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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일 서울시 동대문구 서울위생병원 수술실 앞 로비. 다소 어두컴컴한 복도에는 한 중년여성이 고개를 숙인 채 초조하게 수술이 끝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전신성 홍반성낭창'이라는 루푸스 질환을 앓고 있는 재러시아동포 에리코씨의 어머니 황스베따씨였다. 황씨는 현재 사할린 외곽의 한 농가에서 어머니 김영봉씨를 모시고 살고 있는 고려인2세다. 김 할머니는 일제강점기 강제징용으로 끌려간 아버지를 따라 러시아로 이주한 후 그곳에서 지금까지 80여 평생을 살고 있다.
황씨의 머리 위에 걸려 있는 전광판에 딸 에리코씨가 수술 중이라는 글씨가 선명하게 흐른다. 에리코씨는 이날 오전 8시부터 5시간 동안 루푸스가 원인이 된 자가면역이상질환으로 다발성 피부괴사 증상이 발생한 엉덩이와 오른쪽다리에 피부를 이식하는 수술을 받았다.
걱정스럽고 초조한 모습으로 딸의 수술이 무사히 마쳐지기를 기다리던 황씨는 "하나님께 도와달라는 기도 외에 무슨 할 말이 더 있겠느냐"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에리코씨는 지난주 이미 썩어버린 피부조직을 모두 제거하는 수술을 받은 터였다.
난생 처음 겪어보는 대수술에 긴장한 에리코씨는 수술실에 들어가기 전 두려움을 이기지 못하고 끝내 눈물을 비추기도 했다. 그런 딸의 모습에 황씨는 조용히 손을 잡고 어깨를 다독이며 용기를 불어넣었다.
에리코씨는 자신이 루푸스 질환을 앓고 있다는 것을 미처 알지 못한 채, 단순히 산후 근육통 정도로만 알고 러시아에서 1년 가까이 치료해 왔다고 한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간농양과 장기염증 증세까지 겹치는 등 합병증으로 거동조차 불편하게 되었고, 그녀의 이런 사정을 알게 된 지인들의 초청으로 지난 1월 초 한국에 들어와 치료를 받아왔다.
그러나 한때 패혈증 3기 진단까지 받아 산소호흡기에 생명을 의지하는 등 생사의 문턱을 드나들 만큼 위독한 상황에 이르기도 했다. 혈압이 급격하게 떨어지고, 40도까지 오르는 고열로 의식을 잃은 상태에서 중환자실로 들어서는 그녀의 모습에 의료진은 "최악의 상황까지 마음에 두어야 한다"며 병세의 심각성을 전하기도 했다.
혼신을 다한 의료진의 치료로 다행히 위기를 넘긴 에리코씨는 이날 결국 루푸스 질환의 부작용으로 피부뿐 아니라 혈관에까지 염증이 번져 괴사한 피하조직과 근육층을 모두 드러내고 피부를 이식하는 수술을 받게 된 것이었다.
수술을 마친 에리코씨는 앞으로 환부가 아물고, 이식된 피부가 생착되도록 보름 가량 안정을 취하며, 치료를 계속 받아야 한다. 새 살이 돋을 때까지는 가급적 움직여서도 안 되며, 그 과정에서 한두 차례 수술을 더 받아야 할는지 모른다는 게 의료진의 이야기다.
또 너무 오랫동안 걸음을 걷지 않았기 때문에 관절 강직 현상이 발생할 수 있어 물리치료와 함께 다리에 힘을 붙이기 위한 운동요법도 병행해야 한다. 때문에 앞으로 한 달 이상 더 입원치료를 받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로 돌아가더라도 루푸스 질환의 특성상 꾸준히 외래진료와 약물치료를 받아야 한다.
회복실로 돌아온 에리코씨는 한동안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혈액검사를 위해 잠시 잠에서 깨어난 그녀는 잠시 인상을 찌푸렸다. 피부를 떼어낸 왼쪽다리가 쑤시고, 따갑다며 통증을 느끼는 듯했다.
에리코씨는 사할린에 두고 온 딸 유미의 모습이 떠올랐는지 이내 눈시울을 붉혔다. 이제 갓 돌을 넘긴 아이가 엄마를 찾아 보챌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졌다. 3년 전 결혼한 남편 안드레이씨 사이에서 낳은 첫 딸 유미의 얼굴이 눈에 밟혀 제대로 누워 있을 수가 없다.
"아기가 가장 보고 싶다"며 낮은 목소리로 그리움을 삭이던 에리코씨는 이내 등을 돌렸다. 낯선 이국땅에서 가슴으로 키우고 있는 아이의 품으로 하루속히 돌아가는 것이 엄마의 가장 큰 소망이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치료비만도 수천만 원대. 재외동포라 건강보험마저 적용되지 않는 딱한 실정이다. 게다가 앞으로 물리치료까지 계속 받아야 하는 상황이어서 모녀의 시름은 더욱 깊어만 간다.
사할린 외곽 농장에서 근근이 살림살이를 이어가던 이들에게 수천만 원의 치료비는 엄두도 낼 수 없는 액수다. 그렇다고 소중한 생명을 돈 때문에 여기에서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겨우 생사의 고비를 넘어선 딸을 위해 하루종일 정성껏 간호하는 황스베따씨는 자신이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것 같아 답답하기만 하다. 어머니의 눈에는 어느새 눈물이 고여 있다. 링거 바늘을 꽂은 채 자신과 시선을 맞추는 병석의 딸을 바라보던 어머니의 가슴에 애틋함이 절로 스며들었다.
그러나 이러한 막막한 현실에서도 사랑하는 가족이 있는 고향으로 돌아가기까지 모녀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겠다며 입술을 깨문다.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아픔을 견디고 참아야 할지 모르지만, 행복의 미소가 다시 피어오르는 날까지 서로 의지하며 사랑의 고리를 이어가려 한다. 많은 이들이 어서 속히 이들에게 쾌유의 햇살이 피어오르길 기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