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150만명이 참가한 가운데 프랑스 전역에서 열린 반 CPE 시위.
150만명이 참가한 가운데 프랑스 전역에서 열린 반 CPE 시위. ⓒ 박영신

"최고 성가신 계약"
"지옥을 향한 계약"
"엿 먹이기 위한 계약"
"노예를 위한 계약"

최초고용계약(CPE)으로 프랑스가 들끓고 있다.

연초부터 시작된 반 CPE 시위는 지난 18일(이하 현지시각) 파리 35만 등 프랑스 전역에서 총 150만(프랑스노동총동맹 집계, 내무부 집계 50만)명을 불러모았다. 이는 이틀 전인 16일 시위의 50만(UNEF집계, 내무부 집계 25만)명은 물론, 지난 7일 1백만(프랑스노동총동맹 집계, 경찰집계 40만)명을 훨씬 웃도는 수치로, 시간을 더할수록 기록을 갱신하고 있다. 시위대는 오는 23일 제4차 국민행동을 예고해둔 상태다.

7일 100만, 18일 150만... 점점 달아오르는 반 CPE 시위

사형수 인형. "CPE가 나를 죽였다"라고 쓰여진 글이 보인다.
사형수 인형. "CPE가 나를 죽였다"라고 쓰여진 글이 보인다. ⓒ 박영신
CPE는 니콜라 사르코지 내무장관과 함께 집권당 대중운동연합(UMP)의 강력한 대선 주자로 떠오른 도미니크 드 빌팽 총리가 지난달 16일 발표한 기회균등법 중 하나로, 지난해 발효된 신고용계약(CNE)의 변형이다.

20인 이하 사업장에 한해 수습기간 2년 동안 고용자가 특별한 사유 없이 노동자를 해고할 수 있도록 허용한 CNE와 이번 CPE의 다른 점이라면, CPE는 그 대상을 26세 이하의 청년 노동자로 제한하는 대신 20인 이상의 사업장으로도 확대했다는 것이다.

해고를 용이하게 함으로써 고용자가 갖는 채용부담을 줄이고 고용창출을 장려한다는 게 빌팽의 설명이다. 그는 이를 일컬어 '노동시장의 유연성'이라고 했다.

그러나 CPE는 언제든 고용자가 원하면 별다른 장애 없이 노동자를 해고할 수 있기 때문에 노동자들의 고용 불안을 제도화한다는 비난을 사고 있다. 이유 없는 해고의 권리를 어떻게 인정하냐는 것.

반 CPE 전선은 "학생들을 '크리넥스' 취급한 것"이라고 반발했다. 코 한 번 풀고 쓰레기통에 던져지는 일회용 화장지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 또 CNE나 CPE나 오십보백보인데, 콜레라냐 페스트냐 둘 중 하나를 고르라는 심보에 불과하다고 반발하고 있다. 사회당(PS)의 다비드 아술린 상원의원은 '상사에 아부하고 계산적이며 복종적인 양키'를 양성하는 제도라고 CPE를 맹비난 했다.

18일 시위를 장식한 구호들은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이날 시위에서 대형 쓰레기봉투를 뒤집어쓴 학생들의 구호는 이랬다.

"우리는 일회용 휴지가 아니다!"
"시라크, 빌팽, 사르코지 당신들의 수습기간은 끝났다!"
"빌팽 너는 끝장이야!"


지난해 11월 프랑스를 휩쓴 방리유 소요를 연상케 하는 구호도 있었다.

"빌팽을 초강력 분무기로 청소하라. "

초강력 분무기는 길거리를 청소할 때 쉽게 지워지지 않는 오물을 제거하는 데 쓰는 도구. 사르코지 내무장관은 당시 소요 지역을 초강력 분무기로 청소할 것을 지시해 방리유 젊은이들을 더러운 쓰레기에 비유했다는 원성을 샀다. 당시의 구호도 같았다. "사르코지를 초강력 분무기로!"

