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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표지 입니다.
<궁>표지 입니다. ⓒ 고래실
지난 5일(일), 오랜만에 아이와 함께 경복궁에 다녀왔다. 봄맞이 축제로 줄타기 공연을 한다기에 큰맘 먹고 나섰다. 영화 <왕의 남자>에 등장했던 광대가 직접 공연한다고 해서인지, 근정문 마당은 모처럼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사람은 많고 객석은 따로 마련되지 않아, 공연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그래서 우리는 아쉬움을 달래고자 근정전으로 들어섰다.

근정전은 따뜻한 봄 햇살을 쬐려는지 문을 활짝 열어 놓았다. 경복궁을 몇 번 다녀갔지만 열린 문을 통해 내부를 볼 수 있던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구멍 난 창호지나 문틈으로 훔쳐 보듯 했던 것이다. 경복궁 좌측문을 지나 경회루에서 잠시 쉬고 다시나와 교태전과 자경전을 둘러보았다. 교태전과 자경전의 뒤뜰 굴뚝과 담장은 우리의 발걸음을 오래도록 머물게 했다.

교태전은 왕비가 쓰는 침전으로 임금이 거처하는 강령전 바로 뒤에 위치한다. '교태'는 부부가 만나 아이를 잘 낳기를 바란다는 뜻이다. 교태전 뒤뜰 아미산은 왕비를 위한 작은 언덕으로 중국 산동성에 있는 아름다운 산 이름에서 따왔다. 경회루를 만들 때 파낸 흙으로 쌓았다고 한다. 갖가지 꽃과 작은 나무들을 심은 뒤, 꽃담을 아기자기하게 쌓아 아름답게 만들었다. 마니산에는 불가사리 문양이 새겨진 예쁜 굴뚝이 있다. 불가사리는 쇠와 불을 먹는 상상의 동물이다. 그래서 불가사리 문양을 새겨 불이 나지 않기를 바랐다.

교태전 우측 뒤편엔 대비가 머무는 자경전이 있다. 자경전을 들어서기 전에 병풍처럼 펼쳐진 꽃담을 감상하게 된다. 자경전 꽃담은 만(일만 萬), 수(목숨 壽), 복(복 福), 강(편안할 康), 녕(편안할 寧)같은 한자와 매화, 국화, 대나무, 모란, 연꽃, 복숭아, 석류, 난초 문양이 아름답게 어우러져 있다. 자경전 굴뚝 또한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대비가 오래 살기를 바라는 마음과 자손이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서 산, 돌, 학, 사슴, 거북, 불로초, 소나무, 석류, 모란 등의 문양을 새겨 넣었다.

자경전 꽃담(경복궁에서의 왕의 하루 p18)
자경전 꽃담(경복궁에서의 왕의 하루 p18) ⓒ 문학동네
이처럼 아름다운 궁에서 왕과 왕의 가족들은 어떻게 생활했을까? 또 그들이 일상생활에 불편함이 없도록 하기 위해 어떤 사람들이 어떤 일을 했는지 알아보는 책이 <궁>이다.

임금님을 모시는 궁녀 100명, 왕비를 모시는 궁녀 100명, 세자를 모시는 궁녀 60명, 대비를 보시는 궁녀 100명, 임금님의 후궁을 모시는 궁녀까지 모두 합하면 궁 안에 500여 명이나 궁녀가 있었다. 그들은 밥과 빨래, 청소는 물론이고 아기도 돌보았다. 궁녀들은 아주 세분화된 업무를 맞았는데 당시로써는 유일한 전문직업여성이라고도 할 수 있다.

"궁녀들은 전문 분야에 따라 하는 일이 달랐다. 예컨대 지밀궁녀는 임금님이나 왕비 마마가 잠을 자는 곳인 지밀에서 일하였다. 바느질을 하는 침방의 궁녀는 침방궁녀, 자수를 놓는 수방의 궁녀는 수방궁녀라고 하였다. 부엌인 소주방, 빨래방인 세답방, 과자를 만드는 생것방, 세숫물 끓이는 세수간, 먹고 난 밥상을 물리는 퇴선간에서 일하는 궁녀들도 있었다."

드라마 <대장금>으로 인해 조선시대 궁녀들에 대한 인식이 조금 달라지는 했지만, 궁에 사는 궁녀라고 하면 왕가의 하녀 정도로 격하시켜 보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지금시대에 빗대어 생각해 보면 좀 다르게 인식된다. 예를 들어 청와대에서 근무했던 요리사라든지, 수행원, 의사, 아이들을 돌보는 보육사라고 한다면, 그 분야의 최고를 자랑하는 전문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따져 살펴보면 궁녀들의 위상을 하찮게 볼 수 없다.

