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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BS
우리 시대의 '문제적 작가' 임성한의 작품을 감상하는 것은 언제나 '가학적 즐거움'을 동반한다. 그의 작품을 아무런 감정의 표현이나 기복을 드러내지 않고 감상하기란, 월드컵 축구중계를 보면서 침묵시위를 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다.

언제나 족보관계가 난잡한 '콩가루 가족' 이야기를 즐겨 다루는 스타일 만큼이나, 그녀의 작품에 대한 세간의 평가도 대개 비슷하다. "또 출생의 비밀이야?" "인물관계는 또 왜 이리 배배 꼬아놨어?" "대체 뻔한 이야기를 언제까지 잡아늘일 생각이야?" "도대체 이 드라마는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거야?"

임성한 드라마를 즐겨보는 팬들의 특성 중 하나는 '욕하면서도 본다'는 것이다. 임성한 드라마는 전파를 탈 때마다 매번 파격적인 설정과 느려터진 구성으로 적지않은 시청자들에게 비난의 표적이 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런 비난 속에서도 항상 꾸준한 시청률을 유지하는 슬리퍼 히트작을 배출해내는 것은, 그만큼 임성한 드라마에 뭔가 특별한 매력이 있지 않으냐 하는 분석이 가능하다.

그렇다. 임성한 드라마의 특징은, 한 마디로 '가족 드라마로 시작해서 엉뚱한 곳으로 빠지기'다. 시작할 때는 분명 '버림받은 딸의 복수극(인어아가씨)'이나, 의붓아들과 친딸을 결혼시키는 어머니(하늘이시여)'처럼 파격적이기는 해도 나름 대로 주제의식이 분명히 있는 것 같은데, 시간이 지날수록 주제 자체는 점차 흐리멍텅 해지고, 전혀 엉뚱하지만 다종다양한 이야깃거리가 빈자리를 채운다.

방송사의 요구에 따라 매번 고무줄처럼 드라마 내용을 잡아늘이는 내공도 수준급이다. 비결은 '뜸들이기'다. 메인 구성은 젖혀두고 계속 변죽만 울리다가, 정작 중요한 장면이 나온다 싶으면 감질나게 마무리한다. 전작들은 젖혀두고 오직 <하늘이시여>만 보더라도 예정된 50회에 육박할 때까지 주인공 커플을 둘러싼 출생의 비밀을 터뜨릴 듯 말 듯 시간만 끌다가, 어느 날 갑자기 60회, 다시 75회까지 연장방송을 한다고 계속 말을 바꾸며 빈축을 사기도 했다.

사실 임성한 드라마를 보는 재미는 메인 구성을 따라가는 데 있지 않다. 매번 자극적이고 때로는 어처구니 없는 설정으로 논란을 일으키지만, 그 논란 자체에 임성한 드라마의 매력이 있다. 상식이나 사회 관습을 뒤집는 파격적인 인물군을 등장시켜 그들이 일으키는 갈등구조의 긴장감 자체를 즐기는 것. 물론 전체적인 구성에서 보면 지루하지만, 등장인물 자체만으로도 매회 분량을 채워나갈 이야깃거리는 충분하다.

좋든 싫든, 논란과 극적 긴장감을 만들어내는 것도 임성한의 작가 능력임을 부인할 수 없다. 다만 갈등을 벌여놓고 바람직한 대안을 제시하기보다는, 결국 사회적 통념과 선정주의 자체를 무절제하게 상품화시켜 소비하는 데만 급급한 것이 그녀의 어쩔 수 없는 한계기도 하다. 그래서 그녀의 작품들은 언제나 벌여놓은 상황을 미처 다 수습하지 못하고 용두사미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뭐, 작가가 대안까지 책임져야 할 이유가 없다고 한다면, 뭐 할 말은 없지만.

무엇보다 '시청률만 좋다면,' 비난이야 어찌됐든 고무줄 편성을 마다하지 않는 방송사로서는 그야말로 꾸준히 슬리퍼 히트작을 배출하는 임성한이라는 황금 거위를 쉽게 놓치기 어렵다. 더구나 언제든 간단한 소재로 대하드라마 분량의 이야기를 재창조해낼 수 있는 엽기적인 내공의 작가를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예정된 기획은 어떡하느냐고? 제작진이 게시판에 '드라마 전개상 부득이한 사정'이라고 몇 마디 핑계만 대면 간단하게 끝난다. 시청률만 좋다면 다 용서된다. 혹시 아는가? 조만간 <하늘이시여>도 아예 <궁>이나 <안녕 프란체스카>처럼 '시청자 여러분의 성원에 힘입어' 시즌제로 변신한다는 깜짝 발표가 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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