시위의 과격화

16일 폭력 사태 후 좌우 골목에 철제 문을 만들어 일반인 출입을 통제하고 있는 소르본 대학.
16일 폭력 사태 후 좌우 골목에 철제 문을 만들어 일반인 출입을 통제하고 있는 소르본 대학. ⓒ 박영신
23일 제4차 국민행동을 앞두고 시위의 폭력화가 물 위로 떠오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물대포를 앞세운 경찰력이 곳곳에서 삼엄한 경비를 펼치는 가운데 진행된 18일 시위는 과격했던 16일 시위보다는 차분했다. 그러나 저녁 6시경 시위대가 해산할 무렵, 종착지인 나시옹 광장에서 시위대를 기다리고 있던 복면을 쓴 100여 명의 젊은이가 경찰에 빈 병을 던지면서 과격화됐다.

이 일로 자동차 한 대가 불에 탔고, 주변 상가의 유리문이 파손됐다. 경찰은 최루탄을 쏘며 진압에 나서 총 103명을 체포했다. 파리 경찰국 발표에 따르면, 복면을 쓴 100~200명의 폭력시위대와 경찰의 충돌로 경찰 7명과 시위대 12명이 부상당했다.

오후 9시30분 경, 100여 명의 학생은 다시 소르본 대학에 집결해 긴장을 가중시키기도 했다. 이날 소르본 대학은 경찰의 바리케이드로 굳게 닫힌 채 일반인의 출입이 통제되고 있던 상태였다.

이틀 전인 16일 시위는 더 과격했다. 총 187명이 체포되는 것으로 마무리된 이날 시위는 지난해 11월 방리유 소요를 연상시킬 정도였다. 소르본 대학 주변의 상가 유리창이 박살나고 최루탄과 돌이 날아들었다.

사건 초반에는 이들이 방리유에서 몰려온 '깡패'라는 설도 있었으나 폭력 시위에 가담한 방리유 청년은 극히 소수였다고. 복면을 쓴 무정부주의자 등 극좌파 활동가 500여 명과 경찰 사이에서 발생한 이날 폭력 사태에서 경찰은 물대포와 최루탄을 쏘며 곤봉을 휘둘렀다.

시위의 장기화 및 과격화는 현 우파 정권을 20년 간 괴롭혀온 악몽을 다시 불러일으키고 있다. 한 번도 대학생들과 싸워서 이겨본 적이 없다는 게 그것이다.

우파정권의 악몽 "아이들과 싸워 이긴 적 없다"

두 아이가 쓰레기통 위에서 시위하고 있다.
두 아이가 쓰레기통 위에서 시위하고 있다. ⓒ 박영신
우파 정권의 악몽은 '대학 자동화', '경쟁력 있는 대학'을 표방하며 1986년 알랭 드바케 대학장관이 발표한 대학 개혁법, 일명 '모노리-드바케 법안'에서 시작됐다.

당시 수천 수백의 젊은이들이 미국식 '돈덩어리 대학'을 거부하며 거리로 몰려나왔다. 그러나 이들은 '극좌 트로츠키파', '무분별한 선동자'로 매도됐으며, <르 피가로 마가진>은 시위대를 '정신적 에이즈 환자'로 몰아붙이기까지 했다. 이 틈을 이용해 극우 시위대가 조직되고 이들은 공권력의 비호 아래 시위를 벌였다.

비극은 시민들의 욕설과 손가락질 속에 대학 개협법 반대 시위를 벌인 지 3주째 되던 날 일어났다. 시위에 참가한 학생 말릭 우세킨이 진압에 나선 경찰의 곤봉에 맞아 죽은 것. 결국 당시 총리였던 시라크는 항복했고 대학개혁법안은 백지화됐다.

