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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 다시 먹지 않겠다던 카레. 가끔 카레가 땡길 때가 있는데 어제부터 그랬다. 오늘 한번 먹어봐야겠다.
두번 다시 먹지 않겠다던 카레. 가끔 카레가 땡길 때가 있는데 어제부터 그랬다. 오늘 한번 먹어봐야겠다. ⓒ sigoli 고향
대학생활에 부적응, 다른 과 학회 기웃기웃

나는 촌놈이었다. 말씨가 그랬고 생김새는 20년이 지난 지금이나 마찬가지였다. 바짓가랑이만 걷어 올리면 방금 논에서 일하다 나온 사람 또는 땔나무꾼 같았다. 그런 내가 졸업정원제 막차를 타고 석탑이 있는 대학 한문학과 33명 일원이 되었다.

어찌나 생경하던지 며칠간은 학교에 가고 싶지 않아 빈둥빈둥 배회하는 꼴이라니. 숫자라도 조금 많았으면 다양한 사람에, 예쁜 여학생 보는 재미로 다녔겠지만 남녀를 통틀어서 고만고만한 사람들뿐인데다 교수도 한 분뿐이어서 정나미가 뚝 떨어졌다.

비둘기호 기차타고 춘천가는 길. 여기는 가평역입니다.
비둘기호 기차타고 춘천가는 길. 여기는 가평역입니다. ⓒ sigoli 고향
다들 아이들은 그래도 최소 지방도시 학교를 다녔기에 나처럼 적응하느라 애를 먹진 않은 듯한 분위기고, 사실 사투리 찍찍 해대는 나를 좋아할 리도 없잖은가. 게다가 난 담양 창평고 5회지만, 최초로 이 대학에 들어와 선배 하나 없는 불행한 학생이었다. 애초에 내가 알고 지낸 사람이나 거꾸로 나를 알았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정을 못 붙이고 보름 이상을 보내는 건 당연한 일. 3월이라 술자리가 잦았다. 1학년 밖에 없는 과에서 할 일이라곤 술먹기. 국문과에서 대신 치러준 신입생환영회를 비롯, 국문과 선배들과 인촌묘소라는 곳에서 낮부터 술판을 벌이기 일쑤였다.

첫 해는 110명 중 33명을 떼어 신설한 우리 학과를 국문과 학생회에서 돌보기로 했다고 한다. 원서를 들고 상담을 할 때 국문과 선배들과 몇몇 안면을 터놓았던 터라 그들과 곧잘 어울리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 와중에 책을 펼쳐본 날은 며칠 되지 않았다. '어, 어 이러다간 큰일 나겠다' 싶었다. 창업(創業)과 수성(守成) 가운데 어떤 것이 중요한가를 역설하신 선생님의 뜻과는 반대로 나는 한문학과가 아닌 국문학과에 더 끌렸다. 우리 과는 학회와 학생회마저 없던 상황이라 더 그랬다.

고심 끝에 이중간첩 누명을 쓰더라도 원래 내 전공과 맞는 한글, 고전국어, 국어학을 배울 수 있는 곳을 찾기에 이른다. 동아리는 '우리말사랑모임'이었고 학회는 국문과 '국어학반'을 선택했다.

동아리는 전공불문하고 들 수 있지만, 해당 학과 구성원만 자격이 있는 학회는 아마도 내가 처음이었을 게다. 어렵지 않게 내 뜻을 이해한 국문과 선배들은 나를 학회 회원으로 받아줬다.

그후, 형은 내가 대학을 가고난 뒤 한 달도 안 되어 변했다고 했다. 공부엔 취미를 붙이지 못하고 술자리만 기웃거리다가 12시가 넘어 막차 타고 집에 오니 '먹고대학생'이라 단정해도 할 말이 없는 처지였던 것.

카레 만들 때 감자보다 고구마가 더 달짝지근하고 맛이 좋다. 오늘은 제주도 햇감자와 당근이 주재료고 양파가 남아있으면 넣을 생각이다. 채소나 고기에서 나오는 물을 이용해 약하게 볶으면 기름기가 적은 담백한 카레가 완성된다.
카레 만들 때 감자보다 고구마가 더 달짝지근하고 맛이 좋다. 오늘은 제주도 햇감자와 당근이 주재료고 양파가 남아있으면 넣을 생각이다. 채소나 고기에서 나오는 물을 이용해 약하게 볶으면 기름기가 적은 담백한 카레가 완성된다. ⓒ sigoli 고향
아침에 차려진 덜 풀어진 카레 덩어리에 기가 질리고

그러던 3월 어느 날 국문학과 국어학반에서 MT라는 걸 간다고 한다. 두말 않고 따라 나서기로 했다. 웬만한 먹을거리는 1학년은 제외하고 선배들이 준비하는 자리다. '강촌'이 어디인지도 모르던 나는, 놀러간다는 소리에 가슴이 뻥 뚫리는 듯한 기분이었다.

