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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동에서 다슬기 요리전문점을 하고 계신 고모님과 고숙을 뵙고 인사도 드릴 겸 몸보신도 할 겸 들렀다. 오후 1시가 다된 시간인데도 식당 안은 북새통이었다. 미안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천천히 걸으며 올 걸. 후회막급이지만 어쩔 수 없다.
다슬기 국물로 끓여낸 삼계탕 한 그릇은 여성분 둘이 먹어도 될만큼 푸짐하다. 이래 가지고 남는 게 있을까? 사람 좋으신 고숙과 고모님. 5년째 하는 식당치곤 제법 단골이 많은 편이지만, 주 5일제 이후 바뀐 세태 때문에 앞으로 남고 뒤로 밑지는 장사를 하고 계신 건 아닌지 걱정이다.
다슬기삼계탕을 맛나게 먹은 후 학동까지 걸었다. 소화도 시키고 주변 풍광도 찍어 볼 생각으로 걷기 시작했다. 안단테 속도로 느긋하게, 천천히 주위를 살피며 '뭐 찍을 것 없나'하면서 말이다. 청명한 하늘에 봄바람이 살랑살랑 불어 걷기 좋은 날!
그날 청담역 한 귀퉁이 은행건물 앞에서 미니트럭 라보 뒷자석에 앉아 '국화빵'을 굽고 계신 할아버지 한 분을 만났다. 나이 칠순, 장성한 자녀들이 잇딴 사업실패 등으로 뉴질랜드로, 어디로, 뿔뿔이 흩어져 더욱 힘들다는 할아버지. 작년 5월 15일 석가탄신일에 73세를 일기로 타계하신 저의 아버지(홍경일, 전남 곡성 오곡면 봉조리 말골출신)와 많은 점에서 닮은 분이라 정겨움이 앞섰다.
"할아버지, 저 이 국화빵 좀 찍어도 되나요?" 여쭙자 "그러세요" 흔쾌히 대답하신다. 아마도 빵만 찍으라는 말씀이실 것이다. 국화빵을 열심히 찍으며 "2000원 어치 주세요" 하니 "미안해서 그런 거라면 살 필요 없어" 하신다. 어쩜 우리 부모님 세대들은 저리도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이 크신 걸까. 새삼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에 불효자식의 마음이 아파온다.
국화빵 할아버지의 손자와 자식들을 향한 그리움을 무엇으로 표현할 수 있겠는가. 할아버지는 "뉴질랜드 다녀올려면 한두 푼 들어가는 것이 아닌데 이 국화빵 팔아 언제 노부부가 뉴질랜드에 가볼 수 있을까. 생전에 가능할는지 모르겠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필요경비는 1000만원. '무슨 방법이 없을까? 십시일반 모금... 이런 돈을 받을 어르신도 아닐 것 같고. 그렇다면? 그렇지, 이걸 <오마이뉴스>나 <중앙일보>에 기사화할 수만 있다면 혹시 가능할지도 몰라'. 그런 생각이 들자 할아버지 사진을 찍고 다른 손님이 오는 걸 기다렸다. 얼마 뒤 아이를 등에 업은 새댁이 들려 국화빵을 샀다. 자기 손 안에 쏙들어가는 국화빵을 사는 걸 아는지 아이는 연신 싱글벙글이다.
이따금 들르겠다는 말을 남기고 돌아서는 길에 마지막으로 여쭤보았다. "혹시 힘든 일은 없으세요?" "왜 없겠어. 당연히 있지." 구청의 단속때문이란다. 수시로 단속을 나오는 바람에 몇 군데 장소를 돌아가며 장사를 하니 더 힘드시다는 얘기.
이 글을 보신 독자님들께 부탁하고 싶다. 혹시 길을 가다 국화빵 할아버지를 보거든 그 할아버지가 뉴질랜드에 가 있는 손자와 자식들을 보러 갈 수 있도록 열심히 국화빵을 사주시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