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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G가 아이칸파트너스 및 스틸파트너스 등 외국자본의  경영권 위협을 받고 있는  가운데 곽영균 KT&G 사장이 지난 7일 오전 여의도 63빌딩에서 열린  기자회견 앞서 참석자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KT&G가 아이칸파트너스 및 스틸파트너스 등 외국자본의 경영권 위협을 받고 있는 가운데 곽영균 KT&G 사장이 지난 7일 오전 여의도 63빌딩에서 열린 기자회견 앞서 참석자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 서울=연합뉴스

'상어' '기업사냥꾼' '적대적 인수합병 창시자'….

미국계 투기 자본 '칼 아이칸'을 일컫는 말들이다. 아이칸의 KT&G 경영권 위협을 두고 한국경제가 치열한 논쟁에 휩싸여 있다.

"무분별한 자본시장 개방과 미국식 기업지배구조의 폐해가 여실하게 드러난 사건"이라는 주장에는 "글로벌 스탠더드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반박이 이어진다.

또 "국민이 피땀흘려 만들어놓은 좋은 기업이 통째로 투기자본 먹잇감으로 전락했다"는 비판이 나오면 "무사안일한 경영진에 대한 경고이며 주주중시 경영에 도움이 된다"는 지적도 따라붙는다.

언론들도 제각각이다. 재벌 등 기업 입장을 대변해 온 경제신문들은 앞다퉈 투기자본의 폐해를 집중 부각한다. 보수적 색채의 일부 메이저 신문은 '국익'을 앞세워 자본의 국적성에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에 반해 진보적 성격의 일부 신문은 "이들 보수언론과 경제단체 등이 사안을 확대시키고 있다"면서 외국자본을 두둔하는 듯한 논조를 보이고 있다.

진보성향의 시민사회단체간 입장차이도 분명하다. 재벌개혁에 목소리를 높여온 참여연대는 오히려 적대적 인수합병의 장점을 강조하고 지배구조 개선에 목소리를 높인다. 하지만 대안연대회의와 투기자본감시센터 등은 미국식 지배구조 폐해를 지적하면서 참여연대에게도 비판의 날을 세우고 있다.

냉혹하기로 유명한 미국 월가 금융자본들로부터 '피도 눈물도 없는 기업사냥꾼'이라는 별명을 얻은 칼 아이칸이 한국경제에 던져놓은 화두다.

①'메기 효과' 논란 : "외국 자본은 메기냐, 상어냐"

지난 97년 외환위기 이후 국내 자본시장은 급격하게 개방됐다. 금융과 기업 구조조정은 일상화됐다. 많은 노동자들이 길거리로 내몰렸지만, 대자본을 앞세운 외국인들은 국내 기업과 금융시장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당시 경제학자들 사이에선 이른바 '메기효과'가 많이 인용됐다. 내용은 이렇다. 미꾸라지 양식장에 천적인 메기를 몇 마리를 풀어놓는다. 일부 부실한 미꾸라지들은 잡아 먹히게 된다. 하지만 대부분의 미꾸라지들이 살아남기 위해 열심히 움직이게 된다. 메기가 없는 양식장보다 훨씬 크고 튼튼한 미꾸라지를 얻게 된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외국자본이 국내 시장에 들어오면 일부 부실기업이 외국인에 넘어갈 수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국내 기업들의 경영 효율성이나 투명성이 좋아지는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IMF 이후 국내 대기업들의 부채비율이 크게 떨어지는 등 경영개선 효과가 두드러졌다.

반론도 만만치 않다. 최근 들어 일부 외국자본이 단기 투자를 극대화하기 위해 무리한 구조조정을 단행하고 자본을 빼가면서 기업이 어려워지고 있다는 것이다. 또 지나친 경영간섭과 적대적 M&A 위협으로 경영 안전성을 해치고 있다는 것이다.

윤성훈 한국은행 금융경제연구원 차장은 "외국자본에 대한 규제는 세계무역기구(WTO) 등의 기준에 벗어나지 않아야 한다"면서도 "투기성 자본의 부적절한 행태는 억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승일 국민대 겸임교수(경제학부)도 "메기가 들어와 좋은 미꾸라지를 얻기는 커녕, 상어가 들어와 양식장을 헤집고 있다"면서 "무분별하고 원칙없는 개방으로 국민경제에 역효과가 초래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②경영권 안전장치 논란 : 기업들 "그것 봐, 우릴 보호해 줘"

KT&G의 경영권 분쟁으로 재벌 등 기업들의 목소리는 더욱 높아지고 있다. 한 마디로 "그것 보라"는 식이다. 이어 국내기업 또는 국내 자본에 대한 '역차별'도 적극 부각시키고 있다.