우린 비둘기호에 몸을 싣고 청량리에서 경춘선을 따라 성북, 마석, 대성리, 청평, 가평을 지나 강바람이 불어대는 따스한 강촌에 도착했다. 대략 열여덟 명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신입생환영회 때 '막걸리사발식'을 하지 않았다면 별 볼 일 없는 밤이었다. 술과 놀이(게임)로 밤을 지새웠다. 저녁밥은 내가 처음 먹어본 것이 대부분이었다. 기름기 둥둥 뜬 너저분한 참치찌개에 김 쪼가리, 단무지, 김치에 통조림 장아찌라 맛은 별로였지만 국물이 있어 그런대로 봐줄만 했다.

밤이 깊어가자 삼겹살을 구워 먹었으니 준수한 편이었다. 세 시가 넘어 잠자리에 들었고 술에 익숙하지 않았던 때라 늦도록 잠을 자도 숙취가 말이 아니었다. 하늘 같은 선배가 흔들어 깨운다.

“규환아 밥 먹자. 관형이도.”
“야, 다들 일어나라니까.”

2학년이던 이상혁 선배와 3학년 김양진 선배가 우릴 흔들어 깨웠다. 부스스한 얼굴로 눈을 비비고 신문을 깔고 코펠과 알루미늄 그릇을 올리고 어제 먹던 반찬을 올린다. 제일 큼지막한 두 곳엔 삼층밥이 설익은 대로 덜고 있다.

찐빵에 팥소 없으면 안 되듯 카레 먹을 땐 김과 김치가 필수품이다. 맛이 달라진다.
찐빵에 팥소 없으면 안 되듯 카레 먹을 땐 김과 김치가 필수품이다. 맛이 달라진다. ⓒ sigoli 고향
그 다음엔 걸쭉하고 노란 덩어리가 풀어진 게 두 솥 가득 통째 옮겨졌다. '어, 이게 뭐야?' 물어볼 수도 없어 그냥 잠자코 사람들이 먹는 걸 지켜보노라니 여자선배 한 명이 나를 쳐다보고 한 마디 했다.

“규환아, 카레야 먹어봐.”

카레라. 생전 처음 보는 것이다. 노랗고 걸쭉한 국물에 깍두기보다 큰 당근과 감자, 양파가 전부였다. 무슨 음식이 이토록 누리끼리하게고 지저분하단 말인가. 게다가 덩어리를 물에 풀지도 않고 끓였는지 떡진 덩어리를 으깨자 가루째 뭉그러진다.

다들 아침 허기를 채우려고 두어 숟가락씩 퍼서 밥 위에 올린다. 그러고 나서 대충 비비다가 잘도 먹는다. 일단 나는 요놈의 색깔 때문에 질리고 말았다. 나와 처음 만난 카레는 노랗다기보다 설사하던 아기가 마룻바닥에 찍찍 깔겨댄 배설물과 하등 다를 바 없으니 정말이지 도저히 숟가락이 움직이질 않았다.

또한 국물은 둘째치고 김치쪼가리 하나 남지 않아 무얼 반찬 삼아 넘길지 고민이었다. 눈치가 보여 물을 말아먹을 수도 없어 세 수저를 떠서 둘둘 비비고 고문을 당하듯 떠 넣었다.

“욱-.”

그때까진 묵묵히 먹고 있던 사람들은 아무 반응이나 간섭이 없었다.

“욱~.”

다시 한번 토하는 소리를 내자 먹던 걸 멈춘다.

“왜, 규환아?”
“아닙니다. 어젯밤 술이 좀 과했나 보네요. 속이 좀 미식거려서요.”
“천천히 먹어라. 쉬었다 먹을래?”
“아니요. 먹어보겠습니다.”

미영이 선배와 양진이 형이 무척 걱정스런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어제 끓인 참치김치찌개에 들어 있는 김치에 떠 담은 밥을 전부 비웠다.

1987년 4월 초 한문학과 1회 동기생들만 청평으로 수련회를 갔다. 선배가 없어 준비가 부족해 바가지에 밥을 퍼먹고 있는 사람이 바로 필자다.
1987년 4월 초 한문학과 1회 동기생들만 청평으로 수련회를 갔다. 선배가 없어 준비가 부족해 바가지에 밥을 퍼먹고 있는 사람이 바로 필자다. ⓒ sigoli 고향
게임에 걸리면 벌로 카레와 맨밥을 먹는 고문 후 좋아하게 돼

조촐한 조찬에 속이 뒤집어질 것 같아 뒷산에 오르자고 했더니 한 선배가 따라 나섰다. 양지바른 곳에 누워 햇볕을 즐기다가 옆에서 담배를 피기에 호기심에 한 대 얻어 피웠더니 머리마저 빙빙 돌았다.

