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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처럼'을 부르다

올해 경남 합천의 대안학교인 원경고등학교에선 18일부터 20일까지 2박 3일간의 새내기 생활안내 훈련이 열렸습니다. 행사를 앞두고 갑자기 추워진 날씨 때문에 걱정을 했습니다만, 새봄 같은 아이들이 오기 때문일까요. 접수하는 18일 낮부터 날이 완전히 풀려 마음이 여간 푸근하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을 맞이하기 위해 모든 선생님들이 학교에 미리 나와 기숙사 방과 복도를 쓸고 닦았습니다. 화장실 변기를 청소하고, 이불을 준비하였으며, 일정표를 붙이고 환영 펼침막(플래카드)을 달고 걸었습니다. 저도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새내기들을 기다렸습니다. 새내기들이 대안학교에 오기까지 그 선택의 과정이 얼마나 힘들었을까를 생각하며, 그런 선택을 해준 아이들에게 고마워하면서 말입니다.

▲ <바위처럼>을 부르고 있는 원경고 선생님들. 어떤 유혹의 손길에도 흔들림 없는 바위처럼 살자꾸나.
ⓒ 정일관
작년 여름예비학교 때나 면접할 때보다 훨씬 키가 크고 듬직해져서 찾아온 아이들입니다. 반면에 대안학교와 대안교육에 대해서 잘 모르는 학부모들은 기대와 불안함 속에 접수를 하였습니다.

34명의 새내기들과 30명 가까운 새내기 학부모들이 둘러앉은 가운데 새내기 생활안내 훈련이 시작됐습니다. 어색한 모습으로 쭈뼛쭈뼛 앉아 있는 아이들을 위해 선생님들은 환영의 노래를 선물하였습니다. 대안학교에 첫발을 디디는 아이들에게, 어떤 절망과 유혹에도 굴하지 않는 바위처럼 살자고 '바위처럼'을 힘차게 불러주었습니다.

명곡 저수지 명상

학교 소개와 교육활동 동영상을 시청하고 난 후, 새내기들과 학부모들은 모두 밖으로 나왔습니다. 학교에서 걸어서 30분 가량 걸리는 명곡 저수지로 떠나기 위해서입니다. 명곡 저수지는 학교 근처에서 가장 큰 저수지로 주변 경관이 아름다워서 명상을 하기에 좋은 곳입니다.

명곡 저수지로 출발하기 전에 저는 새내기들과 학부모님께 부탁을 하였습니다. 저수지까지 걸어갈 때, 손을 꼭 잡고 가자는 것입니다. 어릴 때 이후 우리는 과연 30분간 아이와, 또는 부모님과 손을 꼭 잡고 걸어본 적이 있었을까요? 아마 매우 드물 것입니다. 그래서 소중한 가족의 온기를 느껴보자는 것이었습니다.

▲ 손에 손 잡고. 아이야, 우리 잡은 손 놓지 말고 서로 힘이 되자.
ⓒ 정일관
명곡 저수지로 가는 찻길을 따라 새내기들과 학부모들은 모두 손을 잡고 걸었습니다. 따사로운 햇살이 눈부시게 쏟아져 멀리 보이는 산과 들이 아름다웠습니다. 따뜻한 날씨 때문에 이마에 땀이 살짝 배일 정도가 되었을 때 명곡 저수지에 도착했습니다.

숨을 고른 뒤 잠시 눈을 감고 소리, 감촉, 냄새 등을 느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새소리가 산 속에서 들렸고, 시원한 바람이 스쳐 지나갔으며 따뜻한 햇볕이 느껴졌습니다. 이내 눈을 뜨고 저수지 수면을 바라보며 명상을 하였습니다. 지나온 시간과 인연들, 우리 자신들의 삶과 만남과 관계들을, 그리고 나의 불안과 두려움과 욕심을 차례로 명상하였습니다.

▲ 업어 주기. 부쩍 커버린 아이를 업는 부모의 마음은 어떨까?
ⓒ 정일관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저수지를 떠나 학교로 향했습니다. 그러나 그냥 갈 수는 없지요. 새내기와 부모들이 서로 업어주기를 하였습니다. 전봇대 두 개의 거리를 업어주고, 다시 그 거리만큼 업히는 것입니다. 이미 부모보다 더 커 버린 아이를 오랜만에 업는 부모의 마음은 어떨까요? 그리고 이제는 업히기보다 업어드려야 하는 아이들의 마음은 어떨까요?

새롭게 시작하는 생활 교육

▲ 마음 나누기. 조별로 만든 마음 나눔 작품을 발표하며 조원들을 알리고 있는 새내기들.
ⓒ 정일관
저녁때는 '마음 나누기'라는 이름으로 조별 모임을 가졌습니다. 조 이름과 구호, 그리고 조원들을 소개하는 대자보를 만들어 발표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새내기들은 조원들의 특징을 잡아서 참 다양한 조 이름을 붙였습니다. '사랑스럽 조', '상상플러스 조', '검은펜 조', '쓰리 간지 조', '불사 조', '한마음 조', '잘 살아보세 조', '양철수 조', '빌리아드 조' 등 기발한 이름들을 지어서, 각자의 조를 홍보하고 뽐내었습니다. 신나는 화합 놀이도 하였습니다.

