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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책은 꼭 사서 봐야 한다. 나뿐 아니라 가족 구성원 누구라도 읽어 숙지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되면 책꽂이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책을 꽂아두고 읽기를 종용하는 것도 인생을 좀더 편하게 살 수 있는 처세술의 한 방법이 될 것이다(내가 매일 얼굴을 맞대고 살아야 하는 우리 가족으로부터 쓸데없는 간섭을 받지 않기 위한 일종의 방어 전략이다. 입 아프게 이야기하지 않아도 책이 나를 대신해 이야기 해 줄 수 있으니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그러나 언제나 나는 좋은 책은 도서관에서 빌려 보고 꼭 사지 않아도 될 책을 사는 오류를 범한다. 이럴 때 운명은 꼭 나를 피해간다고 투덜대곤 하지만 언제고 역전될 날도 오리라 믿으며 오늘도 나는 도서관으로 가벼운 발걸음을 옮겨 놓는다.
주간지나 일간지 칼럼에서 가끔 저자를 만나 왔다. 진보적인 인사 가운데 한 사람 정도로 여겼는데 이 책을 통해 뿌리 깊이 박힌 고정관념의 틀을 부수고 나올 수 있게 되었고, 저자에게 주례사를 부탁하고 싶어질 정도로 팬이 되고 말았다.
<여성주의, 남자를 살리다>는 '또 하나의 문화'를 통해 그간 여러 곳에 썼던 글들을 모아 책으로 만든 것으로 연둣빛 바탕의 책은 봄을 겨냥해 출간되었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인권에 대한 이야기들을 술술 풀어낸다. 저자는 자타가 공인하는 유머러스함과 부조리한 사회 현상에 대한 분노 혹은 안타까움을 제대로 버무려 우리에게 의식 전환만이 살길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사랑과 결혼, 출산과 양육에 대한 고리타분한 이야기에 일격을 가하고, 폭력과 편견, 권위에 맞서는가 하면 여성 억압이 곧 남성 자신을 억압하는 일이라는 걸 많은 사례를 들어 환기시킨다. 저자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기실 여성주의는 남자와 여자 모두를 살리는 것이었다. 이처럼 제목은 그냥 붙여지는 게 아닌가 보다.
꼭 때려야 하는가?
아이들은 아무리 부모나 선생님이 잘 교육해도 규칙을 위반하고 실수하기 마련이고 꼭 사고 치게끔 되어 있다. 나름대로 반항도 한다. 그게 정상이다. 그렇다면 그것을 어떤 식으로 수용해야 하는 것일까? 아이들 야단치기와 때리기는 어쩔 수 없는 일일까? … 별다른 설득과 교육 없이 이뤄진 폭력은 정신적 '외상'으로 몸 어디엔가 흔적 없이 남으며 아이들의 자존심에 치명적인 상처를 낸다. 스스로를 존중하는 마음은 사라지며 사물을 이치에 맞게 따져 판단하고 그것에 따라 행동하는 합리적 윤리적 태도 역시 형성되기 어렵다. 야단맞고 자란 아이는 위축되기 쉽고 외부의 자극에만 반응하는 수동적 인간이 되기 쉽다. 또 그만큼 자신보다 약한 자를 똑같은 방식으로 대하기 십상이다. - 본문 중에서
우리가 무심코 '한 대 치는' 게 이렇게 무시무시한 결과를 낳으리라고 상상해 본적이 있는가. 우리는 '사랑의 매'라는 미명 아래 습관화된 매 속에서 자랐고,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받아들이고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는 스스로에게 매질이 돌아가야 하는 건 아닐까. 얼마든지 말로 훈육이 가능하고 저자의 말처럼 '참을성이 없다면 맨발로라도 노래방으로 뛰어가서 10곡만 뽑고 돌아오기'로 하자.
폭력이 무서운 것은 당사자에 그치지 않는 파급효과에 있다. 언제 증상이 나타날지 모르는 잠복 바이러스처럼 어린 영혼의 가슴에 '흔적 없이 남는' 무서운 폭력으로부터 우리 자신과 우리의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우리는 머리로 가슴으로 생각하는 일을 놓지 말아야 할 것이다.
사랑하지 않을 권리, 결혼하지 않을 권리
사랑에 빠지는 일쯤은 누구라도 할 수 있다. 그걸 지켜 나가고 키워 나가는 것은 성숙한 인간의 몫이다. 더구나 사랑의 조건을 만드는 노력은 팽개치고 사랑에만 빠져 있다면 그 결말은 뻔하다. 그 주제에 살림까지 차린다면 허구한 날 술이나 퍼먹고 애인 혹은 아내나 구타하는 아저씨 혹은 비슷한 유형의 아줌마가 되는 건 시간문제다. 사랑은 영혼을 먹여 주지만 사람이 멀쩡하게 행복하게 살려면 쌀도 필요하고 자아실현의 길도 열려야 한다. 후자를 희생하면서 진정한 사랑의 길로 구도자처럼 걸어가는 사람도 훌륭하지만 사랑을 포기하고 홀로 서기 하는 사람의 몫도 인정해 줘야 한다. - 본문 중에서
저자의 말처럼 우리 사회에서는 '사랑하지 않으면 바보나 불쌍한 사람으로 여겨지고 혼자 사는 사람은 뭔가 비정상적이라거나 외로울 것'이라는 편견이 지배적이다. 젊은이들에게는 "애인 있어요?" 결혼적령기의 사람에게는 "결혼 안 해요?" 독신에게는 "혼자 살기에 외롭지 않아요?" 이런 말들은 다분히 인권 침해적인 발언들이다.
질문하는 이들은 악의 없이 하는 질문일지 몰라도 듣는 이에 따라서는 상처 부위에 다시 생채기가 난 것 같은 아픔을 겪을 지도 모른다.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가 맞아 죽듯이 말이다. 문제의식 없이 습관적으로 사람을 대하다 보면 그렇게 자신도 모르는 사이 '실수'하게 된다. 더 큰 문제는 스스로 '실수'한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데 있다. 그래서 이와 같은 책이 많이 팔려야 한다는 역설이 가능하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지극히 당연한 권리, 인권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책장을 덮는 순간 독자들은 더욱 더 자신을 사랑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몸살을 앓게 될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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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주의, 남자를 살리다
권혁범 지음, 또하나의문화(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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