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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할 수 없이 고무장갑을 끼고 도미를 집어 들었다. 하지만 나는 어찌해야 좋을지 몰라 '이 놈을 어찌할꼬?'하는 심정으로 잠시 가련한 도미의 눈을 쳐다보았다. 너무 싫어서 주저주저하는 표정이 내 얼굴에 역력히 나타났는지, 옆에서 지켜보던 딸아이 동윤이가 깔깔대고 웃어댔다.
무색해진 나는 바로 작업에 돌입했다. 가위로 지느러미를 잘라낸 후 칼로 몸통을 긁어 비늘들을 벗겨내었다. 익숙지 않은 내 손길에 굵은 비늘들이 여기저기로 튀었다. 힘겹게 비늘 벗기기를 대충 마치고 이제 남은 일은 내장 따기. 생각만 해도 눈이 감겨지고 몸서리가 쳐지는 일이었지만 나는 칼을 들어 도미의 아랫배를 갈랐다.
그 동안 잘 구경하고 있던 동윤이도 그건 못 보겠던지 도망가고 말았다. 나는 내장을 빼내기 위하여 갈라진 생선의 아랫배 속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물컹하고 느껴지는 이물감이 고무장갑 낀 손을 타고 전해졌다. 손을 빼내니 피와 함께 쏟아져 나오는 선홍빛 내장들! 으으, 징그러워라.
그래도 나는 이를 악물고 몇 차례 그 짓을 더해서 내장 따기 작업을 모두 마칠 수 있었다. 직접 볼 수가 없는 아내는 멀리서 "아직 멀었어?"라고 자꾸 물어왔다. 마침내 내가 "자, 이제 다 됐어"라고 대답했을 때는 벌써 40분 가까이 지나 있었다. 생선가게에서는 5분이면 뚝딱 해치울 일인데….
나는 아내에게 부엌을 넘겨주고 나왔다. 입이 썼다. 저녁 식탁에서 마주할 생선 요리를 맛나게 먹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내 손으로 배를 갈라 내장을 긁어내면서 붉은 피와 징그러운 내장들을 직접 보고 만졌으니 말이다.
하지만 한 시간 후, 아내가 오븐의 그릴에서 구운 도미를 저녁 식탁에 옮겨 놓았을 때 내 입에서는 군침이 돌고 있었다. 아, 인간의 입이란 얼마나 간사한가! 얼마나 맛이 있던지, 우리는 그 큰 도미를 하루저녁에 다 먹어치우고 말았다.
아마도 쥬디네의 따뜻한 마음이 생선의 맛에 더해져 그토록 맛이 있었고 그래서 나도 내가 자행한 잔인함(?)을 쉽게 잊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우리도 조만간 쥬디 엄마가 좋아하는 김치라도 한 접시 가져다주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