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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립을 꿈꾸는 홀트마을 사람들
자립을 꿈꾸는 홀트마을 사람들 ⓒ 김은희
'위층 여자, 아래층 남자' 꼭 영화제목 같기도 하고 소설제목과 같은 이야기가 홀트마을에서 일어났다.

1980년 중반 홀트일산복지타운 농장에 건립된 그룹홈 형태의 남, 여 자활의 집이, 농장이 매각되면서 지난해 12월 일산복지타운 옆 아파트로 옮겨 간 것. 704호에는 여자 자활의 집이, 603호는 남자 자활의 집이 위 아래층으로 있다.

홀트마을에 머무는 사람들은 대부분 선천성 정신지체, 지체장애를 갖고 태어나 기아로 발견되었거나 혹은 다른 장애시설에서 성장하다 온 경우가 많아서 이들의 생활을 책임지고 도와줄 부모나 형제가 없기 때문에 스스로 생활해야 한다.

물론 생활시설에서 생활지도교사나 봉사자의 도움을 받으며 장애 정도에 따라 필요한 기초적 자활 훈련은 이루어지지만 직접 사회를 접하고 지역 주민을 만나는 일 등 체험적 교육은 적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자활의 집에서는 친구들과 함께 식사와 청소, 빨래, 쇼핑, 여행 등 간단한 부분부터 자신들의 판단력과 의지로 자유롭게 생활할 수 있기 때문에 한 사회인으로 성장하는 데 필요한 것을 배우는 훌륭한 장소가 된다.

홀트는 일찍이 장애인 사회적 권리를 존중하여 1980년 중반부터 스스로 움직임이 가능하고 기초적 계산능력과 언어 표현, 이해력을 가진 장애인을 중심으로 자활의 집을 운영, 적잖은 사람들이 자활의 집을 거쳐 결혼도 하고 사회로 진출하기도 했다.

여자 자활의 집은 1999년 1월 정식인가를 받았고 남자 자활의 집은 2006년 이번 해에 정식인가를 받은 것으로, 지금 자활의 집 두 곳은 홀트에서 구입하고 자활 교육비(운영비)로 일정 부분 정부 지원을 받아 운영하고 있다.

천진난만 사랑스런 '위층 여자'

외부 취업을 나간 희주씨를 제외하고 위층 4인방 상희씨, 혜정씨, 영옥씨, 연옥씨와 함께 아파트로 향했다. 어떻게 살고 있을까~ 마냥 어린아이같이 순진한 사람들이어서 살림도 순진(?)하게 단출하지 않을까 생각했던 것은 집 문을 여는 순간 사라졌다.

원래 홀트마을 사람들의 청소실력(?)은 극히 알고 있었으나 먼지 하나 없는 깨끗한 방과 정갈한 수납, 예쁜 소품에 은은한 아로마 향기까지, 곳곳에서 야무진 살림솜씨가 느껴졌다. 오히려 내가 자활의 집에서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쉽게도 타버린 고등어... 저녁 준비 모습
아쉽게도 타버린 고등어... 저녁 준비 모습 ⓒ 김은희
여자 자활의 집은 제일 언니 영옥씨만 지난해 가족이 되었고 나머지는 5~6년 정도 함께 생활해서 그런지 각자가 할 수 있는 역할이 나뉘어 있었다. 마냥 아기 같은 영옥씨는 쌀 씻기, 빨래 널기 담당이고, 영옥씨와 해정씨는 반찬 준비와 상차리기, 위층 식구의 반장격인 상희씨는 뇌성마비 장애 때문에 가사 일을 돕지 못하는 대신 꼼꼼하게 생필품 구입부터 생활비 관리, 음식 만드는 순서와 방법을 알려 주는 등을 맡아 하고 있다.

오늘의 저녁식단은 고등어구이에 콩나물국 그리고 봉사자분들이 만들어 주신 반찬. 연옥씨와 상희씨가 고등어를 굽다 그만 뒤집는 순간을 놓쳐 아쉽게 반쪽이 타 버렸고, 30분째 영옥씨의 콩나물 다듬기는 제자리다.

농장의 넓은 집에서 33평 아파트로 이사와 나름대로는 잘 적응하고 있지만 위층 식구들은 이사 온 첫날부터 사고 아닌 사고(?)를 쳤단다. 평소 습관대로 아침 6시에 기상해 앞뒤 베란다 활짝 열고 청소를 시작한 것, 청소기 소음에 아래층 사람이 놀라 올라왔단다. 아파트 생활을 모르니 그럴 수밖에…. 사실 처음 아파트에 자활의 집 문을 열었을 때 이웃의 시선이 좋은 편은 아니었으나 지금은 큰 무리 없이 잘 지내고 있다고.

