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켜 생각해 보면, 옛날에는 물질적 여유는 적었지만, 정신적 여유는 지금보다는 훨씬 많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절대적 빈곤이 팽배했던 시대인 과거와 상대적 빈곤(소득불균형이나 부의 불균형)이 더 큰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던 현재와는 다르지만 말입니다. 그래도 그때는 정신적 여유가 있어서인지는 몰라도 지금의 아이들보다는 훨씬 사색적이고 생각이 많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 주 5일 수업제가 학교현장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있습니다. 한 달에 2번 주 5일 수업제를 실시하는 변칙적인 상태이지만, 마음의 여유는 충분히 가질 수 있는 물리적 여건은 확보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제 토요일 휴업제를 마음의 여유와 생활의 여유를 찾는 방향으로 활용해야 합니다. 마음의 여유는 바로 게으름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게으름은 결코 부정적인 의미가 아닙니다. 땀과 게으름은 서로 떨어질 수 없는 사이입니다. 땀 흘린 다음에는 반드시 게으름이라는 여유가 필요합니다. 5일간의 땀과 2일의 게으름은 우리 인간에게 최소한의 행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게으름 속에는 휴식의 꿀맛이 있습니다. 바로 땀의 여유입니다. 땀 속에서 고개를 삐죽이 내미는 삶의 의미를 소중하게 여겨야 합니다. 조그마한 삶의 의미들이 오늘 하루를 푸른 그리움으로 만들어 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5일간의 땀과 2일간의 게으름을 소걸음처럼 느리게 느리게 즐겨야 합니다. 그 속에서 바로 희망이 있습니다. 행복이 있습니다.
그냥 즐기는 게으름이 아닙니다. 삶의 여유를 찾는 것입니다. 그 여유 속에 바로 사람이 있습니다. 사랑이 있습니다. 바로 행복이 있습니다. 그래서 게으름에 우리의 미래를 거는 겁니다. 땀 흘리지 않은 사람은 게으름의 꿀맛을 알 수가 없습니다. 바로 땀 속에서 나는 냄새와 게으름 속에서 나는 냄새는 똑 같습니다. 이게 바로 진리입니다.
그러나 일부 학교현장에서는 주5일제 토요일 휴업을 벌써 자율학습이나 특별보충수업으로 활용하려는 움직임이 있고 이미 시행하고 있는 학교도 있습니다. 이는 정말로 견지망월(見指忘月)입니다. 토요일의 휴일에 자율학습이나 특별보충수업을 실시하는 것은 마음의 여유인 '달'은 보지 않고 바로 자율학습인 '손가락'만 쳐다보는 꼴입니다.
이는 바로 어렵게 마련한 마음의 여유와 생활의 여유를 학생들에게서 송두리째 빼앗는 대단히 잘못된 행위입니다. 대학입시라는 목표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학생들의 행복 추구권입니다. 쉬는 토요일까지 자율학습을 강요하는 것은 학생들의 행복할 권리를 빼앗는 것입니다.
이제 경제적 풍요로움을 어느 정도 확보한 우리는 삶의 질과 가치로 생각과 생활의 무게중심을 옮겨야 합니다. 경제적 풍요로움은 끝이 없습니다. 소득불균형이 발목을 잡고 있지만 이제 경제적 풍요로움에 대한 애착이나 집착을 버려야 합니다. '욕망이 모든 고통의 근원'이라는 부처님 말씀처럼 이제 경제적 욕망에서 벗어나야 우리는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불행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들의 자녀까지 우리가 불행하게 만들 권리가 우리에게는 없습니다. 오히려 그들의 행복을 찾아주어야 할 권리가 바로 우리에게 있을 뿐입니다. 우리의 아이들을 '생각 없는 아이'나 '사색하지 않는 아이'로 만들지 말아야 합니다. 쉬는 토요일을 아이들에게 고스란히 되돌려주어야 합니다. 손가락이 아니라 바로 달을 바라보야 합니다. 우리는.
덧붙이는 글 | 노태영기자는 남성고등학교 교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