사실, 당시 정식 궁녀들은 하녀를 거느리기도 했을 정도였다. 어린 나이에 입궁을 한 '각시' 궁녀는 약 15년 동안 공부를 해야 정식 궁녀인 '나인'이 될 수 있었다. 궁녀들은 월급으로 쌀과 콩, 북어를 받았다. 나인이 처음 받는 월급은 쌀이 네 말, 콩이 한 말 다섯 되, 북어가 열세 마리였다. 거기에 상여금까지 합하면 1년 동안 곡식으로 열 섬이 넘는 재산을 모을 수 있었다. 당시, 농민들 대부분이 1년 동안 열심히 농사지어도 순 수입으로 곡식 열 섬을 남기기란 매우 힘들었다. 그러니 조선 시대의 궁녀들은 사실상 고소득 직장인이었던 것이다.

환관 역시, 대전, 중전, 동궁, 대비전 등에 따로 소속되어 있었다. 대전에 50명, 중전에 10명, 동궁에 20명, 대비전에 10명이 있었다. 이들은 정식 환관이었다. 정식 환관 외에 예비환관으로 '소환' '소천시'까지 200여 명이 되었다. 정식 환관은 궁밖에 따로 가정이 있었고 결혼도 했다. 또 자녀도 두었는데 날 때부터 고자이거나 다른 요인 때문에 고자가 된 아이들을 양자로 삼았다. 같은 처지에 놓인 환관부자는 서로의 고통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친부모 이상으로 자녀에 대한 사랑과 효심이 돈독했다.

요즘 흥행하고 있는 <왕의 남자>에서 환관 김처선이 등장한다. 영화에서 등장하는 환관 처선은 왕을 부추겨 광대를 궁 안에 들인다. 광대들의 공연을 통해 썩은 권력자들의 비리를 폭로하여 왕권을 세우려 했다. 그러나 연산군의 폭정이 도를 넘자, 보다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그러나 이것은 극화한 것이고 이 책에선 좀 다르다.

김처선은 연산군 때의 승정색이야. 연산군이 나라를 잘 다스리지 못하자, 김처선은 매번 정성을 다해 바른말을 하였어. 연산군은 마음속으로 불쾌하였지만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단다. 김처선이 원로 환관이었기 때문이야.

어느 날 연산군이 궁중에서 가면놀이를 하면서 못된 짓을 많이 하였어. 이때 김처선은 바른말을 하다가 죽을 결심을 하였지. 김처선은 식구들에게 "오늘 나는 반드시 죽을 것이다"라고 말하고는 궁궐에 들어가 거리낌 없이 말하였어.

"늙은 저는 네 임금님을 섬겼습니다. 경전과 역사책을 대량 보았지만 역사상 상감마마처럼 하신 임금님은 없었습니다."

연산군은 화가 나서 활로 김처선을 쏘았어. 화살이 갈빗대에 맞았는데도 김처선은 안색 하나 변하지 않고 말하였어.

"조정의 대신들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데 늙은 환관이 죽음을 두려워하겠습니까? 다만 상감마마께서 오래도록 임금 노릇을 하시지 못할 것 같아 한스럽사옵니다."

연산군은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 또 활을 쏘았어. 김처선은 다시 화살에 맞고 쓰러졌지. 김처선은 죽어 가면서도 바른말을 그치지 않았어. 김처선은 이렇게 죽었지만 조선 시대의 가장 훌륭한 환관이로 칭송을 받았단다.


이렇듯 궁에서 일하는 궁녀나 환관들은 각각 결혼을 못하거나 자식을 낳지 못하는 아픔을 갖고 있지만, 궁에서 하는 일에 대한 전문성과 그에 따른 일정한 지위와 품위를 유지하려 했다.

이 밖에도 이 책은 왕과 왕의 가족의 일상과 일생을 동화형식과 설명글로 재미있게 잘 정리해 놓았다. 그러는 사이사이 그들을 도와 일을 하는 여러 관직들에 대해서 자연스럽게 익히도록 꾸며졌다. 또 첫 장에 두 페이지를 연결하여 접어 만든 경복궁 조감도로 글 내용을 읽으면서 위치를 확인 할 수 있다. 끝 부분 '나오는 말'에서는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경운궁, 경희궁, 인덕궁, 덕수궁, 수강궁, 인경궁 등에 대해서 역사적 배경을 따로 정리하고 있어, 분간이 어려웠던 궁 이름에 단 번에 정리할 수 있다.

<궁> 읽고 찾아간 경복궁은 다른 때와 달리 한 눈에 들어 왔다. 매번 새로웠던 근정전, 경회루, 사정전, 강녕전, 교태전, 자경전의 이름이 익숙했고 그 곳에서 이루어졌던 일이 눈앞에 펼쳐지는 듯했다. 그래서 신나서 여기저기 돌아다니면 아이에게 설명하는데, 실상 아이는 내 설명을 달가워하지 않는 눈치였다. 다음에 경복궁을 찾을 땐, 이 책을 아이에게 꼭 읽게 하여 아이를 가이드로 삼을 생각이다.

덧붙이는 글 | 궁 / 신명호 글 / 강미형 그림 / 고래실
권장연령:초등 3학년이상 
함께보면 좋은 책: 경복궁에서의 왕의 하루/청동말굽.기획/ 문학동네  
리더스 가이드, 알라딘, 네이버에 실었습니다.


궁 - 나는 항상 이곳에 있었다

박수현 지음, 조은지 그림, 바람길(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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