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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92 장 검저유혼(劍底遊魂)

영락칠년(永樂七年) 칠월(七月).

십만의 정병을 이끌고 파죽지세로 달탄 본아실리(本雅失理)를 정벌하러 떠났던 기국공(淇國公) 구복(丘福)이 이끄는 명군이 패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그것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본아실리(本雅失理)의 전력이라고 해보았자 사실 정병 삼만(三萬) 정도.

영락제가 구복을 정로대장군(征虜大將軍)으로 임명하고 십만의 정병을 내준 것은 본아실리 때문만은 아니었다. 눈에 가시처럼 사사건건 대명에 적의를 보이는 본아실리를 아예 괴멸시킴으로서 달탄과 올량합 등의 다른 부족들까지 항거할 수 없게 만들 속셈이었던 것이다.

허나 구복의 패전소식은 큰 혼란을 야기(惹起)시켰다. 본래의 목적과는 정반대의 결과를 초래한 패전 소식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부정적인 효과를 가져왔다. 십만의 대군으로 삼만 정도의 본아실리 정병에게 패했다는 것은 대명의 군사력이 알려진 것과는 달리 허약하기 짝이 없다는 말이었다.

영락제가 황권을 잡은 이후 지금까지 패전은 거의 없었다. 정화의 수차례에 걸친 남해의 원정 역시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던 터였다. 그런 와중에서 원을 북방으로 몰아낸 이후 첫 번째 대규모 회전이라 할 전쟁에서 완벽하게 패배했음은 나라의 존망을 흔들 정도로 충격적이었다.

더구나 패했다 하더라도 십만의 대군이 전멸을 했다는 것은 정말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었다. 더 나아가 십만을 끌고 정벌에 나섰던 정로대장군 구복이 사로잡혀 참수를 당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더욱 더 큰 충격을 몰고 왔다.

대명 초기 전쟁사 중 가장 치욕적인 참패로 기록된 이 패전은 중원 뿐 아니라 주변국들에게도 많은 악영향을 끼쳤고, 중원 민심이 흉흉해지는 결과를 초래했다.

패한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구복의 경솔한 작전이 주원인이었다. 본아실리의 태사 아로태의 전략에 말려들어 이리저리 끌려 다니다가 병력만 낭비한 채 지리멸멸했던 것이다. 더구나 이동속도가 빠른 본아실리군을 따라잡기에는 대명의 기동력이 현저히 뒤떨어졌다. 그런 아군의 전력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특히 군량과 군수물자의 보급이 지연됨에 따라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패한 것 역시 작전의 경솔함 탓이라고 할 수 있었다.

원의 핏줄을 이어받은 달탄의 전투력은 중원에서 원을 몰아낸 지금에도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여러 부족으로 나뉘어져 있는 그들이 뛰어난 인물을 중심으로 힘을 합친다면 중원 대륙을 쳐내려오는 일은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민심이 동요되고, 쉬쉬하고는 있지만 조정에서도 불안한 상태가 지속되었다. 조신들 중에서도 공공연하게 달탄과 굴욕적인 화친을 해야 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아마 영락제가 대명의 황권을 쥐고 있지 않았다면 화친을 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허나 영락제는 전쟁으로 황권을 틀어쥔 인물이었다. 설사 전쟁에 패해 중원이 달탄에게 정복당한다 해도 전쟁을 일으킬 인물이었다. 그는 대규모 정병을 동원한 친정(親征)을 택했다. 그리고 그것을 공표하기 전에 또 한번의 대규모의 숙청을 감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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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원 정세가 심상치 않아요. 내력을 알 수 없는 자들의 움직임이 파악되었어요.”

단사는 오랜 만에 풍철한과 식사를 같이 하면서 하고 싶은 말을 꺼냈다. 수시로 변화되는 상황을 보고하듯이 말하기는 했지만 이제는 분명 대책을 강구할 시기였다. 영주와 연락이라도 되면 좋으련만 태행산 기슭에서 영주의 소식을 접했다는 백렴의 전갈 이후로는 더 이상 소식을 전해 듣지 못했다.

