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본론에 들어가기에 앞서, '상놈'이라는 표현에 대한 오해를 제거하는 게 좋을 듯하다. 오늘날에는 '인격적으로 갖추어지지 않은 사람'을 가리킬 때 '상놈'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만, '상놈'은 본래 '평민' 혹은 '상민'(常民)을 낮추어 부를 때에 사용하는 말이다.

양반 지배층이 자신들보다 아래인 평민을 얕잡아 부를 때에 사용하던 '상놈'이라는 표현이 오늘날에 와서 다른 뜻으로 변한 것이다. 그런데 이 글에서 중요한 것은, '상놈'은 어쨌든 간에 '노비'와 달리 법률적으로 독립된 인격을 가진 평민이라는 점이다.

'노비'는 제 아무리 능력이 출중하다 해도, 선천적 신분 때문에 사회적으로 아무 일도 할 수 없다. 사회적 영역은 물론, 어떤 경우에는 결혼 같은 사적 영역에서도 상당히 많은 제약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노비'는 꿈을 펼 수 없다

그러므로 '노비'가 자신의 꿈을 펼치려면, 일단 자신의 신분적 한계를 먼저 극복해야 한다. 주인을 구슬리든 혹은 전쟁에 나가 공을 세우든 간에 어떻게 해서든지 간에, '노비문서'를 태워 버리는 게 그 무엇보다도 급선무인 것이다.

대한민국도 마찬가지다. 경제력이나 군사력에서 세계 10위권 전후의 국력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항상 어딘가 '2% 부족한' 나라다. 한반도 문제와 관련하여 그 많은 돈을 투자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도 한국을 제대로 상대해 주지 않을 뿐만 아니라 동족인 북한마저 항상 미덥지 않은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한국을 가장 무시하는 나라는 바로 미국이다. 미국을 위해 벌써 여러 번이나 파병을 해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중요한 순간에는 늘 한국을 따돌리고 있다. 그리고 주한미군은 남의 땅을 차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돈' 낼 생각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

한국을 무시하는 것은 북한이나 미국만이 아니다. 중국과 일본도 한국을 업신여기기는 마찬가지다. 이만한 경제력에 이만한 군사력을 갖고 있는 대한민국이 주변국들은 물론 동족에게마저 무시를 당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국은 무시 받는 나라

그것은 바로 한국이 '상놈'보다도 한 단계 아래인 '노비'이기 때문이다. 한국은 1910년부터 일본의 노비가 되었으며, 1945년부터는 미국에 넘겨졌다. 그러니까 1910년에 일본이 작성한 '노비문서'는 지금도 여전히 미국이 소지하고 있는 것이다.

"세계 10위권 전후의 경제력과 군사력을 갖고 있는 나라가 노비라면, 이 세상에 노비 아닌 나라가 어디 있겠는가?"라며 거부감을 가질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노비라고 하여 반드시 능력이 없으란 법은 없다.

TV 사극을 통해서도 잘 알 수 있듯이, 권력가의 노비는 막대한 양의 재물을 주무를 뿐만 아니라 사병까지 지휘하는 경우가 있었다.

미야지마 히로시 교수의 <양반>이라는 책에 의하면, 조선시대에 홍문관 부제학까지 지낸 이맹현은 전국적으로 752명의 노비들을 거느리고 있었다. 이만한 집안이라면 노비 사이에도 당연히 계층이 존재할 수밖에 없고, 상층 노비인 경우에는 웬만한 양반이나 평민보다도 더 잘 먹고 더 위세가 당당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아무리 잘 먹고 위세 당당한 노비라 하더라도, 가난한 선비가 꿀 수 있는 '꿈'을 꿀 수는 없는 것이다. 물론 그가 자신의 '신세'에 만족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지겠지만 말이다.

아무튼 한국이 세계 10위권 전후의 경제·군사력을 갖고 있다는 점과, 한국이 현재 '노비'라는 점은 전혀 모순된 게 아니다. 두 사실은 얼마든지 양립할 수 있다.

'권세가'(미국)의 '노비'로 살면서 세계 10위권 전후의 경제·군사력을 갖게 되었지만,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한국은 항상 어딘가 '2% 부족한' 나라다. 그 이유는 바로 한국이 미국이라는 '권세가'의 '노비'이기 때문이다.

한국은 '권세가'의 '노비'

그러므로 한국이 핵문제 등 한반도의 주요 현안에 관하여 제대로 발언권을 가질 수 없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다. 한국이 아무리 미국의 국방정책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한다 해도, '주인'이 보기에는 '노비'의 재산은 어차피 '주인' 자신의 재산이다. 그러니 한국에게 굳이 고마워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자국 군대가 '노비'의 땅을 좀 쓴다고 해도, 노비의 땅은 어차피 주인의 땅이므로 '사용료'를 낼 걱정을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한반도 문제의 경우에도, 한국을 배려하거나 한국의 의견을 반영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노비'는 인격이 없는 '물건'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결정을 하면서 '물건'의 의견을 듣는다면, 그것이야말로 '정신 나간 짓'일 것이다. 그러므로 미국이 한반도 문제와 관련하여 한국의 생각을 배제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인 것이다.

