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 김강임
아파트 주민과 함께 떠나는 생태오름기행

이른 아침 피어오르는 물안개가 마지막 남은 추위를 녹였나 보다. '대동강 물도 녹는다'는 우수, 내가 사는 아파트 경비실 앞에는 이른 아침부터 생태기행에 나서는 '오름 동우회'주민들이 모여들었다. 벌써 34회 오름 탐사에 나서는 '아파트 오름 동우회' 회원들은 한 지붕 아래 사는 주민들로 이루어진 모임이다.

엘리베이터에 공지된 오름답사 답사계획을 볼 때마다 늘 함께 떠나고 싶었는데, 휴일마저도 바쁘게 빼앗아 가버리는 일상을 핑계로 처음 생태기행에 나서게 되었다. 처음 보는 이웃 주민들이지만 신입회원인 나를 반갑게 맞이해 준다. 생태기행의 길라잡이는 오름탐사에 관심이 많으신 오식민 선생님. 선생님의 목에 걸린 호루라기가 마치 학생들을 인솔하는 것 같아 인상적이었다.

ⓒ 김강임
제주 오름의 왕국 북제주군 송당

제주시에서 동부관광도로로 향하자 아침 안개가 서서히 걷힌다. 휴일 아침의 도로 표정은 심심할 정도로 한가했다. 동쪽 끝에는 봄이 왔을까? 산 너머 동쪽으로 향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벌써 설렘으로 가득하다.

동부관광도로를 달리던 차가 대천동 사거리에서 좌회전을 하자, 작은 도로와 보리밭 사이에서 크고 작은 오름들이 안개 속에서 숨어 있다. 우리가 탐사하게 될 오름은 체오름. 체오름은 농촌에서 알곡을 고를 때 사용하는 '체'와 '키', '골체', '삼태기'등을 한 모양 같다고 하여 체오름이라 부른다.

제주사람들은 말한다. 이곳 북제주군 송당리는 '오름의 왕국이다'고. 정말이지 북제주군 송당리에 접어들자, 어깨를 겨룬 오름들이 왕국을 이루고 있는 것 같았다.

도로변에 차를 세우고 시멘트 도로를 500여m 걸어가니 누군가 조성해 놓은 수목원이 있었다. 그 수목원 사이 길은 비포장도로였지만 제주 특유의 검은 흙을 밟을 수 있다. 개인소유의 수목원 사이 길 끄트머리에 다다르자, 삼태기 모양을 한 체오름이 눈앞에 걸려 있다. 주변의 소나무와 삼나무가 어우러져 아침 발걸음이 더욱 상쾌하다.

늘 아스팔트길을 걷고 살아가는 아파트 사람들은 겨우내 얼었던 땅이 사르르 녹아 진흙투성이가 된 흙길을 사뿐 사뿐히 걸어간다. 표고 382m, 비고 117m인 체오름의 길섶에는 억새가 군락을 이루었다. 지난 겨울 눈보라에 짓무른 억새밭길을 헤치고 체오름의 십장부인 굼부리로 향한다.

ⓒ 김강임
이렇게 넓은 화구를 가진 오름이 또 있을까?

억새밭 사이 길을 걸으니 마치 가을 길을 걷는 것 간다. 말굽형 분화구는 병풍을 두른 듯 언덕으로 둘러 싸여 있고, 그 분화구안에 서 있으니 바람 한 점 없다. 분화구의 포근함에 봄을 느꼈는지 일행들은 웃옷을 벗기 시작한다.

"이렇게 넓은 분화구가 또 있을까?" 체오름의 분화구는 마치 동산을 이룬 듯 넓은 초지를 이룬다. 분화구 안을 한바퀴 돌아보는데도 30여분 정도가 걸리니, 과연 분화구 안의 웅장함을 직감할 수 있다. 화구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제주를 요새로 작전을 폈던 일제시대 잔해로 군사시설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유일하게 그 곳에 물이 괴어 있었다.

ⓒ 김강임
분화구 안에서 서식하는 콩란과 볼레나무, 그리고 삼나무, 소나무들이 억새와 함께 군락을 이룬다. 태풍 매미에 휩쓸려간 화구 언저리에는 벌겋게 흙덩이가 알몸을 보이고 있어 자연재해의 아픔을 느낄 수 있었다.

