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연희 의원의 잠적이 15일을 넘어서고 있다. 당사자는 가타부타 말도 없이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데, 정작 주변에서 난리다. 망치를 들고 술잔을 부수는 의원이 있었나 하면(보는 순간 기겁을 했다. 저렇게 위험을 짓을 애들이 따라하면 어쩌려고) '급성알코올중독'이라는 희한한 병명을 동원해서 최 의원을 엄호하는 동료도 있었고, 솟구치는 시심을 억제 못해 최연희 의원을 아름다운 꽃을 보고 그 향기에 취한 남성으로 우아하게 표현한 의원도 있었다.
여당은 최 의원의 성추행 사건을 한나라당에 대한 정치 공세의 소재로 삼았고, 한나라당은 몰리던 전세를 이해찬 총리의 골프 파문에 대한 역공으로 역전시키려 하고 있다. 하지만 성추행 사건이 불거지자 최 의원이 잽싸게 탈당해버리는 바람에 열린우리당의 정치공세는 방향을 잃어버렸다. 형식상으로는 한나라당이 전 한나라당 의원인 최 의원에게 뭘 어떻게 할 만한 것이 없다. 박근혜 대표가 "우리로선 할 일을 다했다"라고 말해도 딱히 할 말이 없다는 말이다.
최 의원의 성추행 사건은 여러모로 봐서 본말이 전도되었다고 본다. 일단 성추행은 범죄다. 당사자도 자백을 했다. 그러면 처벌을 받아야 한다. 왜 당사자가 의원직을 사퇴하나 마나가 문제의 초점이 되어야 하는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다. 만일 국회의원이 아닌 일반 직장인이 성추행을 했더라도 회사에 사표 내면 처벌을 면할 수 있나? 왜 <동아일보> 기자는 성추행을 당하고도 바로 그 성추행범을 경찰에 고소하지 않았단 말인가?
국회의원이든 교도관이든 회사원이든 노숙자든 동의 없이 여자의 가슴을 만지면 성추행범이 된다. 또한 그 성추행의 대상이 기자든 국회의원이든 식당주인이든 주부든 마찬가지다. 범죄자에게는 그에 합당한 처벌이 내려지면 된다. 최연희 의원이 한나라당을 탈당하든 의원직을 사퇴하든 그것은 그의 자유다. 그의 직업 선택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도 바람직한 일은 아니다. 그의 입만 바라보고 그의 사퇴를 사정(?)하고 있는 현재의 추세는 일의 진행이 잘못된 것이다.
본질은 사퇴가 아니라 처벌이다. 요즘 우리 사회는 '성폭행 공화국'이라 해도 할 말이 없을 만큼 성폭행, 성추행 사건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성범죄의 심각성에 대한 인식이 제대로 박혀 있지 않아서 그런 것이다. 술김에 가슴 한번 만졌다면 그것이 바로 성범죄로서 그 범죄자가 국회의원이라도 엄정한 법의 처벌을 받는다는 실례만큼 효과적인 성범죄 교육이 어디 있겠는가?
우리는 요즘 이상한 가치 전도의 시대에 살고 있다. 줄기세포를 만들었다고 온 세계에 자랑하던 사람이 그 줄기세포 좀 보자고 하니 자기도 그게 왜 없는지 모르겠다면서 찾아봐 달라고 한다. 줄기세포가 있는지를 밝혀야 할 터인데, 되레 줄기세포가 왜 없는지를 온 나라가 달려들어 밝혀내야 할 지경이 되었다.
처벌받아야 할 범죄자는 느긋하게 쉬면서 사퇴 여부를 저울질하며 성난 여론이 가라앉길 바라고 있는 와중에 사퇴를 해야 한다, 말아야 한다며 정치권이나 지역구에서 쓸데없는 논란을 벌이고 있다.
문제의 해법을 국회를 비롯한 정치권에 맡겨두는 것은 대단히 무책임한 일이다. '가재는 게편'이라는 속담을 들지 않더라도 국회 스스로 의원들의 윤리 문제에 단호한 모습을 보이길 기대하는 것은 이제껏 우리가 봐왔듯이, 흡사 국회의원이 청바지 입고 등원하는 모습을 기대하는 것과 같다. 정치권에서는 정치적 이익 그 이상의 문제에 대해선 관심이 없다는 점에서 여야가 따로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자리에서 <동아일보>와 한나라당의 '상견례'의 부적절성을 다시 거론하지는 않겠다. 다만 <동아일보> 기자에게 바란다. 성추행 사실을 밝힌 그 용기로 성범죄 문제에 대해 지금이라도 정면으로 부딪쳐 달라. 언제까지 사퇴하지 않으면 고소하겠다는 입장은 바람직한 해법이 아닐 것이다. 최 의원이 사퇴하면 용서해 줄 것인가?
성추행 피해 기자는 최소한 성범죄의 위험과 불안에 떨고 있는 여성의 한 사람으로서 지금 아무 조건 없이 바로 그 성추행범을 고소해주길 바란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문제의 본질은 본인이 결정해야 할 문제인 사퇴 여부가 아니라 그 범죄에 대한 처벌이 제대로 이뤄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