그 점은 북한도 마찬가지다. 형제인 한국을 미국이라는 '집안'에서 빼내오고 싶지만, 그것은 한국의 의사만 듣고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북한의 국력이 지금보다 훨씬 강력해서 '우격다짐'으로라도 한국을 빼내올 수 있다면 모르겠지만, 지금은 그럴 수 있는 형편이 아니다.

형제를 빼내 멀리 도망이라도 가서 살 수 있다면 모르겠지만, 세계 곳곳에 미군이 주둔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미국이 한반도 코앞에 있는 일본본토-오키나와-대만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으므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형편도 아니다.

그러므로 지금 북한이 '형제'를 '노비' 신세에서 해방시키려면, '주인'인 미국을 직접 상대하는 수밖에 없다. '주인'과의 맞대결을 통해 어떻게든 문제를 해결해야만 '형제'를 주인집에서 빼내올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지금 상황에서 북한이 한국을 상대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점들을 본다면, 북·미 양국이 한반도 문제에서 한국을 소외시키는 것은 매우 당연한 것이다. 한국은 법률적으로 독립 인격이 없는 '노비'이기 때문이다. 또 중국·일본 역시 '제 동족한테도 인정을 못 받는 한국'을 존중해 줄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한국은 경제·군사력에 걸맞는 국제적 지위를 가질 수 없는 것이다.

'노비'를 소외시키는 것은 지당한 일

그런데 만약 북한의 노력에 의해 한국이 '면천'(免賤)을 하게 된다면, 그 이후의 상황은 문자 그대로 '북한 주도의 통일'이 될 것이다. 물론 '고구려'가 주도하든 '신라'가 주도하든 간에 우리 민족이 통일된다는 게 중요하겠지만, 그래도 한국인 입장에서는 기왕이면 한국이 통일을 주도하는 게 더 좋지 않겠는가? 아무튼 북한이 북미관계를 통해 미국과의 문제를 해결하고 그 결과로 한국이 '면천'을 하게 된다면, 통일 역시 북한 주도로 이루어질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만약 한국이 스스로의 노력을 통해, 다시 말해 한미관계를 자주적으로 변화시키고 그 결과로 '면천'을 하게 된다면, 한국의 국제적 위상이 높아짐은 물론 한반도 문제에 관한 결정권 역시 높아지게 될 것이다.

또 지금 한국 정도의 국력이라면 스스로의 힘으로 얼마든지 '면천'할 수 있다. 자기 자신의 능력을 자각하는 그 순간에, 한국은 더 이상 미국에 질질 끌려 다닐 필요가 없을 것이다. '상놈' 소리를 듣더라도 일단 '평민'이 되기만 하면, 한국은 지금의 경제·군사력에 걸맞은 국제적 지위를 갖게 될 것이다.

노비에서 벗어나 평민이 되면 양반들로부터 '상놈'이라는 소리를 듣겠지만, 일단 평민이 되기만 하면 '왕후장상에 씨앗이 따로 없듯이' 한국도 얼마든지 '양반'은 물론 경우에 따라서는 '그 위'까지 넘볼 수 있을 것이다.

왕후장상에 씨앗이 따로 없다

아무튼 한국이 자주권을 갖게 되면, 다시 말해 스스로 당당하게 행동한다면 북한도 미국도 한국을 더 이상 무시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핵문제를 포함한 한반도 문제가 한국-북한-미국의 3각 구도로 전개될 것이다.

이민족인 미국에게 무시 받는 것은 그렇다치더라도, 동족인 북한에게마저 무시 받는 지금의 현실은 한국인들의 자존심을 밑바닥에서부터 상하게 하는 일이다. 이러한 '자존심 상하는 현실'을 바꾸려면, 일단 한국이 '노비' 신세에서 벗어나야 한다. 한국이 해결해야 할 최대 급선무는 바로 그것이다. '노비' 신세도 벗어나지 못한 채 '과거 급제'를 꿈꾸거나 '최 진사댁 따님'을 엿보는 것은 '정신 나간 일'이다.

한국이 '노비'를 벗어나 '상놈'이 되면, 한국은 우월한 경제·군사력을 바탕으로 통일을 주도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갖게 될 뿐만 아니라 그 능력에 걸맞는 국제적 위상을 향유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한국보다 훨씬 가난하고 힘없는 '상놈'들로부터 '노비'라며 놀림 받는 일도 더 이상 겪지 않게 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뉴스 615>에도 동시에 실리는 글임을 밝힙니다.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kimjongsung.com.시사와역사 출판사(sisahistory.com)대표,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친일파의 재산,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 등등.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