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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고들빼기가 '다시' 태평양을 건너 왔다. 지난번 올케가 보내준 고들빼기는 아껴서 여름까지 먹으려고 했지만 식구들이 다 먹어버리는 바람에 바닥이 나버렸다. 그랬던 터라 이번에 다시 온 고들빼기가 내심 반갑긴 했다. 하지만 고들빼기에 얽힌(?) 개운치 않은 사연을 아는지라 조금은 찜찜한 기분이다.
고들빼기에서 이물질이 나왔다는 지난 번 기사가 <오마이뉴스>에 실린 뒤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멀리 한국에서 온 전화였다. 전화를 걸어온 사람은 우체국 쇼핑을 담당하고 있는 아무개 부장이었다.
그는 자신의 신분을 밝힌 뒤 고들빼기에서 이물질이 나온 데 대해 정중하게 사과를 했다. 그리고 다시 고들빼기를 보내주겠노라고 했다. 나는 그 기사를 쓰게 된 경위를 설명하며 다시 보내준다는 제의를 정중히 거절했다. 하지만 그는 사과의 뜻으로 나와 올케에게 고들빼기를 보내준다고 했다. 문제의 바로 그 고들빼기가 우리집에 도착한 것이다.
사실 그 기사를 쓴 것은 '국내도 아닌 해외에서 받아본 우리 고유의 음식인 김치에서 이물질이 나왔기 때문에 기분이 나빴다'는 다분히 감정적인 내용을 전달하고자 한 것은 아니었다. 물론 기분이야 나빴다.
하지만 내 불쾌한 감정으로 끝날 일만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참에 우리나라 김치의 품질관리 문제를 점검해 보며 경종을 울리고 싶었다. 더구나 최근 들어 우리나라의 대표 음식인 김치가 김치 종주국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명성을 잃어가고 있고, 일본과 중국이 우리를 추격해 오는 상황이라고 하니 이런 부실한 품질관리에 주의를 환기시킬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기사는 주목받는 댓글이나 쪽지 없이 스크랩 2회와 조회수 4300여를 기록한 채 잉걸로 떨어졌다. 물론 이 글을 읽은 독자들 가운데 품질관리와 관련된 이들이 있어 이들에게 약간의 경각심이라도 불러일으킬 수 있었다면 글쓴이로서는 수확을 거둔 셈이지만 말이다.
하여간 별 반응이 없는 가운데 이 기사가 내려갔는데 뒤늦게 관계자가 전화를 해오니 조금은 겸연쩍었다. 하지만 품질관리는 김치뿐 아니라 모든 제품, 모든 서비스에 대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해 본다. 어찌 보면 제품의 사활이 걸린 일이기도 할 것이다.
이러한 품질관리와 관련하여 내가 경험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이미 기사로도 나갔지만 지난달에 인터넷 회사인 '아델피아' 기술자가 반 년만에 우리집에 와서 인터넷을 설치하고 갔다. 물론 기술적인 문제가 있어서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일단 설치한 뒤에 이들이 보여준 고객관리와 품질관리는 참으로 감동적이었다.
아델피아 기술자는 우리집에서 작업을 마친 뒤 '고객 동의서(Customer Agreement)'를 내밀며 사인을 요청했다. 아울러 우리집의 케이블 위치가 그려진 도면과 안내문을 내게 건넸다. 거기에는 이런 내용이 적혀 있었다.
아델피아를 신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귀댁에 케이블을 설치하는데 먼저 지상에 케이블라인을 설치하려고 합니다. 이 케이블라인은 귀댁의 전면 혹은 후면에 있는 부속건물에 위치한 케이블대까지 연결될 것입니다.
저희는 날씨, 스케줄, 그리고 이 동의서 취합에 맞춰 정해진 날에 케이블선을 묻을 계획입니다. 귀하의 재산을 최대한 존중하면서 케이블라인을 묻으려고 하니 아래 정보를 얻는데 도움을 주시기 바랍니다.
