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3집 음반이 나올 뜨거운감자(보컬 김C)의 뮤직비디오 제작 과정도 사실 처음엔 그러했다. '봄바람 따라간 여인'이라는 노래를 타이틀 곡으로 정하는 순간, 누구나 '그래 어떤 예쁜 애 하나 섭외해서 (봄에) 떠나 보내고 찌질하게 궁상 떠는 남자 하나 있으면 되겠네' 하며, 뮤직비디오는 이미 드라마타이즈로 구성되었고, 머릿속에는 시놉시스가 좌르르 흘렀던 것이었다.
그런데 역시나 다들 뭔가 찜찜하다 싶은 표정들이다. 그래도 김C가 주인공인데 그 별난 인간 이미지도 좀 있고, 사실 노래 느낌도 여느 신파와는 다른데 좋은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기 시작한 것. 이 와중에 김C의 뮤직비디오를 '개판'으로 만들자는 아이디어가 용이 감독(<봄날의 곰을 좋아하세요> 연출)에게서 나왔다.
그는 "오랫동안 아껴두었던 아이템"이라며 "노래 속 여자와 남자를 사람 말고 개로 하자"는 의견을 내놓았고, 우리는 모두 그 신선한 발상에 환호했다. 더욱이 올해는 개띠 해이고, 노래에도 발음상 '개'란(실제로는 '게'다) 말이 여섯 번이나 나오니 '딱'이라고 시답잖은 말을 보탠 것은 필자였다.
때 마침 영국 '킹스칼리지 필름아카데미'를 막 졸업하고 돌아온, 사람 좋은 김영석 감독이 연출을 맡으면서 드디어 국내 최초 '개판' 뮤직비디오는 촬영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러나 초짜 배우와 함께 뮤직비디오를 찍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인데, 초짜 '개'들을 주인공으로 모시고(?) 찍자니,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남자 주인공 역할을 할 개 '봄'이와 여자 주인공 역을 맡을 개 '바람'이를 찾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으나, 그들과 닮은 강아지를 찾는 일은 쉽지 않았다. 닮은 강아지가 있다는 이야기만 들으면 물어물어 찾아가길 몇 번. 드디어 두 마리 강아지를 찾아 촬영을 하고, 애인을 떠나보낸 외로움을 연기해야 하는 '봄'이를 위해 김C의 음악을 계속해서 들려주었다.
그런데 솔직히 '봄'에게 음악을 들려주면서도 내 자신이 참 한심스럽다는 생각을 수없이 해야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봄'이는 음악에는 쥐뿔도 관심 없고, 오직 공 던지기에만 집착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거리와 들판을 질주하는 신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훈련받은 '봄'과 '바람'에게 뛰어다니는 것은 일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사랑하는 여인을 떠나보낸 '바람'이의 내면연기였다. 김영석 감독은 '봄'에게 좀 더 울컥한 눈빛을 주문했지만 '봄'은 비스킷을 주지 않으면 쳐다보지도 않았고, 비스킷을 주면 오히려 행복한 눈빛이 되곤 했다.
결국 제작진이 선택한 마지막 방법은 다소 비인간적이지만, 좀 굶기는 것이었다. 그렇게 끼니를 굶은 '봄'이는 '울컥'을 넘어, 투명하기까지한 눈빛으로 슬픔을 연기해냈고 이 모습은 고스란히 뮤직비디오에 담기게 되었다.
이리하여 이 한편의 뮤직비디오가 완성되었다. 완성된 뮤직비디오를 보며 궁금한 것은, 사람들의 사랑을 연기한 '개'들은 어떤 기분이었을까 하는 점. 또 그 '개'들의 사랑을 보게 될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하는 것이었다.
제작자의 바람이라면 사람도, 개도 올 봄엔 다들 사랑하시고, 이별도 해서 가슴이 좀 많이 아프시걸랑 김C 음악 좀 들어주십사 하는 것이다. 그나저나 '봄'과 '바람'은 출연료로 뭘 했을라나….
덧붙이는 글 | 탁현민 기자는 공연기획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