재계 쪽에서 요구하는 대표적인 경영권 방어 장치는 크게 세 가지. 하나는 황금주(Golden Share)제도다. 단 1주만으로 주주총회의 결의사항에 거부권을 행사할수 있는 제도다. 상법상의 '1주 1의결권' 원칙에는 정반대다. 대개 공기업이 민영화되는 과정에서 정부가 황금주를 갖는다. 공익성을 해치지 않도록 정부가 적정하게 다른 주주들을 견제하려는 것이다.

또 하나는 차등의결권 제도다. 유럽과 미국쪽 기업 상당수가 이미 도입하고 있다. 예를 들어 미국 포드의 경우 포드가문은 7% 지분으로 40%의결권을 행사할 수도 있도록 돼 있다.

마지막으로 외환위기 직후 폐지된 의무공개매수제도. 한 회사의 주식을 25% 이상 취득할 때, 50%에 1주를 의무적으로 사도록 하는 것이다. 현재 금융감독 당국 등에선 차등의결권과 의무공개매수제도 등을 다시 살리는 방안을 적극 검토중이다.

이승철 전국경제인연합회 상무는 "이미 다른 선진국들 기업에 이미 도입돼 운영되고 있는 제도를 우리나라에서 막아놓은 이유가 무엇인가"라며 "외국자본에게는 규제를 풀어놓고 국내자본에는 각종 규제를 해놓고서는 어떻게 공정한 경쟁이 되겠는가"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박경서 고려대 교수(경영학과)는 "현재까지 기업에 대한 적대적 인수합병 시도의 경우 소버린과 칼 아이칸 등에 불과하다"면서 "기업지배구조 개선 등의 장점은 보지 않고 유력한 경영규율 장치를 악화시킬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상조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 소장(한성대 교수)도 "개방된 자본시장 체제에서 적대적 M&A 시도가 단 몇 건에 그친다는 것 자체도 문제"라며 "경영권 방어장치를 강화하는 것보다 여전히 불투명한 기업지배구조를 가지고 있는 재벌의 변화가 먼저"라고 말했다.

③언론의 엇갈린 시선 : <동아>가 진보, <한겨레>가 보수?

이번 KT&G의 경영권 분쟁을 바라보는 언론들도 제각각이다.

전경련이 대주주인 <한국경제>는 외국과 국내 자본간의 역차별을 적극 부각시키면서 기업의 경영권 방어 장치 도입을 역설했다.

정규재 논설위원은 지난 14일치 '자본의 국적성과 투기성 문제'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한 쪽은 벌거벗고 팔다리를 묶어놓은 상태이고 다른 쪽은 어둠 속에 숨어 다양한 전략전술을 구사한다면 이것은 게임도 아니고 규칙도 아니다"며 국내외 자본간 역차별을 비판했다.

<매일경제>와 <서울경제> 등 다른 경제신문들도 연일 사설과 기획기사 등을 통해 투기자본의 폐해를 집중 부각시키고 있다. 보수적 색채의 일부 메이저 신문도 '국익'을 앞세워 자본의 국적성에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동아일보>가 그렇다.

지난달 28일치 '지배구조 개선했는데 사냥감 되다니'라는 제목의 사설을 통해 "정부는 일부 시민단체 지원을 받아가며 소유와 경영분리 등 대기업 정책을 추진했다"면서 "그러나 정부나 시민단체가 요구하는 기업지배구조가 만능이 아니다"고 지적했다.

신문은 또 지난 8일치 사설 '이제 와서 경영권 방어대책이 필요하다고?'에서 퇴임을 앞둔 강철규 공정거래위원장의 경영권 방어 필요성 발언을 강도높게 비판했다. 10일치 '헤지펀드의 한국공습'이라는 제목의 칼럼에서는 "지나친 국수주의는 경계해야지만 월가의 논리도 만능은 아니다"면서 "아직 경제에 국경은 있다"고 강조했다.

이에 반해 진보성향의 일부 신문은 보수언론과 재벌 등이 사안을 지나치게 확대시키고 있다면서 외국자본을 두둔하는 듯한 논조를 띄고 있다.

<한겨레>는 지난 8일치 신문에서는 "KT&G 사태가 지나치게 과대 포장됐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면서 "재계와 일부 언론이 경영권 방어책이 보완되지 않으면 외국자본이 한국기업을 장악할 것처럼 떠들었다"고 비판했다.

10일치 칼럼 '한국경제의 메기를 죽일 것인가'에서도 "평소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부적'처럼 강조해 온 보수언론과 전경련은 적대적 인수합병을 부정하는 '반시장적' 주장을 공공연하게 편다"면서 "적대적 인수합병이 일어나지 않는 경제는 사회주의"라고 지적했다.

정승일 교수는 "외국자본을 둘러싼 논쟁에서 한국은 서구 유럽 등과는 달리 진보언론이 오히려 자본에 대한 보수적 관점을 유지하고 있다"서 "이는 참여연대 등 개혁성향의 시민단체의 주장에도 드러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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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의 원인은 대중들이 경제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故 찰스 킨들버거 MIT경제학교수) 주로 경제 이야기를 다룹니다. 항상 배우고, 듣고,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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