다음 가운데 귀하의 주거상태에 해당이 되면 알려주시고 케이블 매장 작업을 진행할 수 있도록 이 양식을 제출해 주십시오. 질문이 있으면 사무실로 연락을 주십시오.
가두어 두어야 할 개가 있습니까? 예 _________, 아니오 ________
잠궈 두는 대문이 있습니까? 예 _________, 아니오 ________
케이블선을 묻기 전에 반드시 알아야 할 귀하 소유의 스프링클러나 전선, 수도관, 배수관, 경보기, 그밖의 지하 시설물이 있으면 오른쪽 도표에 그 위치를 표시해 주십시오.
이런 내용의 종이 한 장을 건네고 기술자는 그날 돌아갔다. 그런데 그 후에 아델피아로부터 인터넷 설치와 관련된 전화를 두 번이나 받았다. 전화를 걸어온 담당자는 귀찮을 정도로 자세하게 질문을 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난 뒤, 이번에는 또 다른 담당자가 '직접' 우리집을 찾아와 역시 인터넷 사용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그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나는 한국이 최고인 줄 알았는데 이곳의 빠른 인터넷도 대단히 만족스럽다는 기분 좋은 답변을 해 주었다. 그러자 그는 "고맙다"고 말한 뒤 주차장에 세워둔 차를 타고 떠났다.
그런데 그는 아주 가버린 것이 아니었다. 이번에는 그가 우리집 앞쪽에 나타났다. 차에서 내린 그는 잔디밭 위에 놓인 케이블을 끝까지 따라 가며 꼼꼼히 체크를 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케이블을 점검하며 한 5분 여 시간을 보냈을까. 그때서야 작업을 마친 듯 그는 차를 타고 떠났다. 정말 징한(?)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우리나라에서 처럼 '쉽게 쉽게' '빨리 빨리' '대충 대충' 그렇게 일을 끝내는 게 아니었다. 물론 내가 목격한 것이 미국 사회의 전반적인 시스템을 설명한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의 일 처리는 정말 꼼꼼하다 못해 어리석게 보일 만큼 느리고 철저하고 완벽했다.
다시 김치 이야기로 돌아와 보자. 사실 고들빼기가 무슨 죄가 있겠는가. 그 맛있는 고들빼기를 '대충' 담근 사람들이 문제인 것이지. 이번에 보내온 고들빼기 상자 안에는 해당 영농조합 대표자의 사과문도 들어 있었다.
그 사과문에는 '철저한 위생과 감독으로 맛있는 김치를 만들어 소비자에게 호평을 받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는 다짐이 적혀 있었다. 정말 진심이길, 정직하게 실천되는 '공약'이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다.
아울러 올케에게 고들빼기 값을 변상해주었다고 들었는데 참 고마운 일이다. 하지만 앞으로는 사후약방문이 되지 않도록 사전에 더욱 철저한 관리가 있어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최근에 내 눈길을 끄는 기사가 있다. 바로 민관이 공동으로 참여하는 '식품안전발전 공동협의체'를 다음 달에 발족한다는 기사다.
이 공동협의체는 소비자단체와 식품업계, 보건복지부, 식약청, 농림부, 해양부 등 민관이 공동으로 참여하여 김치와 된장 등 식탁에 자주 오르는 9가지 집중 관리 식품에 대해 검사 항목을 확대한다고 한다. 아울러 검사항목도 대장균 등 24가지에서 납과 농약성분, 보존료 등 67가지로 대폭 확대한다고 한다.
늦은 감이 없잖아 있지만 이제야 비로소 정부가 나서서 제대로 된 국민의 먹거리 품질관리를 한다고 하니 안심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이런 외부 세력(?)의 간섭이 있기 전에 음식을 만드는 사람들의 양심과 진심에서 우러난 정성이 먼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