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 막게되어 버렸다. 이해찬 총리의 '3·1절 골프' 파문은 이 총리 개인의 문제를 넘어 집권세력 전체의 신뢰추락을 가져오는 큰 사건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청와대, 총리실, 열린우리당의 부적절한 대응은 파문을 키웠고, 결국 이 총리의 문제를 자신들 전체의 문제로 확대시켜 버리는 우를 범했던 것이다. 이제 와서 이 총리가 사의를 표명한들, 집권세력의 상실된 신뢰를 얼마만큼이나 회복시킬 수 있을까.
국민을 분노시킨 거짓과 궤변
부적절한 골프모임 자체도 문제였지만, 파문을 이처럼 키운 것은 관련자들의 거짓말 릴레이였다. 골프비 부담을 누가 했는지, 영남제분 류원기 회장이 골프모임에 참여했는지, 내기골프는 없었는지, '황제골프'가 아니었는지, 김평수 교직원공제회 이사장은 류 회장과 몇차례나 골프를 함께 쳤는지…. 수많은 문제들에 대해 관련자들은 거짓해명과 말바꾸기의 퍼레이드를 벌였다.
이 과정에서 총리실은 거짓해명에 부분적으로 가담하거나 최소한 방조하는 모습을 보여 거짓말 행진에 대한 책임도 면하기 어렵게 되었다. 관련자들이 이렇게 거짓해명에 나섰던 것은, 이번 골프모임의 부적절성을 자신들도 알고 있었다는 얘기가 된다. 참석자들이 특히 류 회장의 참여 사실이 드러나지 않도록 그렇게 안간힘을 썼던 것은, 그와 이 총리의 골프 만남이 그만큼 문제가 있는 것임을 그들도 알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또한 파문을 키운 것은 청와대와 총리실의 모습이었다. 당초 이 총리는 "본인의 거취문제는 대통령이 해외순방을 마치고 돌아오면 말씀드리겠다"고 했다. 언론은 이 말을 일제히 '사실상의 사의표명'으로 해석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난 뒤 총리실에서는 이 총리가 사의를 표명한 적이 없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이 총리가 '사의'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거취를 말씀드리겠다"는 말이 '사의'를 표명한 것으로 해석되는 것은 사회적 통념이다. 그대로 자리에 있을 생각이라면 거취를 말씀드리고 말고 할 것이 뭐가 있겠는가. 그럼에도 사의 표명을 한 적이 없었다고 잡아떼는 것은, 한마디로 눈가리고 아웅하는 식의 말장난이었다.
청와대도 이 총리에 대한 엄호에 나섰다. "이 총리는 정말 일을 잘 하시는 분이다", "이 총리가 사퇴할 경우 정책에 관한 국가틀이 흔들리게 된다", "노 대통령은 사실관계를 매우 중요시하는 분으로 총리를 교체할 정도의 사안인지 사실관계를 파악한 후 결정할 것이다". 이전과 조금도 달라지지 않은 청와대의 모습이었다.
이번 파문을 염두에 둔 듯, 이병완 비서실장은 "국정운영에서 여론은 중요한 요소이지만 만사를 여론이라는 일시적인 '국민정서법'에 휘말려 사실관계나 법절차를 무시한다면 책임있는 국정운영방식이 아니다"고까지 했다. 여론에 밀려 총리를 퇴진시킬 수는 없다는, 또 한번의 오기를 느끼게 하는 모습이었다.
이미 골프모임의 부적절성이 드러났고, 각종 의혹과 거짓해명이 속속 드러나고 있는 마당에 청와대 관계자들은 선문답을 하고 있었다. 한마디로 민심의 소재를 여전히 읽지 못하고 있는 소치이다. 왜 청와대 사람들은 걸핏하면 민심이나 여론을 일시적인 감정따위로 비하하는 오만을 부리는 것일까. 그들에게는 국민들이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그렇게 어리석은 존재로밖에는 보이지 않는 것일까. 총리가 3·1절 골프 한번 쳤다는 사실 자체로 국민들이 그렇게 성을 낸 것이 아님을 그들은 간과하고 있었다.
이 총리는 즉각 사퇴해야
이번 파문 과정에서 정작 앉아서 피해를 당한 것은 열린우리당이었다. 곧 선거를 치러야 할 열린우리당은 이 총리 파문에 따른 민심악화로 크게 낭패를 볼지 모르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열린우리당이 겪게 된 낭패의 절반은 자업자득의 결과라 할 수 있다. 자신들의 일을 앞에 놓고 그냥 앉아만 있었으니 피해가 닥쳐온 것이다. 도대체 지금같은 세상에 정당민주주의 한다는 정당에서 '함구령'이 무슨 말인가. 소속 의원들에게는 함구령을 내려놓고 정작 당 지도부는 강 건너 불구경하고 있는 모습을 보였다. 정동영 의장 체제가 들어섰지만, 열린우리당의 무기력한 모습은 그대로임을 보게 되었다.
여당내에서 이 총리 사퇴 목소리가 나올 경우 당·청 갈등으로 해석될 것에 대한 부담, 정동영 의장이 발언에 나설 경우 여권내 파워게임으로 비화될 것에 대한 우려가 깔려있음을 알지만, 그렇다고 여당이 침묵할 일은 아니었다.
대통령도 아닌 청와대 관계자들의 이 총리 엄호 발언이 있었다고 해서, 곧바로 이 총리 유임 기류가 득세한 여당의 모습을 보면서, 열린우리당은 지금 누구를 바라보며 정치를 하는 것일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청와대 눈치보기에 급급해 민심을 대변하지 못하는 여당이라면, 지방선거에서 무슨 말로 지지를 보내달라고 호소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번 파문 초기에 필자는 "로비골프 여부에 대한 확인은 더 거치더라도, 이제까지 드러난 문제만 놓고 보더라도 이 총리가 져야할 책임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않아 보인다 … 이 총리의 퇴진은 불가피한 선택이다. 이번만큼은 이 총리와 노 대통령이 민심 앞에 겸허한 모습으로 서주기를 바란다"고 주문한 바 있다. 추가적인 사실관계 확인에 상관없이 문제의 핵심은 이미 드러났다는 판단에서 이 총리의 사퇴를 촉구했던 것이다.
그러나 청와대는 그같은 요구들을 외면했다. "이 총리가 사퇴할 경우 정책에 관한 국가틀이 흔들리게 된다"는 말이 단순한 고충토로로 들리는 것이 아니라, 이래도 이 총리 사퇴를 요구하겠느냐는 위협성 발언으로 들리는 것은 어떤 이유일까. 도대체 특정인 한 사람이 물러난다고 해서 국가틀이 흔들리는 나라라면, 우리는 지금 어떤 나라에서 살고 있는 것일까라는 의문이 든다.
이 총리의 사퇴는 더 이상 지체할 일이 아니다. 이 총리는 사의를 정식으로 밝히고, 노 대통령은 사의를 즉시 받아들여야 한다. 골프파문 자체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번 과정에서 다시 드러난 정권의 불감증이다. 그 불감증이 지금 화를 키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