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위 '운동권 학생회'의 등록금 인상 반대 주장이 최근 별로 호응을 얻지 못하는 듯하다. 그도 그럴 만하다. 요즘 같은 무한 경쟁시대, 세계화 시대, 신자유주의 시대에는 역시 돈이 제일이다. 아무리 이념이 좋고, 이상이 좋고, 제품이 좋고, 아이디어가 좋아도 자본이 없으면 말짱 다 '개뿔'이 된다. 자본이란 이미 '성실'이나 '근면'과 같은 정서적인 요소를 뛰어넘어 가장 중요한 발전 요소가 되었다. 그 누구도 이러한 분위기에 반대하기가 힘들다. 돈으로 만들어낸 확실한 결과물들을 우리는 수없이 확인하면서 살고 있으니 말이다.
이쯤 되면 등록금을 올려서라도 학교를 발전시키는 것이 어떤 면에서 보더라도 충분한 설득력을 가지는 것처럼 보인다. 어디 돈으로 발전하는 것이 대학교뿐이랴. 돈이 있어야 축구도 잘하고, 야구도 잘하고, 공부도 잘한다.
하여간 라면 먹고 운동하던 임춘애(86년 아시안게임 여자육상 3관왕)씨의 시절은 이미 지나간 지 오래다. 가난한 고학생의 자수성가 미담도 먼지 풀풀 나는 옛 이야기가 된 지 오래고 이제는 강남의 부자 자식이 공부도 잘하는 시대다. 그나마 등록금 올리지 말자는 소리가 아직도 산발적으로 계속되는 것은 거창한 철학이나 교육이념이라기보다는 당장 내 돈 많이 나가는 것에 대한 반발에 불과한 것 같다.
그런데 나는 등록금 인상을 반대한다. 나는 우리나라가 발전하는 것을 딱히 싫어하는 사람도 아니고 교육 현장 또한 경쟁논리가 엄연히 지배한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못한다. 게다가 학교가 발전하기 위해서 돈이 있어야 한다는 점에 별 뾰족한 반론이 없다. 지겨운 애증의 관계를 가진 출신 학교에서 교수를 하는 나로서는 내 직장이자 모교인 이놈의 대학교에 느껴지는 정이 징그러울 정도로 많다. 학교가 발전하여 내 후배이자 제자들이 정말이지 세계적인 사람들이 되기를 그 누구보다 바란다. 그런데도 나는 대학교의 발전을 위해서 등록금 인상을 반대한다.
대학교수 월급이 너무 많다
내가 다니는 대학의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 내가 생각할 때 대학교수의 반은 월급을 너무 많이 받고 있다. 하는 일 없이 수십 년 동안 같은 내용을 앵무새처럼 강의하고 그나마 좀 힘들면 수업을 늦게 시작하거나 일찍 끝내고, 이도 재미없으면 하루는 술집에서 수업을 하는 센스, 동창회 다음날 숙취가 있을 때 휴강을 하는 것은 당근이다.
일주일에 3~4번 학교에 나오고 나머지는 연구한다는 거창한 핑계로 집에 가서 빼놓지 않고 연속극 시청을 하면서도 연봉 7, 8천만 원이 훨씬 넘는 교수들이 있다. 요즘은 여러모로 눈치를 주는 바람에 이런 현상이 줄어들기는 했지만 내용면에서는 별반 다를 것이 없다. 물론 각 대학교마다 사정이 다르고 전공분야에 따라서도 차이가 많으며, 개인적인 차이는 이보다 훨씬 크다. 그렇지만 내가 이리저리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대학교수의 반수 이상은 노동에 비하여 받는 월급이 너무 많다.
교수 연봉을 시간강사들과 비교해 보면 이는 더욱 극명하게 드러난다. 최신 학문으로 어렵게 학위를 받은 시간강사 중엔 학문적인 호기심과 열정으로 똘똘 뭉친 이들이 참 많다. 물론 모든 시간강사가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열의와 실력을 다 갖춘 시간강사들이 즐비하다. 오죽하면 남산에서 돌을 던지면 '놀박'(노는 박사)머리에 가서 맞는다는 자조적인 농담이 생겼을까. 그런 '놀박'들이 이 학교 저 학교 돌아다니면서 3~4과목을 한다고 하더라도 방학 동안에 월급을 못 받는 것까지 따지면 연봉 2000만원을 넘기기 힘들다.
