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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동네 사람들과 함께 만들어서 먹었던 고소했던 그 두부의 맛이 그리워지는 것이었다. 득달같이 작업장으로 달려가 콩을 물에 담가서 불려 놓았다. 단지 콩을 불려 놓은 것만으로도 가마솥에서 막 퍼온 뜨끈한 순두부 냄새가 코끝에 스치는 것 같았다.
솔직히 나는 두부를 만드는 방법을 잘 모른다. 그동안 우리 집에서 두어 번 두부를 만들기는 했지만 재료와 장소만 제공했을 뿐 만드는 과정을 자세히 보지는 못했다. 그래도 나한테는 믿는 구석이 있었다.
"오늘 두부 만들려고 콩 담가 놨는데 저녁 때쯤에 갈아다 놓을 테니 이따가 좀 와주세요."
"그려, 오후에 최영숙이 데리고 가볼게."
63세 김부자 아줌마와 49세 최영숙 아줌마는 우리 동네에서 나와 가장 친한 사이이며 우리집 일을 도맡아 해주는 분들이다. 이분들과 우리집 재산인 다섯 개의 가마솥이 있으니 두부 만들기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마침 그날은 동네 교회에서 목사님이 심방을 하는 날이라, 이 아줌마들이 낮에는 시간을 내지 못한다는 게 좀 아쉽기는 했다.
예전에는 제사라든가 명절이 닥쳐오면 콩나물을 기르고 두부 만드는 일을 제일 먼저 했다고 한다. 내 기억에도 명절날 할머니 댁에는 언제나 윗목 한구석에 검은 천을 덮고 있는 콩나물 질시루가 자리잡고 있다. 물론 할머니가 만든 두부에 대한 기억은 더 특별했다.
할머니가 만든 두부는 엄마가 가게에서 사온 두부처럼 표면이 매끄럽고 부드럽지는 않았다. 모양새부터 곰보빵처럼 거칠었고 입안에서 씹히는 질감도 단단했지만 맛 하나만큼은 고소하면서도 코끝에서 끌리는 맛이었다.
어릴 적에는 그 맛의 정체를 모른 채 할머니가 만든 두부를 먹었지만 나이가 들어가면서 우리 할머니 표 두부 맛이 그리워지곤 했다. 유기농 두부니, 100% 국산콩 두부니 하는 것들을 아무리 먹어 봐도 우리 할머니가 만들었던 두부의 맛에 비할 수 없었다.
그런데 이렇게 시골 살이를 하게 되면서부터 동네 사람들이 우리 집 가마솥에서 만들어 준 두부를 먹으며 비로소 어릴 적 할머니가 만든 두부의 독특한 맛과 질감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 그것은 장작 가마솥의 그을음 냄새가 밴 두부였던 것이었다.
집에서 손수 만든 두부는 도시 내기인 나한테는 유일하게 시골에 대한 향수가 있는 음식인 셈이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두부를 만들 때마다 하필이면 사정이 있어 내가 전 과정을 지켜보지 못했다. 저녁 무렵, 불린 콩을 가지고 방앗간에 갔다.
"어째, 덜 불린 것 같다. 이거 얼마나 불렸어요?"
방앗간 주인이 내가 가져온 콩을 만져 보더니 난색을 표했다.
"아침에 담갔다가 가져 온 건데요."
"어쩐지… 꼬박 하루는 불려야 하는데 아침에 담갔으니 덜 불었지. 이런 거 갈면 비지가 많이 나와서 두부가 얼마 나오는데… 그래도 갈아 갈래요?."
여기서부터 나의 첫 두부 만들기 도전은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우격다짐으로 갈아온 콩을 가져다 놓고 김부자 아줌마한테 전화부터 걸었다.
"지금은 못 가는데. 오늘 저녁에 시아버지 기제사여. 그래서 내가 최영숙이한테 먼저 가보라고 했으니까 둘이서 불이라도 먼저 때고 있어."
겨우내 '두부 한 번 만들어 먹자'고 노래를 불렀던 김부자 아줌마였는데, 하필이면 기제사가 걸렸단다. 가마 솥 하나만 믿고 콩부터 담갔던 '나의 첫 두부 만들기 도전'은 그렇게 시작부터 신통치가 않았다.