1994년 에두아르 발라뒤르 당시 총리는 노동동화계약(CIP)이라는 청년 최저 임금제를 내놓지만 이 또한 여의치 않았다. 고용 장려를 위해 대학 졸업자들도 최저임금 이하의 보수를 받을 수 있도록 조처한 발라뒤르를 붙잡은 것도 시위대였다. 발라뒤르는 결국 그의 오른팔 사르코지 현 내무장관을 예산장관에 임명, 이를 무마하기에 이른다. 즉, 사르코지를 통해 프랑스 전국학생연맹과 비밀협상을 갖고 CIP를 철회한 것이다. '제2의 말릭'을 보느니 일시적인 망신을 택한 것이다.

20년에 걸친 우파 정권의 이 같은 악몽은 "아이들과 싸워서 이긴 일이 없다"는 우스갯소리를 남겼다. 청년층을 향한 우파 정권의 애증도 깊어졌다.

"근본적으로 시위대는 실업에 만족한다. CPE는 리오넬 조스팽(PS) 전 총리가 만든 '청년 고용제'보다는 훨 나은 제도인데 당사자들이 싫다면 어쩔 수 없다. 우리가 어린 애들 돌보기를 그만둘밖에!"

사르코지 내무장관의 측근인 파트릭 드베지앙(UMP) 의원은 반 CPE 시위대를 겨냥해 이같이 일갈했다. 일명 '청춘 혐오주의자' 드베지앙이 묘사하는 오늘날 프랑스 젊은이의 초상은 이렇다.

"젊은이들은 무기력한 동시에 위협적이다. 노력하지 않고 자기주장이 없으며 극단주의에 민감하다."

20년 우파 정권의 오래된 지병이다. 결코, 젊은이들을 신뢰하지 않는 것.

추락하는 빌팽의 선택은?

ⓒ 박영신
한편 지난 19일자 시사 주간지 <주르날 드 디망쉬>는 61%의 프랑스인이 빌팽에 불만을 표시했다는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지난 2월 조사결과 54%에서 7%p가 더 상승한 것. '매우 불만'이라고 응답한 프랑스인도 지난 2월의 15%에서 25%로 상승했다.

빌팽과 함께 2007년 대권을 준비하는 정적 사르코지 내무장관의 반응은 어땠을까. 사르코지는 CPE를 지지하며 빌팽의 손을 들어줬다. 지난해 방리유 소요 당시 강경 발언으로 위기에 몰린 사르코지에 등을 돌렸던 빌팽과 묘한 대조를 이루는 풍경이다.

지난 18일 시위가 성공적으로 끝난 뒤 프랑스노동총동맹의 베르나르 티보 사무총장은 '80%의 학생을 비롯한 70%의 프랑스인이 반대하는 법'을 강행하려는 빌팽의 무모함을 비난했다. 그리고 반 CPE 전선은 18일 저녁부터 20일 저녁까지 정부에 48시간의 생각할 여유를 준 다음 여전히 CPE 철회 의사가 없다면 대대적인 총파업에 돌입할 것이라는 내용의 최후통첩을 전했다. 다음 날인 19일 프랑수아 올랑드 사회당 제1서기는 <주르날 드 디망쉬>를 통해 "빌팽은 불 질러 놓고 산에 올라가 관망하는 방화광 환자"라고 힐난했다.

지난 2004년 연금개혁에 항의해 연일 시위가 이어지자 당시 라파랭 총리는 잠시 보류했다가 모두가 바캉스를 떠난 여름 연금개혁법을 의회에서 전격 통과시켰다. 프랑스 풍자주간지 <르 카나르 앙셰네>는 16일자에서 "CPE도 연금개혁과 같은 길을 걷게 될지도 모른다"고 경고했다.

시라크는 1986년 대학개혁법을 포기한 뼈아픈 기억을 갖고 있다. 1994년 에두아르 발라뒤르는 청년 최저임금제를 철회했다. 빌팽은 CPE를 구할 것인가? 빌팽이 '방화광 환자'로 남을지 우파 정권 역사상 처음으로 '아이들과 싸워 이긴 영웅'이 될지 앞으로 두고 볼 일이다.