간신히 나뭇가지를 붙잡고 민박집으로 내려와 보니 절반 이상 남은 밥과 카레를 처치할 방법으로 시끌벅적했다. 꿔다놓은 보릿자루는 면하고자 자리에 앉았더니 게임을 해서 걸리는 사람이 한 숟가락씩 먹는 걸로 결정이 났다.

게임 하면 또 내가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팔자 아닌가. 걱정이었지만 이내 합류했다. ‘묵찌빠’와 ‘감자에 싹이 나서 잎이 나서 싹!싹!싹!’ ‘공공칠빵’이 시작되었다. 맨 먼저 ‘공공칠 빵’에선 용케 나를 지목하지 않아 넘어갔다. 1학년 은경이가 걸려 맨밥을 한술 가득 떠 넣고 징그러운 카레도 입에 넣는다.

‘아이구, 저걸 어떻게 먹어?’

다시 본격 게임에 들어갔다. 이어 내리 두 판을 걸리고 말았다. 첫 번째는 눈을 찔끔 감고 눈물을 흘리며 먹었다. 곧바로 다시 걸리자 나는 이 지옥같은 분위기를 단 1초라도 벗어나고 싶었다.

“형, 나 게임 그만하고 저거 절반 먹으면 안 될까?”
“얌마 안돼. 같이 해야지 무슨 맛이냐?”
“아녀요 도저히 저건 못 먹겠어. 할 때마다 내가 걸릴 건데 그럼 내가 다 먹어야 한단 말 아닌가?”
“야, 중지를 모아보자.”
“그렇게 하라고 하지 뭐.”

일단 게임 고문에서 벗어났다. 이젠 한 터널만 벗어나면 된다. 옆에서 게임을 하고 있는 동안 나는 식어서 굳어빠진 밥을 몽땅 밀어 넣고 카레 한 숟가락 떠먹기를 반복했다.

왁자지껄한 소리에 묻혔으니 망정이지 촌놈이 벌밥을 먹느라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모른다. “욱-”을 몇 번이나 반복했고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을까. 절반 이상을 비우고 시달림에서 벗어나 밖으로 나가 산으로 뛰었다.

“욱~욱~.”

코까지 매웠다. 향긋한 향도 개밥보다 더 징그러웠다. 그 일이 있고 나서는 카레를 쳐다보지도 않겠다고 다짐했다.

인생사 더럽게 꼬이더니 7년 가까이 다닌 대학 시절 학회, 학생회, 동아리, 동문회에서 수련회 갈 때마다 지긋지긋하게 내놓으니 반드시 카레밥엔 김치와 김이 있어야 먹었다.

사회에서도 1박 2일로 가면 그걸 차리니 이젠 물린다기보다 더 맛있는 카레를 만들기 위해 몰두하는 사람으로 바뀌었다. 돼지고기를 볶지 않고 고기에서 나오는 육수를 기본으로 물을 약간 치고 삶아 채소와 양념을 같이 더 끓이면 담백하고 맛이 좋다. 묵은 김치에 김 한통씩 놓고 싸먹으면 별미 중 별미다.

요즘엔 매운맛과 보통맛 등 여러가지가 나오는데 이젠 더 이상 카레를 보면 넘어올듯 한 생각은 들지 않는다.
요즘엔 매운맛과 보통맛 등 여러가지가 나오는데 이젠 더 이상 카레를 보면 넘어올듯 한 생각은 들지 않는다. ⓒ sigoli 고향
아, 이 나른한 봄에 학생들 캠퍼스를 떠나 모꼬지 떠날 철이니 오늘밤 카레밥이나 한 번 만들어볼까? 이젠 나도 만들기나 먹는데도 선수가 되었지 않은가.

덧붙이는 글 | 김규환 기자는 고향신문 시골아이 고향(www.sigoli.com)을 만들고 있다. 오늘 저녁 진짜 입맛을 되찾기 위해 카레밥을 만들어 먹고 싶다. 이 기사는 ‘U포터’에도 송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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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환은 서울생활을 접고 빨치산의 고장-화순에서 '백아산의 메아리'를 들으며 살고 있습니다. 6, 70년대 고향 이야기와 삶의 뿌리를 캐는 글을 쓰다가 2006년 귀향하고 말았지요. 200가지 산나물을 깊은 산속에 자연 그대로 심어 산나물 천지 <산채원>을 만들고 있답니다.도시 이웃과 나누려 합니다. cafe.daum.net/sanchaewon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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