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문을 지나 소나무 숲에서 숨을 고른다. 천왕문에서 합장한 다음 다리를 건너기 바로 전에 우비천(샘)이 있다. 풍수로 볼 때 청암사는 소가 누워있는 형상이며, 이 샘이 소의 코의 해당한다고 한다. 소의 코는 항상 촉촉하게 젖어 있어야 한다. 이 절이 흉할 때는 이 샘이 정말 말라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샘의 물이 아주 많고 맑다. 그래서인지 현재 청암사는 비구니 승가대학으로서 완전히 자리를 잡은 듯 하다.
우비천 옆 다리에서 바라보는 노산폭포는 이 절의 경치 중 최대 장관이다. 대웅전 부처님께 3배를 올린 후 극락암으로 향했다. 극락암 보광전은 인현왕후의 원찰이라고 한다. 그래서 인지 바위 곳곳에 음각 된 상궁들의 이름이 눈에 많이 띈다. 그 중 가장 규모가 큰 것은 내가 몸담고 있는 김천고등학교를 설립하신 최송설당 여사님이시다.
불령계곡으로 산행을 시작한 지 1시간 쯤 지나 수도산 줄기의 8부 능선에 올라서니, 가야산의 북쪽이 한눈에 들어온다. 청암계 표지석에서 서쪽으로 30분을 지나니 드디어 수도암이다.
수도암은 수도산(해발 약 1300m)의 8부 능선에 위치하고 있으며, 보물을 네 점이나 보유하고 있는 암자로 비구스님들의 선방으로도 유명하다. 수도암에 서면 수도산에서 단지봉을 거쳐 가야산 정상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장관이다.
내내 날씨가 흐려 비나 눈이 올 듯 하더니 드디어 진눈깨비가 퍼붓듯 내린다. 깊은 산중에서 눈 내리는 산사의 분위기는 환상적이다.
노선버스가 끊어질까 걱정되어 걸음을 재촉하여 수도리로 향했다. 수도마을부터는 성주 대가천의 원류인 용소계곡을 따라 소재지(옥동)까지 15리를 걸어야한다. 걷는 동안 아들놈들은 연신 다리와 발가락이 아프다고 야단이다. 걸을 때마다 내 어릴 적 이야기를 하면서 달래본다.
야무지지 못하고 매사에 우유부단하며 욕심이 없는 큰놈을 볼 때면 못난 나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더욱 화가 나서 심하게 나무라게 되니 한편으로는 속상하고, 안쓰럽다. 못난 부모의 모습을 자식에게서 볼 때 화가 많이 나는가 보다.
공부에 찌들리지 않고 이름 모를 풀, 나무, 돌, 물 그리고 산에게서도 느낌을 받을 수 있고, 주위의 모든 이에게 사랑과 아량을 가지며 의식이 살아있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
오늘 하루의 산행을 자식놈들이 힘들게 생각할지라도 나는 이들과 함께 한 하루가 한없이 행복하고, 소중하다. 내가 어린 시절을 추억하듯, 저놈들도 나이 들어 오늘을 추억할 것을 기대한다. 내내 눈은 내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