“어느 정도인데....?”

“걱정스러울 정도예요. 지금까지 파악된 바로는 인원이 대개 오십여 명 정도 되는 무리들이 이곳저곳에서 발견되고 있어요. 적어도 십여 개 무리가 넘는 것 같아요.”

단사는 풍철한과는 달리 염려스러운 기색을 띠고 있었다. 그녀는 모든 정보를 종합해 판단한 결과 매우 당황스러웠다. 갑작스럽게 그들이 어디서 나타난 것일까? 더구나 달탄에 패했다는 소식으로 가뜩이나 민심이 흉흉해지는 판국에 내력을 알 수 없는 자들의 등장은 무척이나 위협적이었다.

“전혀 짐작이 가지 않는 것이냐?”

“하나같이 범상치 않은 고수들이에요. 몸이 날래고 은밀하여 파악하기 쉽지 않군요. 조사하다가 벌써 우리 측 인원 네 명이 희생되었어요.”

“네 명씩이나?”

단사가 거느리는 수하들이 한결같이 초절정고수는 아니다. 허나 그들의 주 임무는 중원의 움직임을 감시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들의 신원과 내력은 모두 비밀이고, 그들 역시 자신의 몸 하나 정도는 빼낼 정도의 인물들이었다. 그런 그들이 네 명씩이나 당했다는 것은 상대가 상상 외로 깊은 심기와 절정의 무공 소유자들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확실치는 않지만 그들이 무림문파나 세가 쪽으로 움직이는 것으로 보아 공격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죠. 더구나 문제는 그들 중 한 무리가 우리 쪽으로 오고 있다는 정보예요.”

“우리의 존재를 알고 있다는 말이냐?”

“느낌이 안 좋아요.”

단사의 입에서 저런 말이 나온다는 것은 정말 상황이 악화되고 있다는 의미다. 그제 서야 풍철한은 얼굴을 굳히며 다시 물었다.

“그들일 것 같으냐?”

“지금이 움직일 적기 아닌가요?”

풍철한은 수저를 놓았다. 배는 고팠지만 식욕이 갑자기 떨어졌다. 단사는 확신하고 있다. 사실 그런 규모의 인원이 열무리가 넘게 움직인다면 분명할 것이다. 지금까지 수십 년간 은밀하게 움직이던 그들이다.

“영주께서는?”

“천마곡으로 들어갔다고 들은 이후로 소식이 없어요. 백렴 오라버니가 따라 간다고 했는데 아직까지 만나지 못한 것 같아요.”

“주모는?”

풍철한이 문득 생각난 듯 물었다.

“다행히 오늘 저녁이면 이곳에 당도하실 것 같아요.”

“마중 나가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

풍철한이 중얼거렸다. 매사에 조심하는 것이 좋다. 상황이 급변하고 있어 도저히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들다. 이럴 때는 몸을 낮추고 움직이지 않는 것이 최선의 방책이라는 것을 그는 직감적으로 알고 있다.

“우리 쪽으로 향하고 있다는 그들의 규모는 어느 정도냐?”

“자세히는 파악되지 않았어요. 하지만 다른 무리들과는 달리 꽤 규모가 큰 것 같아요. 더구나 가까이 접근하기 어려울 정도의 고수들로 구성되었다는 보고예요.”

“승부를 보자는 뜻이군. 지금 현재 우리의 전력으로서는.....?”

“지금만 가지고는 어려워요.”

단사는 간단하게 말했다. 어렵다는 말은 여러 가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이 장원에 있는 전력만으로 이곳을 노리는 자들을 막기 힘들다는 의미도 있지만 전체적으로도 균대위의 힘이 열세라는 것을 의미한다.

“다른 위장들은?”

“이미 조대주께서는 오늘 저녁이나 내일 일찍 돌아올 거예요. 황오라버니와 장오라버니께는 이미 연락해 두었어요. 내일 오후 정도면 도착할 거예요. 문제는 그들이 언제 공격해 오느냐는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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