밀고 밀리고 욕설이 오가기도 했다.

화왕산성을 빠져나가는 관광객들, 입구가 너무 좁다
화왕산성을 빠져나가는 관광객들, 입구가 너무 좁다 ⓒ 유근종
서로 조금씩만 양보를 한다면 자연스럽게 물 흐르듯 빠질 수도 있는데 아쉬웠다. 이 모든 것들은 나 혼자만의 생각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조금씩만의 여유를 갖는다면 행사는 정말 좋았을 것 같다.

우여곡절 끝에 몇 미터를 1시간여 만에 빠져나와서는 하산길을 나오는데 줄을 서서 산 아래 매표소까지 줄곧 걸었다. 이제 안도의 한숨이 나올 만도 한데 다시 셔틀버스를 타기위해 서 있는 줄을 보니 앞이 까마득했다. 결국 일행들과 어렵사리 통화를 하고 차를 세워둔 곳까지 걷기로 했다.

걸어오다 힘이 빠져서 잠시 쉬어가기로 하고 가방에 고이 넣어둔 소주 한 병을 그제서야 꺼냈다. 지금까지 마신 어느 소주보다 맛나는 소주였다. 이번 산행의 힘든 모든 것이 삭~ 녹아내리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2시간여를 걸어서 차를 세워둔 곳에 도착했고, 집에 오니 새벽 한 시를 훌쩍 넘긴 시간이었다.

잔불이 보이고 저 멀리 달이 떴다
잔불이 보이고 저 멀리 달이 떴다 ⓒ 유근종
이번 억새 태우기 행사에 다녀오면서 많은 생각을 했는데 그 중 하나가 '이제 억새 태우기는 내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애초에 사람들이 이렇게 많이 몰릴 줄은 주최 측에서도 몰랐겠지만 마지막 하산길의 아수라장에 대한 책임을 행사를 보기 위해 먼 곳에서 온 사람들의 질서의식만 탓할 것도 아닌 것 같다. 이번 행사를 보면서 여러모로 씁쓸한 생각이 많이 들어 아쉬움이 남는다.

덧붙이는 글 | 이번 행사는 지난 2003년 이후 3년 만에 열린 행사로 그 동안 환경단체의 반발로 미뤄져 온 것이라 한다. 그도 그럴 것이 같이 간 친구가 불 속에서 고라니가 뛰어 나오는 것을 보았다는 것을 보니 그럴 만도 하다. 이제 소중한 자연을 더 잘 보살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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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경상대학교 러시아학과에 입학했고,지난 1998년과 1999년 여름 러시아를 다녀와서 2000년 졸업 뒤 사진전 "러시아 1999"를 열었으며 2000년 7월부터 2001년 추석전까지 러시아에 머물다 왔습니다. 1년간 머무르면서 50여회의 음악회를 다녀왔으며 주 관심분야는 음악과 사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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