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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겉표지
ⓒ 다밋
어떤 사람의 글을 읽으면 그 사람을 만나보지 않더라도 어떤 사람인지 어렴풋이 느끼게 된다. 책을 읽고 나서 나는 저자가 참 밝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의사라는 직업은 보람이 없으면 하기 힘든 직업이라고 생각해왔다. 늘 아픈 사람들만 대하다 보면 스스로 먼저 지치지 않을까.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직업일텐데, 그 정신적 육체적 노동의 강도를 말로 표현한들 얼마나 재현할 수 있을까.

책을 읽고 있자니 너무 바빠서 1년에 얼굴 한번 보기 힘든 친구가 생각났다. 인턴 생활을 하느라 학생일 때 비해 10킬로그램 정도 빠진 모습을 보고서 나는 그 친구가 얼마나 고된 생활을 하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말이 10킬로그램이지 정상 체중에서 빠진 모습은 보는 이를 애처롭게 만든다.

그래도 강단이 있는 친구기에 그 생활을 견뎌낼 수 있는 것일 게다. 가끔 휴가를 받아서 친구를 만날 때, 그 친구는 언제나 밝은 모습이다. 모처럼의 휴가를 확실하게 즐기고 들어간다. 연극도 보고 영화도 보고, 부모님과 짧은 여행도 다녀오고. 나는 어서 친구의 인턴 생활이 끝났으면 하고 바랄 뿐이었다.

<헬리코박터를 위한 변명> 책 제목부터 눈길을 끌었다. <한겨레>에 가끔 칼럼을 쓰는 서민 교수의 책이라니 호기심이 증폭되었다. '헬리코박터가 뭔가 억울한 게 있는 모양이지. 그러면 한번 들어봐야겠다'는 마음으로 책장을 펼쳤다.

이 책은 사람들이 어렴풋이 알던 상식을 제대로 짚어준다. 가려운 곳을 손 안대고 긁어준다고 할까. 그동안 우리가 알지 못했던 의학 상식들도 듬뿍 알려준다. 그것도 심각한 이야기를 전혀 심각하지 않게 저자 특유의 유머러스함으로 양념해 보여준다. 기대하지 않았던 요절복통 의학 상식서가 여기 있었다. 한 호흡에 읽어나갈 수 있을 만큼 술술 읽히면서 곳곳에 폭탄 같은 웃음을 심어놓았다.

변비 환자들에게 제안한다. 그대들의 고통은 십분 이해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화장실을 나누어 쓰는 지혜를 발휘하자고. 신호가 와서 화장실에 들어가는 건 좋지만, 아이 낳는 것과 무관한 거짓산통처럼 그 신호가 대변으로 이어지는 게 아니었다는 걸 깨달았다면, 미련없이 화장실을 나와 주면 안 될까.

밖에서 기다리다가 다시 신호가 나면 그때 들어가야지, 지금처럼 신호가 잘못된 것임을 알면서도 오기로 뭔가를 밀어내 보려는 건 모두의 고통이다. 변비 환자 자신은 물론이고 밖에서 변을 참느라 온갖 기묘한 자세를 취해야 하는 설사 환자에게도. 변비도 아니면서 쓸데없이 늦게 나오는-신문을 본다든지, 담배를 피운다든지-사람은 더더욱 반성할 일이다. 화장실은 우리 모두의 것이다. - 본문 중에서


변비 환자 때문에 화장실을 이용하지 못한 저자가 지하철역이며 인근 서점에까지 들러 볼일을 해결해야 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기술한 것인데, 저자는 학생을 가르치며 환자도 돌보는 직업말고 저자만이 가진 유머러스함이 빛을 발할 수 있는 다른 직업도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지난 겨울 감기에 걸린 나는 내과를 찾았고, 의사에게 비타민에 대해 질문한 적이 있었다. "비타민 제제을 먹으면 감기에 덜 걸릴까요?" 라는 물음에 의사는 흔쾌히 대답했다. "비타민 좋지요. 비타민을 먹으면 감기에 덜 걸립니다. 건강에 좋아요."

나는 이 말을 믿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비타민 제제를 사들고 와서는 가족들에게 먹을 것을 강요했다. 그런데 그 알약이 너무 큰 까닭에 한번 먹어 본 사람들은 먹지 않으려 들었다. 비타민 제제보다는 음식에서 얻을 수 있는 비타민이 진짜라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감기에 걸려서 허약해진 마음에 의사말도 촉매제가 되어 비타민 제제를 샀던 나, 지금은 후회한다.

의사가 지나가는 말로라도 "약보다는 음식에서 얻는 게 진짜 비타민이지요. 감기에 걸리지 않으려면 충분한 휴식과 과일을 많이 드세요"라고 했더라면 그날 약국에 들르는 일은 없었을 텐데.

저자는 비타민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모든 것은 지나치면 독이 된다고. 비타민도 지용성일 경우 몸에 축적되어 부작용을 일으키고 수용성비타민도 과용하면 설사를 일으킨다고. 우리 몸에 필요한 비타민은 미량이므로 음식을 통해서도 충분히 섭취할 수 있는데 굳이 비타민 제제를 사용할 필요가 있을까. 비타민 제제는 음식 공급이 원활하지 못한 환자에게 필요한 것이었다.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이야기에 대해서 속시원하게 대답해주는 저자는 의료소송에 대한 이야기, 제왕절개와 포경 수술에 대한 이야기, 육식은 무조건 나쁘고 채식은 무조건 좋다는 이야기에도 일격을 가하고, 한창 자라고 있는 아이에게 성장 호르몬이 필요한가에 대한 이야기 등 우리가 평소 궁금했지만 얻을 수 없던 이야기들을 친구에게 이야기하듯 편안하게 들려준다.

마지막으로 책에 대한 내용을 얼마나 이해했는지 퀴즈도 내고 있다. 물론 나는 100점을 맞았다. 문제가 너무 쉽기 때문이다. 아마도 애초에 책을 읽은 사람이라면 모두 100점이 되도록 쉽게 만든 것 같다.

어려운 의학 상식을 최대한 이해하기 쉽고 풀어서 해설해주고 있는 <헬리코박터를 위한 변명>은 우리에게 꼭 필요한 이야기들을 한데 모아 놓고 있다. 책은 읽은 이들이라면 주저 없이 주위 사람들에게 권하게 될 것 같다.

헬리코박터를 위한 변명

서민 지음, 다밋(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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