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외수의 시보다는 소설을, 산문보다는 우화를 즐겨 읽는다. 팽팽한 긴장감이라는 뻔한 수식어를 붙이기 민망하지만, 그의 소설과 우화는 긴장감과 함께 명상을 통해 얻는 해방감을 동시에 느낄 수 있어 좋다.
지난 1975년에 중편 <훈장>으로 데뷔를 했으니 올해로 그의 문학 나이는 꼭 서른이다. 청년이 된 그가 문학 수첩을 통째로 공개했다, <글쓰기의 공중부양>. 어쩜 제목도 그답다. '글쓰기'에 '공중부양'이라는 단어를 접목시켜 어기적어기적 소걸음으로 뒤따르는 후배들에게 한껏 질투심을 유발한다. 부럽지만 결코 얄밉지 않다. 그의 '문장 백신'이 진심으로부터 추출된 것임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글쓰기에 관한 비법이라야 중학교 교과서에 등장하는 어느 수필에서 배웠듯이 많이 읽고, 많이 써보고, 많이 고쳐보면 되는 것. 그러나 선생은 의외로 아주 구체적이다. 이외수 식 단어채집과 속성 바꾸기 등 구체적인 방법론을 제시하면서 "장대 끝에서 한 걸음 나아가라"고 단호하게 매질한다. 그것이 글 쓰는 자의 양심이기에.
단어에는 생어(生語)와 사어(死語)가 있다. 생어는 말 그대로 오감(五感)이 살아있는 단어고, 사어는 주로 한자어로 추상적인 단어를 말한다. 사어와 생어가 적재적소에 배치될 때 좋은 문장이 탄생한다. 단어채집은 어렵게 금광을 뒤지는 작업이 아니다. 내 몸에서부터 출발해 내 방, 내 집, 온 동네, 온 나라, 바다, 하늘, 사막, 벌판, 지극히 미세한 부분에서 지극히 거대한 부분까지 샅샅이 훑어보며 하는 것이다. "쓰는 자의 고통이 읽는 자의 행복이 될 때까지"
이외수 식 단어채집은 언뜻 들으면 그다지 어려워 보이지 않지만, 막상 실천하려고 하면 시간과 에너지의 소모가 엄청나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러면 '속성찾기'는 또 어떤가. 먼저 다음 문장이 무엇의 속성을 설명하는지 맞혀보자. (답은 맨 아래)
문: 반투명체다. 얇다. 구기면 나지막이 빗소리를 발한다. 얇고 가볍다. 붓글씨를 쓸 때 사용한다.
그는 "효과적으로 글을 쓰려면 겉으로 판단되는 속성은 물론이고 보다 내면적인 속성을 찾아내는 일을 게을리하면 안 된다" 또, "재료의 성질을 잘 파악하지 못하는 요리사는 절대로 훌륭한 요리를 만들어 낼 수 없다"고 잘라 말한다.
사물의 속성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선생이 자주 반복하는 사안론(四眼論)으로 보아야 한다. 사안론이란 육안(肉眼), 뇌안(腦眼), 심안(心眼), 영안(靈眼)을 말한다. 육안은 얼굴에 붙어 있는 눈이고, 뇌안은 두뇌에 들어있는 눈이며, 심안은 마음속에 간직되어 있는 눈이고, 영안은 영혼 속에 간직되어 있는 눈을 일컫는다. 글 쓰는 자는 세상을 심안과 영안으로 바라보면서 글에 자신의 진심을 담아야 한다.
이어 '본성찾기'를 통해서 그는 한 마디로 글 쓰는 자가 지녀야 할 기본 심성을 규정한다.
"나쁜 놈은 좋은 글을 쓰지 못한다.… 어떤 놈이 나쁜 놈일까. 바로 나뿐인 놈이 나쁜 놈이다."
자기 자신만 아는 태도를 그는 경계한다. 우주 만물이 모두 서로 소통하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사물의 속성을 파악하는 일은 사물과의 소통을 시도하는 일이며 사물과의 소통을 시도하는 일은 사물과의 사랑을 시도하는 일이다"라고 단언한다.
선생은 글쓰기의 필수요건으로 진실, 소망, 감성 그리고 애증을 꼽는다. 이어 경계해야 할 병폐들로 가식, 욕심, 허영을 지적하는데, 그 가운데 특히 지적 허영을 조심하라고 당부한다. 허영으로 이루어진 글은 생명력이 없고, 가식과 욕심으로 채운 글은 추하게 마련이다.
이제 무엇을 쓸 것인가. 그는 "쓰고 싶은 글을 써라.", "글은 충동과 의욕에 의해서 쓰여지는 것이다"라고 충동질한다. 어떤 글을 어떻게 쓸 것인가 구상하고, 구어체로 스케치하듯 쓰되, 문어체로 바꾼 뒤 수식어나 수사법을 사용해서 문장을 다듬는다. 앞서 말한 장대 끝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라는 선언은 이 대목에서도 여전히 요구된다. 글은 말보다 더욱 공적인 화법이고 번복이 어렵다. 추려내고 다듬고, 매만지고 가꿔야 한다.
끝으로 그는 모든 예술가에게 요구되는 자기만의 개성을 찾으라고 주문한다. 마이크만 잡는다고 다 가수는 아니다. 누가 들어도 대번에 어느 가수인지 알아차릴 수 있는 자기만의 목소리가 있을 때 가수다운 가수가 된다. 문체는 곧 그 자신이다. 자기만의 목소리를 구축하는 지름길로 선생은 '나는 당신이다'라는 숙제를 내민다.
나는 개미이다. 나는 하늘이다. 나는 나무이다. 나는 호수이다. 나는 당신이다.
'나는 ○○이다'로 시작하는 글을 하루에 노트 한 장씩 써보는 연습은 글쓰기보다 명상에 가깝다. 단어로 명상하기. 언어의 연금술사 이외수가 전하는 문장 백신은 결국 나와 나를 둘러싼 모든 것과의 대화이자 껴안기가 아닌가 싶다.
답: 미농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