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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초, 경남 거제에서 학교에 가던 11살 여학생이 어린이보호구역 안에서 교통사고를 당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학교 인근 공사장으로 들어가는 대형 트럭이 후진하면서 발생한 참사였다.

애지중지 다 키운 딸이 싸늘한 죽음으로 되돌아 온 것을 본 부모가 오열하고, 많은 사람이 '학교 앞 교통사고 안전 불감증'에 분노하면서 대책 마련을 주문했다. 이어 경찰청은 어린이보호구역에서의 어린이 안전이 위협받고 있다고 보고, 어린이보호구역 내 안전대책을 강화하는 등 5월 말까지 집중해서 단속하기로 한다고 밝혔다.

어린이보호구역 없는 곳은 단속 근거도 없어

▲ 학교 정문 앞의 유명무실한 주차금지 표지판.
ⓒ 전득렬
그러나 어린이보호구역이 없는 학교 앞 어린이 안전에 대한 대책은 어디에도 없다. 어린이보호구역은 초등학교와 유치원의 반경 300m 이내 통학로를 어린이 보호구역으로 지정한 것을 말한다.

이 어린이보호구역에서의 차량속도는 시속 30km 이하로 운행해야 한다. 그리고 주·정차도 못 하도록 돼 있다. 또 과속방지턱 같은 안전장치를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한다. 하지만, 어린이보호구역이 아닌 곳은 이러한 법규가 무용지물이다. 단속할 근거도 설치할 의무도 없기 때문이다.

대구 수성경찰서 교통지도계의 한 관계자는 "어린이보호구역이 없으면 그에 따른 관련법규가 없어 마음대로 단속을 할 수가 없다" 고 말하면서 "교통 안전지도 등의 민원이 들어와서 위험지역이라고 판단하면 다른 곳보다 더 신경을 쓸 수는 있으나 어린이보호구역이 없는 일부특정지역을 평상시에도 관리하는 것은 인력구조상 힘들다"고 밝혔다.

어린이보호구역이 있어도 어린이 교통사고가 발생하고, 단속을 강화해도 위험에 노출되는 마당에 어린이보호구역마저 없는 곳이 더 위험한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도 이런 곳을 단속할 관련 법규나 지도할 아무런 근거가 없어 모두 뒷짐만 지고 있는 것이다.

위험천만한 학교 강당 공사현장에도 안전지도 요원 없어

▲ 공사 관련 차량과 불법 주차 차량만 있을 뿐 안전을 위한 안내는 없다.
ⓒ 전득렬
대구 수성구 범어동에 있는 동부초등학교 앞. 공립인 이 학교에는 어린이보호구역이 없다. 학생 547명에 병설 유치원까지 있는 이 학교는 최근 강당 신축공사로 대형 트럭이 수시로 드나들고 있고 차량통행도 잦은 곳이다. 하지만 과속을 단속 하는 경찰관이나 안전 지도를 하는 사람은 찾아 볼 수가 없다.

공사 관련 대형트럭 사이로 아이들이 아슬아슬하게 지나가는 광경이 연출되고, 학교 안 운동장에서 많은 아이가 뛰어 놀고 있는데 레미콘 차량이 지나다니고 있었다. 공사현장인 좁은 골목길에는 불법 주차 차량과 레미콘 타설 차량이 골목을 막고 있어 이를 모르고 진입한 운전자들이 후진을 하는 등 위험한 상황이 발생하고 있지만 누구 하나 안전지도를 하는 사람이 없다.

오후 1시는 저학년이 하교를, 오후 3시는 고학년이 하교를 하는 시간이다. 이 때는 차량통행도 더 잦고 공사 관련 대형 차량이 줄 서서 대기할 정도로 위험하다. 이곳을 관리 감독하고 있는 대구 동부교육청 시설과의 한 담당자는 "앞으로 학교 정문 주변으로 공사차량이 진입을 못하게 하고, 공사장 주위에는 안내요원을 더 배치해서 안전사고가 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 학교 옆 공사현장의 차량 옆으로 아이들이 아슬아슬하게 지나가고 있다.
ⓒ 전득렬
동도초등학교 앞의 어린이보호구역 부재에 관해 동도초등학교 행정실 한 관계자는 "어린이보호구역을 만들면 주차할 곳이 없다며 주민들이 반대하고 있어 언제 만들지 모른다"며 어린이보호구역에 대해 무관심한 태도를 드러냈다.

한편, 동부교육청 초등학교 담당 한 장학사는 "어린이보호구역이 필요한 곳이 많다. 하지만, (어린이보호구역설치)신청을 하면 경찰청, 구청 등에서 관할을 따지는 등 미루는 사례가 많이 시간이 오래 걸린다"며 어린이보호구역 설치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또한, 교육인적 자원부에서 최근 스쿨존 관련 설치 현황을 조사해서 진행 중인 만큼 빠른 시간 안에 어떤 조치가 취해 질 것이라고 밝혔다.

대구 수성구청 시설과와 교통과의 관계자는 "동도초등학교는 어린이보호구역으로 이미 지정되어 있어 하반기에 관련시설을 할 예정"이라고 말하면서 "국비 50%와 시비 50%로 시설을 해야 하는데 국비가 배정되지 않아 계속 늦어지고 있다"고 해명했다.

어린이보호구역 없는 곳 단속법규 절실

▲ 학교 안에는 많은 아이들이 뛰어 놀고 있지만 어디에도 안전요원은 없다.
ⓒ 전득렬
어린이보호구역 시행 10년. 그동안 어린이보호구역 안에서도 어린이교통사고는 끊임없이 일어났다. 그때마다 많은 대책이 쏟아져 나왔지만 아직도 사고는 계속되고 있다. 무엇보다 어린이보호구역이 없는 곳을 어린이보호구역으로 지정하고 대책을 마련하는 노력이 부족하다.

지난해 어린이교통사고는 1만 7천여 건.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중 인구 10만 명당 어린이교통사고가 가장 많은 나라에 속한다. 급속히 인구가 줄어들고 있어 출산 장려정책을 펼치며 지원책을 마련하는 것도 좋지만 이미 자라나고 있는 우리 아이들이 사고 없이 안전하게 자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어린이보호구역을 확대 지정하고 등, 하교시간 대 학교 앞 교통안전지도를 강화해야 한다. 또 어린이보호구역으로 지정 안 된 곳은 그에 따른 안전기준을 빨리 마련해 자라나는 우리 아이들이 사고 없이 맑고 밝게 자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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