개성만점 씩씩한 '아래층 남자'

아기자기한 위층 여자 집에 비해 아래층 남자 집은 '홀아비' 향기(?)가 난다고 해야 할까. 물론 홀트마을 출신이니 바닥은 윤이 날만큼 깨끗하지만 살림살이가 몇 개 없어 곳곳이 허전해 보였다.

아래층 남자분들은 생활력도 높고 개성도 강하다. 혼자 영화를 보러 갈 만큼 영화를 좋아하는 희대씨는 장애인축구대표선수로 활약, 체육훈장도 받은 스포츠맨이고, 웹사이트에서 꼭 조선일보만 보고, 이유는 모르겠지만 5.16 군사 쿠데타 기사만 스크랩(?)해서 불린 별명, '달리는 조선일보'의 대니씨.

희대씨와 같이 제일 맏형인 요한씨의 별명은 '황소고집', 말수가 별로 없으나 가끔 '기차 타고 미국 갈 수 있다(?)' 등의 엉뚱한 소리로 아래층 식구들을 웃게 만든다고. 외모가 준수한 영국씨는 자기주장이 강해서인지 반찬투정(?)을 하는 편이고, 수다쟁이(?) 희목씨는 일산타운 소식통이기도 하며 현재 파란 유니폼에 반해 주유소에서 일하고 있다. 비록 자기주장이 강한 다섯 사람이지만 '공동생활'에서는 각자의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

상희씨에게 인형을 선물하는 희대씨
상희씨에게 인형을 선물하는 희대씨 ⓒ 김은희
갑자기 화두가 1만6000원 더 청구된 '관리비'로 몰렸다. 생활비가 지정되어 있기 때문에 잘 사용하지 않으면 차액을 스스로 감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용민 담당 선생님이 보일러 조절 방법과 수돗물 사용량을 시범적으로 보이며 '절약'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모두들 독립생활을 준비하러 왔잖아요. 희대형 장가가야죠. 대니형도 그렇고. 돈을 중요시 하고 계획적으로 사용하는 것도 이곳 자활의 집의 목적 중 하나예요." 모두 수긍한다는 듯이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예쁜 옷을 사고 자랑하는 위층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역시 남자들이어서 그런지 경제에 관심이 많아 보였다.

뒤늦은 저녁. 퇴근이 늦은 영국씨를 배려하여 7시에 저녁을 준비했다. 그런데 위층하고 통했는지 아래층도 '고등어구이'가 올라왔다. 그러나 그 외 반찬이라고는 김치와 김뿐이었다. '남자만 산다'는 티(?)는 살림 말고도 반찬에서도 역력히 나타났다.

사실 아래층에는 아직 반찬 봉사자가 없단다. 위층에 비해 남성들만 있어서인지 여자봉사자분들이 쉽게 들어오기가 불편해서라는데 빨리 봉사자가 생겨서 풍성한 식탁이 되었으면.

위 아래층 연인, 상희씨와 희대씨

위층 아래층 연인 희대씨와 상희씨
위층 아래층 연인 희대씨와 상희씨 ⓒ 김은희
위층과 아래층에는 홀트마을에 모르는 이가 없는 한 쌍이 있다. 큰 키에 시원시원한 성격의 희대씨, 센스 만점에 아기자기한 상희씨가 그 주인공. 아래층 다른 가족과 달리 희대씨는 위층 출입이 잦다. 힘이 필요한 일부터 쇼핑 보디가드까지 상희씨가 가는 곳은 희대씨도 간단다.

두 사람은 결혼을 생각하고는 있지만 영구임대아파트가 앞으로 5년 정도 지나야 분양받을 수 있고 아직 스스로 자립하기에는 저축된 돈도 자활준비도 미약할 따름이다. 그나마 한 지붕 위, 아래층으로 살고 있으니 적잖은 위로가 되리라.

순박하고 순수한 위층 VS 아래층 홀트마을 사람들. 서로 돕고 각자 맡은 역할을 충실히 행동하는 모습은 우리가 배울 점이지 않을까! 서로 자활을 도우며 함께 동행하는 아름다운 이웃, 위층 여자 아래층 남자 파이팅!

덧붙이는 글 | 홀트아동복지회 사보 3·4월호에도 실렸습니다. www.hol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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