ⓒ 김강임
그러나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체오름의 분화구가 마구 개방되어 생태계의 훼손을 가져오지나 않을까 하는 조바심이 생겼다. 앞으로 체오름 굼부리를 생태보존 차원에서 출입 제한하여 자연 생태계가 살아 숨쉴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 본다.

ⓒ 김강임
분화구를 한바퀴 돌아보고 난 뒤 체오름 등성이에서 뜨거운 커피로 목을 축이는 아파트 주민들. 그 커피가 체오름 분화구에서 타오르는 화산체처럼 뜨거웠을까?

능선에서 감상하는 오름 속의 오름

체오름 능선 따라 걷는 재미가 쏠쏠하다. 다소 가파를 것 같으면서도 나지막한 오름 등성이를 밟고 가다보면 어느새 땀이 흐른다. 그리고 한번쯤 뒤를 돌아보는 자는 오름 왕국의 묘미가 무엇인가를 음미할 수 있다. 이때 가파르다고 너무 쉬어가지 말고 뒤돌아서서 오름을 감상하라.

ⓒ 김강임
다랑쉬오름, 높은오름, 둔지오름, 안돌오름 밧돌오름, 거슨새미오름, 알바매기오름, 멀리 바다 끝에 드러누워 있는 서우봉까지. 아기자기하게 오손도손 누워 있는 오름 속의 오름들. 체오름 정상에 서니 오름 왕국에 빠져들어 시간가는 줄을 몰랐다.

ⓒ 김강임
봄을 튀우는 '말굽형 분화구'

볼레나무 가지에는 이제 막 여물을 키워가는 보리수가 제법 통통하다. 그리고 분화구의 열기를 받아 봄을 틔우는 진달래가 개화의 진통을 겪는다. 비탈진 벼랑사이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소나무와 삼나무, 그리고 언땅에서 기지개를 켜는 생물들.

ⓒ 김강임
진달래가 군락을 이루는 화구 능선을 따라 걷다보니 마치 백록담에 와 있는 기분이다. 특히 능선을 지키는 보리밥나무와 봄을 틔우는 진달래가 봄의 화신인양 배시시 웃으며 내 마음속에 봄을 단장한다.

ⓒ 김강임
체오름을 뒤로하고 내려오는 길목에서 봄 마중 나온 누렁말과 검정말을 만났다. 한가롭게 풀을 뜯는 광경이 한가롭다. 그 언덕배기에서 생태기행에 나선 아파트 주민들은 오름 얘기를 나누며 떠날 줄을 몰랐다. 눈 앞에 펼쳐진 오름 이야기, 등 뒤에 누워있는 오름 이야기, 그 오름 속에 묻혀있는 인간과 자연의 하나 됨. 우리들의 생체리듬 박동수는 빠르게 뛰었다.

삼태기처럼 생긴 체오름


체오름은 북제주군 송당리와 덕천리에 있는 오름으로, 표고 382.2m, 비고 117m, 둘레 3036m, 저경 910m로 말굽형 화산이다. 체오름 화구 방향에는 암설류인 3개의 알오름이 분포하고 있으며 화구는 유출된 용암의 흐름으로 인해 V자형 침식계곡을 이루고 있다.

암질은 흑회색으로 미반상 구조(1~2mm 크기의 담황갈색 감람석 반정이 암석의 약 5%를 구성하는 구조)인 용암류 사이에 크링커층이 발달되지 않고 용암류내부 상승에 따른 용암튜브구조를 형성한다. 대부분 분석구는 흑갈색의 각력상이며 화산분출시 회전운동으로 타원의 모양을 형성하고 사장석 조면구조에 감람석 반정을 갖는다.

용암이 다량으로 분출하여 큰 규모의 용암터널이 많으며 암질이 단순하고 세립질이다.

덧붙이는 글 | 체오름 가는길은 제주시-동부관광도로-대천동사거리에서 좌회전-송당마을-체오름으로 오름탐사 시간은 2시간 정도가 걸린다. 2월19일 다녀온 오름탐사 기행문이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