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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은 딸에게 '깜짝 선물'을 주시려고 계획했던 것 같습니다. 아이들에게 함구령을 내렸다고 하니까요. 그런데 채팅을 하던 친구가 입이 간지러웠던 모양인지 그만 참지 못하고 딸에게 발설을 해버렸습니다. 그런 탓에 딸아이는 이미 '도착할 선물'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눈이 빠져라 기다리며 매일 우체통을 뒤졌습니다. 바로 그 기다리고 기다리던 추억의 앨범이 온 것입니다.
마치 먼 고향에서 그리던 애인이라도 온 양 딸아이는 굉장히 기뻐합니다. 식구들의 시선이 모두 소포에 쏠립니다. 하지만 딸아이는 혼자서만 몰래 뜯어보겠다고 소포를 들고 쌀쌀맞게 제 방으로 들어가 버립니다. 아, 궁금하기도 하여라!
얼마가 지나고 난 뒤에서야 저는 CD를 컴퓨터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여드름이 도톨도톨 돋아난 중학생들의 학교생활과 학교 밖 생활이 화면 가득 들어옵니다. 눈에 익은 아이들의 일상도 새삼 그리움으로 다가옵니다.
눈을 가리고 목발을 짚은 불편한 모습으로 장애 체험을 하는 아이들의 진지함, 화려한 사복차림으로 목젖이 다 보이게 웃는 여행 떠난 아이들의 싱그러움, 이 모든 것들이 추억의 보고에 저장되어 있습니다. 탱탱하고 활달한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이들이 금방이라도 모니터에서 뛰쳐나올 것 같습니다. 좋을 때입니다.
하지만 이런 황금기를 보내고 있는 아이들은 지금이 얼마나 좋은 때인지 알지 못합니다. 아니, 좋은 때라고 여기기는커녕 지금의 '질풍노도 시기'를 어쩌면 거추장스럽게 여기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아무런 상처 없이 쉬 지나가기만을 바라는 귀찮은 태풍처럼 말이죠. 우리가 과거에 그랬듯이 말입니다.
그러나 풋풋한 학창시절을 이미 보낸 이들은 '그 때 그 시절'이 얼마나 귀한 순간이었는지를 잘 압니다. 그 시절의 모든 것들이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남게 되는 보물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딸아이 담임선생님이 만들어주신 이 앨범도 그래서 보물인 것입니다.
두 장으로 된 이 CD앨범은 그냥 사진만 덩그러니 들어가 있는 게 아닙니다. 한 장의 앨범은 포근한 음악(이재훈의 사랑합니다)을 배경으로 마치 눈앞에서 직접 활동을 보는 것처럼 현장감 있는 사진집입니다. 또 다른 CD에는 먼저 다양한 메뉴가 보는 이의 눈길을 끕니다.
메뉴를 하나씩 클릭해 볼까요. '나의 글'은 자신을 소개하는 페이지입니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무슨 취미가 있는지, 이 다음에 뭐가 되고 싶은지 등이 소상하게 적혀 있습니다. 그리고 '나의 앨범'은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어린 시절을 담았습니다. 아기였을 때부터 유치원, 초등학교까지의 앙증맞은 시절을 한눈에 다 볼 수 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아직 총각인 담임선생님의 학창시절과 군 시절 사진입니다. 지금도 멋있지만 패기만만했던 그 시절의 선생님은 더욱 순수한 모습으로 입가에 웃음을 짓게 합니다. 이밖에도 아이들이 친구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적는 '롤링 페이퍼'도 있습니다.
아이들의 롤링페이퍼를 읽어보면 그 아이가 어떤 아이인지 금방 알 수 있습니다. 고마운 것은 겨우 한 학기만 다녔던 제 아이에 대해서도 친구들이 덕담(?)을 하고, 빨리 돌아오라고 채근을 하기도 한 사연이 실린 것입니다. 정겨운 페이지입니다.
또한 지난 한 해 동안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강조하셨던 '말씀'도 앨범에 새겨져 있습니다.
'주어진 일을 책임감 있게 하고, 양심을 속이지 말고,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항상 노력하라.'
선생님이 당부하신 말씀 그대로 아이들이 실천한다면 2학년 10반 아이들은 분명 우리 사회가 필요로 하는 훌륭한 일꾼들이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선생님은 추억의 보고인 학급앨범에 대해 이렇게 마무리를 합니다.
'사랑하는 2학년 10반 친구들. 항상 웃음을 잃지 않고 앞으로도 밝은 모습으로 생활하길 바란다. 이 작은 CD 안에는 친구들과의 추억이 담겨 있으니 소중히 간직하길 바란다.'
귀한 보물을 받은 작은 딸의 행복한 표정을 보니 저도 행복합니다. 선생님의 지극한 정성에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이런 열정적인 선생님과의 만남이 계속 이어지길 기대해 봅니다.
덧붙이는 글 | <대전남선중학교> 김우겸 선생님, 고맙습니다. 선생님의 사랑이 늘 한결같이 아이들에게 다가가기를 희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