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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의 돼지고기.
문제의 돼지고기. ⓒ 양중모
그리고 김치찌개를 끓일 때마다 고기를 사러 가던 정육점에 들어갔습니다.

"아저씨, 김치찌개 끓일 건데요. 3000원치만 주세요."

아저씨는 그 말을 듣고 고기를 꺼내려 하다가 잠시 멈칫거렸습니다. 의아한 눈길로 쳐다보니 아저씨가 저를 바라보며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집은 5000원 이하로는 칼질 안해요."

취업 면접 때 좋은 인상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평상시에도 늘 웃고 살아야 한다며 웃으려 노력했던 결심이 그대로 무너지는 순간이었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제 얼굴은 오만상이 찌푸려지면서 입에서는 상소리가 나올 뻔했습니다. 기분이 나빠질 대로 나빠진지라 적어도 저보다 20년쯤 더 살았을 아저씨에게 온갖 인상을 다 찌푸리고 훽하니 나와 버렸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예전에는 5000원 이하로 샀는데도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잘라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러고 보니 전 주로 그 정육점에서 제 형 정도 되는 아저씨들에게 샀었습니다. 어찌되었든 분을 삭이지 못하고 씩씩 거리며 나오자 수퍼마켓에서 좀 더 구경하다가 정육점으로 오는 여자친구가 제게 "왜 그러냐"며 물어봅니다.

화가 나긴 했지만, 그렇다고 그 자리서 싫은 소리 한마디 제대로 못하는 전, 여자 친구를 만나자마자 제 억울한 사연을 풀어 놓기 시작했습니다. 열심히 얘기를 풀어 놓는 중에 그녀가 묻는 말 한 마디에 정신이 멍해졌습니다.

"그래? 근데 여기 말고 고기 살 다른 데는 있어?"

아, 이럴 수가. 그러고 보니 대부분 대형 마트에 가서 장을 보다 보니 집 앞에 있는 가게들이 어디 있는지는 잘 모른다는 사실이 생각났습니다. 정육점은 여기 하나밖에 모르는데 어째야 할지 고민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다시 들어가서 사자니, 어쩐지 그 정육점 아저씨 상술에 넘어가는 것도 같고, 자존심이 상하기도 했습니다.

"그럼 고기 넣지 말까?"

옆에서 들리는 여자친구의 공포스런 목소리에 더욱 더 열심히 머리를 굴려보았지만 뾰족한 수가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저 마트 아저씨한테 다른 데 어디 있냐고 물어봐."

아, 제가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요. 아저씨에게 물어 보니 우리가 사는 아파트 후문 쪽으로 가면 정육점이 또 하나 있다고 합니다. 그렇게 화를 벌컥벌컥 내면서 일이라도 저지를 것처럼 굴었지만, 막상 그 정육점 앞에 가니 또 거절할까 걱정이 되었습니다. 결국 제 여자친구를 앞세워 갔습니다. 여자가 물으면 그래도 잘해 주겠다고 하지 않을까 싶었기 때문입니다. 창피하지만 그녀가 묻는 동안에 거절 당하는 것이 두려워 쭈뼛쭈뼛 밖에 서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곳 정육점 아주머니는 그런 제 걱정을 한 방에 날리듯 "당연히 되죠"라며 시원하게 답변해 주며 어떻게 요리해야 맛있다는 것까지 알려줍니다. 그제서야 전 그 판에 끼어들어 불만을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저쪽 정육점에서는 해주지 않는다, 나쁘다 뭐 이런 얘기를 하니 아저씨와 아줌마가 맞장구를 쳐줍니다.

"그러게요. 먹고 싶은 만큼만 먹어야지. 먹지도 않을 건데 많이 사서 뭐해요. 조금씩 사도 자주 오세요."

결국 두부가 가장 많이 들어갔네요.
결국 두부가 가장 많이 들어갔네요. ⓒ 양중모
결국 전 그 정육점 앞에서 늘 그곳만 오겠다는 다짐을 했습니다. 주로 차를 타고 마트에 가는 편이니 얼마나 그 집에 갈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동네에서 살 일이 있을 때는 늘 가던 정육점이 아닌 처음 가 본 그 정육점을 갈 것 같습니다.

집에 돌아와 메추리 알을 까며 생각해 보니 처음 갔던 정육점 아저씨 마음이 이해 안 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제가 만약 장사하는 입장이었다면 그렇게 말했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또 그 앞에서 자연스레 "에이 왜 그래요. 좀 해주세요"라고 능청스럽게 말하지 못하고 노골적인 불쾌감을 드러내는 제 자신의 인격에도 문제가 있음을 느꼈습니다.

그렇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아닌 것 같았습니다. 제가 만약 5000원짜리 고기를 살 돈이 없어 돈을 절약해 하는 상황이라 3000원치만 사야 하는 그런 절박한 입장이었다면 그 정육점 아저씨가 하는 말을 듣고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요? 소심한 제 성격상 싸우지도 못하고 나와서 투덜거리면서 깊은 마음의 상처를 입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곳에도 기웃기웃 거리는 하지만 쉽게 똑같은 말을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물론 제 기억 속에는 좋은 정육점 아저씨 아주머니들도 많이 있습니다. 열심히 일하시는 분들도 많다는 것 잘 알고 있고요. 또 3000원도 사실 제 돈이라기보다 아버지 돈이지만, 현재 경제적 능력이 없는 저로서는 한 푼이 아쉽기에 '정말 돈이 없는 사람들이었다면'이라는 생각이 더 많이 드네요. 서로간에 상처 주지 않고 살아가는 사회가 되었으면 하는 건 지나칠 만큼 이상적인가요?

이렇게 생각한다면, 정육점 아저씨도 3000원이나 5000원이나 사는 사람 입장에서는 똑같이 피땀흘려 모은 돈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받아 주기 쉬웠을 텐데 참 아쉬운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보다 더 아쉬운 것은 그 순간에 제가 그렇게 그 아저씨에 능청스럽게 말해 주지 못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아저씨와 그로 인해 혹시 대판 싸움을 벌이게 될지라도 그런 말을 해주지 못한 건 어디까지나 제 부족함입니다. 더욱이 그런 생각이 그 정육점에서 나와 집에 돌아 가는 길에 생각났다는 점에서 제 스스로에게도 많은 부끄러움이 느껴집니다. 소심한 성격 탓에 그 정육점에 다시 돌아가 이런 말을 할 자신은 없지만 대신에 이 지면을 빌려 정육점을 하는 아저씨들에게 이런 말을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3000원이 정말 아쉬운 사람들도 있다 생각하고 3000원어치만 달라고 해도 너무 박하게 대하지는 말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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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넓게 보고 싶어 시민기자 활동 하고 있습니다. 영화와 여행 책 등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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