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자 성추행'으로 궁지에 몰린 최연희 전 한나라당 사무총장에 대한 열린우리당의 공세가 계속 되고 있다. 열린우리당은 9일 한나라당 지도부와 <동아일보> 기자들이 상견례를 했다는 서울 광화문의 음식점 현장조사에 나섰다. 전날(8일) 열린우리당은 국회의사당 앞에서 최 전 총장의 사퇴를 요구하는 집회를 열기도 했다.
현장조사에 나선 김현미·김형주 의원은 이날 음식점 직원들에게 사건 당일인 2월 24일 저녁식사에 대해 여러 가지 질문을 했지만 명쾌한 대답은 듣지 못했다. 그러나 식사비와 노래방 시설 이용 등과 관련, 직원들의 진술이 엇갈리자 축소·은폐 의혹을 새롭게 제기하고 있다.
영수증·계산서 없어... 음식점 밑지는 장사 했나
음식점 직원들은 당일 식사비와 이를 계산한 사람에 대해 철저하게 입을 다물고 있다. 이 업소 지배인 김아무개씨는 "누가 밥값을 계산했는지 모른다"면서도 "기자들이 계산한 것은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그날 계산서나 카드 영수증을 보여달라는 주문도 거절했다. 김씨는 "계산서와 영수증은 모두 사장에게 올려 보내 지금 없다"고 답했다.
식사비에 대한 직원들의 진술도 엇갈리고 있다. 인터넷신문 <민중의소리>는 지난 6일 보도에서 당일 참석인원 14명의 밥값과 식사도우미 14명의 서비스비를 합쳐 총 196만원(1인당 14만원) 정도 비용이 지출됐을 것으로 추정했다.
그러나 음식점의 해명은 다르다. 김씨는 상견례 밥값이 1인당 4만원이었다고 주장했다. 또 식사도우미도 음식을 나르고 테이블을 정리하는 여성종업원 2명뿐이었다고 밝혔다.
김씨의 설명에 따르면, 당일 식사비는 약 60만원 정도가 나온 셈. 여기에 술값(맥주)을 포함해도 70~80만원 수준이라는 것. 폭탄주를 만든 양주(발렌타인) 2병도 한나라당 의원들이 직접 준비왔다고 밝혔다.
얼마였든 이 돈은 <동아일보>에서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이같은 해명에는 석연찮은 구석이 있다. 정치인들이 즐겨 찾는 고급 한정식집으로 알려진 이 업소의 저녁식사비는 1인당 6~7만원선. 아무리 많은 인원(14명)이 왔다고 해도 밥값을 절반 가까이 깎아줬다는 설명은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더구나 양주는 직접 준비해 왔기 때문에 술값도 그다지 많이 들어간 편이 아니다. 김씨의 설명을 그대로 믿는다면, 이 업소는 그날 밑지는 장사를 한 셈이다. 반면 김씨가 아닌 다른 종업원은 "저녁식사비는 1인당 6만원"이라고 말했다. 식사비를 6만원으로 계산해보면 이날 식사비는 약 100만원 가까운 돈이 된다.
어찌됐든 문제는 이 돈을 <동아일보>가 부담한 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권언유착'의 부적절한 술자리라는 비난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 김현미 의원은 "국민들이 낸 정치자금으로 기자들 접대하는 게 옳은 일이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2차 술자리는 밥집 아닌 다른 곳?
식사비 외에 '노래시설을 갖춘 방'에 대해서도 새로운 의혹이 제기됐다.
이 업소는 이날 현장을 찾은 김현미 의원과 기자들에게 노래방은 없다고 말했다. <동아일보>는 지난달 27일 성추행 사건을 폭로하며 그 장소를 "음식점 내 노래시설을 갖춘 방"이라고 밝힌 바 있다.
지배인 김씨는 "한나라당 의원들과 기자들은 저녁 8시경 들어와서 밤 10시쯤 나갔다"며 "내가 직접 문 밖까지 나와 가시는 분들에게 인사를 했다"고 말했다. 의원들과 기자들은 이 음식점에서 저녁식사만 했고 2차 술자리는 다른 곳이었다는 얘기다. 김씨는 김 의원과 기자들을 안내, 지하실이 창고로 쓰이고 있음을 직접 보여주기도 했다.
따라서 2차 술자리가 이 업소 지하에 마련된 '노래시설을 갖춘 방'이 아니라면 식사 외에 또다른 접대가 있었다는 얘기가 된다. 이 경우 '2차' 비용 역시 누가 얼마나 냈는지에 대한 논란이 일 수 있다. 부적절한 식사 자리에다 부적절한 술판까지 벌어진 셈이기 때문.
아울러 <동아일보>와 한나라당의 사건축소 의혹이 제기될 수 있다. 만약 여기자 성추행 사건을 폭로한 <동아일보>가 2차 술자리를 “음식점 내 노래시설을 갖춘 방”으로 사실과 다르게 보도했다면 '고액 술접대’를 받았다는 비난을 피하려는 의도로 해석될 수도 있다.
한나라당 역시 사건의 진상을 제대로 밝히지 않은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더불어 또다른 추가 의혹이 드러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한나라당과 음식점이 사건 축소하고 있다"
김 의원은 이 음식점 옆 또다른 한정식집을 연결하는 통로 아래 노래시설을 갖춘 방이 있을 것으로 추측했다. 현장확인 결과, 연결통로는 큰 철제문으로 막혀 있었고 잠금장치가 돼 있다.
김 의원이 "이 안에 노래방이 있느냐"고 추궁하자 지배인 김씨는 당황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는 "이렇게 되면 우리 업소 영업에 타격이 있다"고 확답을 피했다. 또 "이 집과 우리 업소는 사장이 전혀 다르다"고 의혹을 부인했다.
김 의원은 이날 오후 브리핑에서 "한정식집 지하에 미인가 사설 단란주점 같은 것이 있는 것으로 추측한다"며 "한나라당 지도부가 불법 시설을 언론인들과 이용했는데 결론에 그 점을 명백히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김 의원은 "만약 (음식점) 지배인 얘기가 사실이라면 한나라당과 해당 언론사 기자들이 다른 곳으로 갔다는 것인데 그 곳이 어디인지도 밝히라"고 압박했다.
김 의원은 또 "오늘 조사로 한나라당과 음식점이 사건의 실상을 축소하려하고 있다는 의혹을 갖게 됐다"며 "양측 조율로 (당일 일을 한) 종업원을 바꾸고 음식값도 축소한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물론 해당 업소가 거짓말을 할 가능성도 있다. 지하창고 외에 사설 단란주점과 같은 공간이 있으면서도 일반 음식점에서 '노래시설을 갖춘 방'은 불법시설이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감추려고 했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