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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4일 <동아일보> 여기자를 성추행한 이후 잠적했던 최연희(전 한나라당 사무총장) 의원이 20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공개 사과했지만, 의원직은 계속 유지할 의사를 밝혔다. 최연희 의원이 기자회견장에 들어서고 있다.
지난달 24일 <동아일보> 여기자를 성추행한 이후 잠적했던 최연희(전 한나라당 사무총장) 의원이 20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공개 사과했지만, 의원직은 계속 유지할 의사를 밝혔다. 최연희 의원이 기자회견장에 들어서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기자가 측근을 통해 기자회견 소식을 들은 건 10시30분께. 이후 의원실로 확인 전화를 했으나 보좌관들조차 "오고 계시는 걸로 알고 있다"며 갑작스레 결정된 기자회견에 당혹스런 기색이었다.

이후 10시44분께, 한나라당 대변인실에서 출입기자들에게 일제히 '최연희 의원 11시 기자회견' 문자메시지가 보내졌다. 기자회견을 불과 20분도 남기지 않은 상태에서 기자들에게 통보가 이뤄진 것이다. <동아일보>나 피해 여기자쪽에도 언질은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국회 본청 브리핑실 앞에는 50~60여명의 기자들이 모여들었고 입구에서 들어오는 최 의원을 먼저 따라잡기 위한 취재경쟁이 가열되기 시작됐다.

#2. 6분

출입구에서부터 사진기자들의 경쟁적인 플래시 세례를 받은 최연희 의원이 브리핑실에 등장, 기자회견이 시작된 건 11시1분경이었다. 최 의원은 '사죄드립니다'라는 제목의 A4 용지 한장 짜리 회견문을 천천히 읽어 내려갔다.

그렇게 읽어내려 가는데 소요된 시간은 약 6분. 최 의원은 회견문 낭독이 끝나자마자 기자들과의 질의응답도 생략한 채 자리를 떴다.

회견문을 낭독하는 시간보다 최 의원이 회견장을 빠져나가 출입구를 통해 자신의 차량에 오르는데 걸리는 시간이 더 길었다.

기자들은 등을 보이고 나가려는 그를 향해 "의원직 사퇴는 안하는 건가", "성추행 사실을 인정하나" 등등 질문을 쏟아냈지만 일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보좌관인지 국회 경위인지 좌우에서 그를 호위하는 인사들과, 한마디라도 따려고 하는 기자들과의 몸싸움 속에 어렵사리 국회를 빠져나갔다.

민주노동당 당직자들이 차로 향하는 최연희 의원에게 사퇴하라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민주노동당 당직자들이 차로 향하는 최연희 의원에게 사퇴하라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3. 한마디 "아이 참..."

기자회견 소식을 전해 듣고 가장 빨리 움직인 건 기자들 외에 민주노동당 여성위원회 여성들이었다. 5명의 여성당원들은 급조된 '최연희 사퇴' 레드카드를 들고 회견장 밖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최 의원이 나오자 "당장 사퇴하라!", "쪽팔리지도 않냐!", "의원직 내놔라" 목청 높여 소리쳤다.

이들은 '집요'했다. 기자들과 함께 몸싸움 대열에 합류해 최 의원 뒤통수를 향해 "사퇴하라"를 연신 외쳐댔다. 그러자 최 의원도 앙 다문 입을 열었다.

"아이 참…."

최 의원 바로 옆에 있던 몇몇 기자들 정도만 들을 수 있는 소리였다. 그는 민주노동당 여성들을 흘깃 보더니 이같이 짜증스런 반응을 보였다.

최 의원이 차문이 열리기 직전 '한 말씀 해달라'는 기자들의 요청에 "더 이상 할 말 없어요"라는 한마디만 남기고 차에 올랐다. 그를 실은 승용차가 출발하자 방송 기자들 사이에선 "싱크 땄어(녹음 됐어)?"라는 말이 오가며 최 의원의 '한 마디'에 "하나는 건졌네"라는 안도하는 표정을 보였다.

#4. 쓰나미

최 의원 다음으로 기자회견을 준비중이던 박용진 민주노동당 대변인은 "한차례의 쓰나미가 지나갔다"고 현장 분위기를 표현했다.

이제 진정하고 최 의원의 사죄문을 찬찬히 뜯어보자. 그가 자신의 입으로 성추행 사실을 인정하는지, 의원직 사퇴를 할 것인지 등에 대해 즉답을 하지 않았으니 '독해'가 필요한 대목이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그가 인정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흥미로운 점은 최연희 의원이 구사한 사죄문에 들어간 '단어'들이다. 최 의원은 '사죄드립니다'라는 제목의 입장문을 작성했으나, 무엇을 사죄하는지에 대한 점은 교묘히 에둘러 갔다.

우선 여기자에 대해 '당사자'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성추행이 '사실'이라면 여기자는 '피해자'가 되는 것이고 최연희 의원은 '가해자'가 되는 것인데, 최 의원은 "당사자인 여기자분"이라고 표현했다.

그 다음, '술자리에서의 실수'라는 점을 드러내며 자신의 '부덕'을 강조했다. 최 의원은 사죄를 한다면서도 "아무리 술자리에서의 과음상태라 하더라도 저의 큰 잘못과 과오로 견디기 힘든 어려움을 드려 머리 숙여 사죄드립니다"라고 말했다. 또한 "본인의 부덕으로 동아일보와 기자분 모두에 누를 끼쳐 송구하게 생각하며 사과드립니다"라고 말했다. 성추행은 '범죄'인데 '술자리 실수'이자 '부덕의 소치'라는 점으로 비껴갔다.

그는 "저를 아시는 모든 분들께 한번만 물어봐 주시기 바랍니다, 여태까지 그런 자세와 마음가짐으로 세상을 살지 않았습니다"라고 항변했다. 사죄는 하지만 자신은 성추행을 저지를 그럴 사람이 아니라는 결백에 가까운 호소다.

그러면서 법정에서 보자고 했다. 최 의원은 "법에 따른 판단을 따르겠다"며 "국회의원 최연희에 대한 최종 판단을 그 때까지만이라도 잠시 유보해주실 것을 간곡히 호소드립니다"라고 말했다. 따라서 의원직을 고수한채 법적 시비를 가리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물론 누구에게도 최종 법의 심판이 내려지기까지는 '무죄추정'의 원칙이 적용되어야 한다. 하지만 최 의원은 비겁했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하면서도 "음식점 주인인줄 알았다"는 해명을 했고, 성추행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면서도 백배 사죄하는 제스처는 취했다.

대체 성추행을 했다는 것인가 안했다는 것인가. 그가 인정한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최연희 의원이 보좌진의 부축을 받으며 취재진을 뚫고 차로 향하고 있다.
최연희 의원이 보좌진의 부축을 받으며 취재진을 뚫고 차로 향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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