▲ 새내기들의 마음 나누기 우수 작품-상상 플러스
ⓒ 정일관
모든 일과가 끝나고 하루를 마무리하는 시간에는 주변 청소를 하였습니다. 학교에서는 이것을 생활 교육이라고 합니다. 먼저 방을 쓸고, 걸레로 깨끗하게 닦은 다음, 각자의 양말은 예외 없이 손빨래를 하고 널게 하였습니다. 빗자루와 걸레질을 못하는 아이들에게는 선생님이 직접 시범을 보이며 교육을 시켰습니다. 그리고는 사물을 정리하고 이불을 펴게 한 다음, 가만히 앉아 하루를 돌아보게 하였습니다.

다음날 일어나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불을 가지런히 개고, 씻은 다음 운동장에 모두 모여 아침 운동과 산책을 하였습니다. 신발을 가지런히 돌려서 놓게 하는 교육도 아울러 하였습니다. 다소 아이들이 힘들고 귀찮아하기도 하였지만, 이는 배움과 생활이 둘이 아닌 '살아 있는 교육'을 위해서 학교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교육의 한 방향입니다.

새내기들의 아름다운 수화

둘째 날 일과는 오전에 마음공부 강의와 공동체 문화 토론, 오후에 연 만들기, 저녁에는 선택한 분반에 가서 배움 나누기 순으로 진행됐습니다. 마음공부는 각자의 관심을 마음으로 돌리는 계기가 됐으며, 공동체 문화 토론은 아이들에게 행복한 공동체, 그리고 자유와 자율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서 함께 생각할 수 있는 과정이 되게 하였습니다.

▲ 마음 그리기를 하고 있는 새내기들.
ⓒ 정일관
오후의 연 만들기는 모두 연살을 깎고, 종이를 마름질하여 가오리연을 만들고, 그 연에 각자의 상상력을 담은 그림을 그리게 하였습니다. 운동장으로 나와 웅성거리며 연을 날렸는데, 바람이 잠잠하여 그만 연을 날리지 못하였습니다. 무척 아쉬웠죠. 그러나 이쯤 되니 새내기들은 서로 얼굴과 이름을 익히고 놀라운 친화력으로 친해져서 운동장이 환하게 밝아졌습니다.

▲ 새내기의 마음 그리기
ⓒ 정일관
저녁 시간의 배움 나누기는 수화와 풍물, 스포츠 댄스 등 세 분반으로 나누어 짧은 시간이지만 체험하여 익히게 한 다음, 간단한 발표회를 갖는 시간입니다. 새내기들은 1시간 동안 간단한 기량을 익혀 순서대로 발표를 하였는데, 풍물은 14명의 새내기들이 간단한 사물놀이 가락을 표현했고, 스포츠 댄스는 12명의 새내기들이 짝을 이루어 '차차차' 기본 동작을 표현하였습니다. 끝으로 수화는 여섯 명의 새내기와 1명의 학부모가 참가하였는데, 해바라기의 노래 '사랑으로'를 수화로 표현하는 아름다운 모습에 저는 그만 가슴이 찡해져 눈물이 찔끔 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토론하고 생각하고 협동하면서

▲ 새내기들이 소망을 담아 만든 가오리연들
ⓒ 정일관
둘째 날 생활 교육으로 공동체 생활에 더욱 단단해진 새내기들이 마지막 날 오전 매듭 공예인 '원만이 만들기'에 참가하였습니다. '원만이'는 매듭과 구슬로 만든 사람 모양의 작품으로 '원만한 사람'을 의미합니다. 새내기들은 배운 대로 모두 하나씩의 원만이를 만들어 목에 걸었습니다. 걸림이 없는 원만한 사람이 되기를 기원하면서 말입니다. '원만이 만들기'를 좋아하는 새내기들이 무척 많아 다행스러웠습니다.

▲ 새내기들이 만든 <원만이>
ⓒ 정일관
그리고 감상문을 기재하고 발표하는 것으로 2박 3일간의 새내기 생활 안내 훈련이 모두 끝났습니다. 짧은 시간 동안 새내기들은 다양한 만남을 가졌고, 어설픈 몸짓들이 제법 익숙해졌습니다. 그리고 서로 소통이 부드러워지고, 정도 따뜻하게 들었습니다. 교육이란 이런 것인가요? 내 속에 너의 영역을 조용히 넓혀가고 네 속에 내 영역을 가만히 넓혀가는 것, 이것이 교육인가요?

▲ 원경고등학교의 이쁜 새내기들.
ⓒ 정일관
장보희 새내기는 생활 안내 기간에 스스로 식판도 닦고, 양말도 빨았던 경험을 통해 "부모님의 은혜를 느꼈다"고 말했고, 지준고 새내기는 "마음공부를 알게 되어 참 좋았다"면서 "앞으로 매일 하는 마음공부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하였습니다. 또한 김호중 새내기도 "자연 친화적인 삶에 흥미를 느낀다"면서 "이제 부모님과 떨어져서 홀로 설 자신이 생겼다"고 하였습니다.

새내기들은 입학식을 기약하고 학교를 떠났습니다. 우수 지나서 봄은 멀지 않았지만 새내기 아이들이 곧 새봄임을 알겠습니다. 저는 학교를 삼삼오오 떠나는 아이들의 뒷모습을 보며 속으로 말했습니다.

"그래, 새내기들아, 우리 다시 만나 토론하고 생각하고 협동하며 살자. 배려하고 사랑하고 참여하며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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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합천의 작은 대안고등학교에서 아이들과 만나고 있습니다. 시집 <느티나무 그늘 아래로>(내일을 여는 책), <너를 놓치다>(푸른사상사)을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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