CPE 분쟁 일지

○ 1월 16일… 빌팽 총리는 일명 '고용 전쟁'의 2단계로 26세 이하의 젊은이들에게 2년의 수습기간을 강제하고 이 기간에 특별한 사유 없는 해고를 허용하는 최초고용계약(CPE) 계획을 발표. 노조와 좌파 정당은 즉시 빈곤 강화 법안이라며 반발
○ 1월 31일… CPE 계획이 포함된 기회균등법안 긴급 검토, CPE 철회를 요구하는 첫 시위 발생
○ 2월 1일… 시라크 대통령, 집권당 대중운동연합(UMP) 의원들이 모인 자리에서 CPE 옹호 발언
○ 2월 7일 … 21만8700(경찰집계)~40만(노조집계)여 명의 시위대, 프랑스 전역에서 반 CPE 시위
○ 2월 9일 … 좌파 정당의 반대 속에 빌팽 총리 헌법 49조 3항에 의거 기회균등법을 하원에서 통과시킬 것 호소
○ 2월 16일 … 방학 기간임에도 불구하고 반 CPE 시위 전개됨
○ 2월 21일 … 하원, 사회당(PS)이 제출한 불신임안을 거부
○ 2월 23일 … 고등학생, 대학생, 노조가 주축이 된 반 CPE 시위 이어짐
○ 3월 1일 … 프랑스전국학생연맹(UNEF), 전국 13개 대학이 수업거부를 결의했다고 밝힘
○ 3월 6일 … 총 90시간의 논쟁 끝에 상원에서 기회균등법 통과
○ 3월 7일 … CPE 철회를 요구하며 전국에서 39만(경찰집계)~1백만(CGT 집계)명 시위
○ 3월 8일 … 일간지 <르 파리지앙>, 55%의 프랑스인이 CPE 철회에 찬성한다고 발표
○ 3월 9일 … 기회균등법안 의회 통과, UMP 의원 에르베 드 샤레트 CPE 중단 요구
○ 3월 10일 … 프랑스전국학생연맹, 총 84개 대학 중 45개 대학이 수업 거부 중이라 발표. 질 드 로비앙 교육장관, 8개 대학이 폐쇄됐으며 26개 대학이 혼란 상태라 발표
○ 3월 11일 … CPE 철회를 요구하며 소르본 대학을 점거한 학생 200여 명 경찰에 의해 해산됨, 푸아티에에 모인 전국 학생 대표는 총회를 열고 항의 시위 계속할 것을 결의
○ 3월 12일 … 프랑스 민영방송 <테에프1(TF1)> 저녁 8시 뉴스를 통해 빌팽 총리 CPE 개선 의사는 있으나 철회 의지 없음을 시사
○ 3월 13일 … 반 CPE 시위대 꼴레주 드 프랑스 점거, 몇 시간 후 공권력에 의해 해산됨.
○ 3월 14일 … 사회당은 CPE를 헌법위원회에 제소했다고 밝힘, 시라크 대통령, 베를린 방문 중 CPE에 관한 빌팽 총리의 의지에 '전폭적인 지지' 선언
○ 3월 16일 … 전국에서 반 CPE 시위 단행, 분쟁 2개월째인 이날 시라크 대통령은 '가능한 빨리' 대화를 할 것을 주장, <프랑스2> 텔레비전은 국민 대다수인 68%의 프랑스인이 반 CPE 시위에 찬성하는 설문결과 발표
○ 3월 18일 … 전국 150만(CGT 집계)이 참가한 가운데 반 CPE 시위. 정부와 대화의 선결 조건으로 CPE 철회 요구, 이날 시위를 마친 반 CPE 전선은 정부에 48시간의 여유를 주며 오는 20일 저녁까지 CPE를 철회하지 않을 시 전국 총파업에 돌입할 것이라는 내용의 최후통첩 선언 / 박영신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