최영숙 아줌마가 우리 집에 왔을 때는 해가 완전히 기울고 달빛이 우리 집 작업장 지붕 위를 그윽하게 비출 때였다. 가마솥에 우유처럼 뽀얗게 갈아진 콩물을 붓고 아궁이에 마른 솔가지 넣고 불을 붙였다. 두부 만들기의 첫 과정에 드디어 접근한 셈이었다.
"물을 얼마나 더 잡아야 하지? 실은 내가 스물다섯 살 때 한 번 만들어 보고 오늘이 처음이라…."
"그럼 아줌마도 두부 만드는 거 잘 모르는 거잖아!"
"만드는 거야 알지만, 하도 오래돼 놔서 기술이 없는 거지. 부자 언니가 9시쯤에 온다고 했으니까 우리는 그때까지 불이나 때고 있자고. 그런데 두부 짜는 자루랑, 두부 누르는 상자나 면 보자기 같은 거는 다 있남?"
"있기는 있는데 한 장씩밖에 없거든요. 콩을 10Kg씩이나 갈았더니 두 판도 더 나올거 같네요."
"그럼 면보자기도 두 장이 필요한데…."
"마침 우리 애들 기저귀로 썼던 천이 있으니까 내가 얼른 바느질해서 만들어올게요."
그렇게 해서 나는 한밤중에 장롱 깊숙이 처박아 놨던 아이들 기저귀를 찾아서 바느질을 하는 소동을 벌이고, 최영숙 아줌마는 가마솥에 불을 지폈다. 내가 면 보자기를 만들어서 작업장으로 나왔을 때, 솥에서는 심상치 않은 냄새가 진동했다. 최영숙 아줌마는 혼자 가마솥 콩물이 타지 않게 저으며 아궁이의 불까지 보느라 진땀을 빼고 있었다.
"아이고 탄내가 진동하네. 한 사람은 안 타게 계속 휘젓고 한 사람은 아궁이를 보고 해야지 뭣하고 있댜!"
드디어 김부자 아줌마가 나타나 우리의 우왕좌왕 두부 만들기에 활력을 불어 넣어 주는 듯했다.
"제선 엄마는 불 그만 때고 두부 짤 채비 좀 갖춰줘."
그런데 김 부자 아줌마가 휴대폰을 꺼내더니 어디론가 전화를 거는 것이었다.
"형님 안 주무셨슈?… 간수는 얼마나 둘러야 된대유?… 그리고 물을 더 잡아야 한대유? 안 잡는 거래유?"
전화의 상대는 30년 동안 두부 장사를 해서 이름조차 '두부집'으로 불리는 동네 할머니였다. 김부자 아줌마 역시 두부를 만드는데 경험이 부족해서 자신이 없었던 것이었다. 알고 보니 두부를 만들겠다고 모인 세 여자가 모두 두부 먹는데 눈이 멀어서 만들기를 우습게 봤다가 헤매고 있었던 것이었다. 두부의 고수한테 한바탕 코치를 받은 김부자 아줌마를 중심으로 우리의 한밤중 두부 만들기는 계속됐는데….
끓인 콩물을 짜던 자루가 낡아 찢어지는 통에 우리의 두부 만들기는 다시 한번 난관에 부딪혔다. 서로 경험이 없어서 간수의 양을 가지고 티격태격하느라, 너무 시간을 끌어서 뜨끈한 순두부는 한 숟가락도 맛보지 못했다. 간신히 두부를 굳히는 틀에 앉혀 놓고 나니 자정을 넘어 새벽 1시에 가까운 시간이었다.
그렇게 우왕좌왕하며 만든 두부의 맛은 과연…. 입맛을 돋우는 은은한 그을음 내가 아니라 아예 탄내가 나서 먹기 쉽지 않았고 간수의 양 조절에도 실패해 두부가 굳은 떡만큼이나 딱딱해져서 오래 씹어서 먹을 정도였다. 그래도 우리 집에서 두부를 만들었다는 소문이 나서 두 판이나 만든 두부로 동네잔치를 벌일 수밖에 없었다.
"탄내가 좀 나기는 나네. 그래도 맛있네. 요즘에 국산콩으로 가마솥에 쑨 두부를 맛보기가 어디 쉬운가."
동네 사람들은 한결같이 이런 말로 우리 세 여자의 '실패작 두부'에 대해 격려를 해주었다. 덕분에 우리는 기죽지 않고 다음 기회에는 정말로 맛있는 두부를 만들어 다시 동네잔치를 하기로 했다.
덧붙이는 글 | 전원주택 라이프 4월호에도 송고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