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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3월 14일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제10기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3차 회의에서는 대만(중화민국)의 탈중국화 움직임을 겨냥해 반국가분열법을 제정하였다. 찬성 2896표에 기권 2표로 통과된 이 법률은, 대만측이 '하나의 중국' 원칙에 도전할 경우 군사적 무력을 행사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두었다.
그러나 제정된 지 1년 하고도 1일이 지난 지금, 이 법률은 사실상 '종이호랑이'나 마찬가지다. 지난 2월 27일 천수이볜 대만 총통이 국가통일위원회(국통회) 및 국가통일강령의 운용 중지를 선언한 것은 사실상 '하나의 중국' 원칙을 거스른 것임에도, 중국측이 실제로 무력행사를 단행할 것이라는 징후는 보이지 않고 있다.
'하나의 중국'은 이미 붕괴하고 있는데...
지난 3월 5일 궈보슝 중국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이 전군의 경계태세 및 군사훈련 강화 방침을 밝히고, <해방군보> 역시 최근 광저우·선양·청두·베이징 4대 전구(戰區)에서 3군이 합동훈련에 돌입했다고 보도했지만, 적어도 현재까지 상황으로 보아서는 물리적 충돌이 현실화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거기에다가, 어제(14일) 제10기 전인대 4차 회의 폐막 직후에 열린 내외신 기자회견에서, 원자바오 중국 국무원 총리는 천 총통의 국통회 운용 중지가 '하나의 중국' 원칙에 대한 도발이라고 비판하면서도, 집권 민진당을 포함해 누구와도 만나 협상할 용의가 있음을 밝혔다. '하나의 중국' 원칙을 거스르고 있는 대만에 대해 무력행사를 단행하기는커녕 "누구와도 만나 협상할 용의가 있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반국가분열법은 침묵
이처럼 중국의 반국가분열법이 사실상 종이호랑이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것은, 중국 지도부가 적어도 지금 상황에서는 양안관계(중국-대만 관계)를 악화시킬 의사가 없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거기에는 다음과 같은 4가지 이유가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첫째, 국민통합과 경제개발이라는 당면 과제를 눈앞에 둔 상황에서, 중국정부는 역내(域內) 분쟁에 휘말릴 여유가 없다. 만약 지금 양안에서 대만과 분쟁을 벌이게 되면, 여타 지역에서 소수민족들이 동요할 가능성이 있고(국민통합 저해), 경제개발에 투입될 역량이 군비 마련으로 전환될 가능성(경제개발 저해)이 있다.
미-일-대만을 모두 상대해야
둘째, 양안 분쟁의 형식적 당사자는 중국과 대만이지만, 실질적으로 볼 때에는 미국도 그 당사자가 된다. 왜냐하면, 핵우산을 앞세워 동북아패권을 장악하고 있는 미국이 대만에 대해서도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미국은 표면적으로는 '하나의 중국' 원칙을 지지하면서도 실질적으로는 '두 개의 중국'을 부추기고 있다.
이 같은 조건하에서 중국이 대만과 분쟁을 벌이게 되면, 중국은 대만만 상대하는 게 아니라 미국까지 상대해야 한다. 거기에 그치는 게 아니라, 최근 들어 양안 문제에 적극 개입하려 하고 있는 일본까지도 대만 편에 서게 된다. 중국이 미국-일본-대만을 모두 상대할 수 없다면, 지금으로서는 가급적 분쟁을 피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양안 분쟁은 일본을 돕는 격
셋째, 양안분쟁이 현실화되어 중국 대 미-일-대만의 구도가 정착되면, 지금 진행되고 있는 중국의 대일(對日) 견제가 힘을 잃게 된다. 지금 중국은 야스쿠니 문제를 명분으로 일본의 도덕성을 집중공격하고 있으며, 이는 중국 입장에서는 '포스트 미국' 시대의 라이벌을 사전에 꺾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야스쿠니 비판은, 북한을 파렴치범으로 몰려고 하는 일본의 전략에도 일정 정도 차질을 주고 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미-일-대만의 구도가 정착되면, 일본이 야스쿠니 '포화'를 빠져나갈 수 있는 틈을 얻게 된다. 그러므로 지금 중국이 대만과 분쟁을 벌이면, 중국은 '포스트 미국' 시대의 라이벌인 일본을 일찌감치 견제할 기회를 잃게 된다.
넷째, 양안 분쟁이 현실화되면, 북·미 핵문제가 예측불허의 상황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있다. 이는 베이징 코앞에 있는 한반도가 예측불허의 상황으로 빠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는 중국 안보에 중대한 위협을 의미하는 것이다.
중국 입장에서는, 핵문제가 해결되기보다는 핵문제가 예측 가능한 상태로 전개되는 게 더 바람직하다. 그래야만 '완만한 진동'을 이용해서 자국의 영향력을 강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양안 문제가 지금 당장에 현실화되면 국력의 무게를 양안으로 돌릴 수밖에 없고, 그렇게 되면 한반도 문제에 역량을 기울일 여력이 없게 된다. 이렇게 해서 한반도 문제가 예측불허의 상황으로 돌변하면, 한반도를 코앞에 두고 있는 베이징 정권의 미래를 장담할 수 없게 된다.
대체로 위와 같은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중국은 양안 분쟁을 가급적 억제하고 있으며 또 그러한 이유 때문에 제정 1년째인 반국가분열법도 '개점휴업' 상태를 면치 못하고 있다. 양안분쟁을 꺼리기는 미국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러한 복합적인 사정을 고려한다면, 중국과 대만이 지금 당장에라도 무력행사를 할 것처럼 엄포를 놓고 있지만, 실제로 그것은 문자 그대로 '엄포'에 지나지 않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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