그나마 전임교수들의 갖은 비위를 맞춰 강의를 문제없이 잘 맡은 경우에 이 돈이 가능하다. 책의 판권과 글 원고료 등을 보태면 그런 대로 상황이 나은 경우도 있다. 요즘 늘어난 여러 프로젝트에 연구원으로 참여하면 좀더 안정적으로 월급을 받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어디까지나 정규직은 아니다. 프로젝트가 끝나면, 그리고 한 학기가 지나고 다음 학기에 강의 배정을 받지 못하면, 명예만을 쳐다보며 손가락을 빨아야 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이런 시간강사들에 비해 정규교수들의 월급은 턱없이 많다. 최소한 반 수 이상의 교수들은 그 징그러운 기득권을 거머쥔 덕택에 이런 저런 형식적인 과정을 거쳐 정년보장을 받게 되고, 쌩쌩 놀면서도 시간강사들에 비해 수십 배라고 할 수 있는 경제적, 정신적, 환경적인 혜택을 누린다. 그리고 그것이 고스란히 학교 재정으로 충당되고 있다.
학교 재정은 학생들 등록금과 국가나 기업, 단체 지원금 그리고 재단 지원 등으로 이루어진다. 그런데 출자를 많이 하는 재단도 있지만 대부분 등록금과 지원금 등이 대학교 재정의 큰 부분을 이룬다. 대학교 재정이 학생과 국민들의 세금으로 유지된다고 하는 점에는 이견이 있기 힘들 것이다.
등록금 인상 이전 강사 처우 개선부터
등록금을 인상하기 이전에 이러한 불합리를 변화시켜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밑 빠진 독에 물붓기가 된다. 등록금을 인상하기 전에 놀고먹는 교수들의 월급을 낮춰서 열심히 연구하고 강의하는 강사들의 처우를 개선해야 한다. 대학교 발전에 필요한 다른 곳에 먼저 돈을 써야 한다. 그리고도 돈이 모자라 등록금 인상이 필요하다면 그때 가서 진지하게 논의를 해봐야 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대학교 예산의 가장 많은 부분이 인건비로 지출되는 이 상황에 무늬만 학자고 교수인 엉터리를 위해서 학생들의 돈과 국가 세금을 축내는 일이 계속되는 한 등록금 인상은 재고되어야 한다.
교수 인건비 이외에 대학교 지출내용의 다른 많은 부분에서도 이러한 현상이 없을 수 없다. 구조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대학교 내에 존재하고 있는 고질적인 비합리성과 비효율성, 비민주성 등을 본다면 내가 따져볼 수 있는 교수인건비 이외에도 개선되어야 할 문제들이 산재돼 있다.
비싼 돈 주고 과외를 시킨다고 다 효과가 나는 것은 아니다. 공부하기 싫은 놈 붙잡고 비싼 과외를 했을 때, 그걸 소위 '돈지랄'이라고 한다. 당장 뭔가 조금 나아 보일런지도 모른다. 비싼 과외라도 시키면 그래도 좀 공부를 하는 듯한 환상이라도 심어주려나? 여전히 근본적인 문제를 안고 있는 이상 등록금을 인상해서 대학교 재정을 늘린다고 하여도 큰 효과를 기대하기 힘들다. 밑 빠진 독에 물붓기란 말은 이때 하는 것이다.
나는 대학교 등록금 인상을 반대한다. 나는 엉터리 교수들이 발붙이고 있는 우리 대학의 현실을 해결하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한다. 나는 실력 있고 열정을 가진 강사들은 기초적인 생계가 위협을 받는데도 전임교수들은 실컷 놀고도 몇 배에 달하는 월급을 정년 때까지 보장받는 현실을 바꾸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런 저런 부정과 비리가 여전히 존재하는 대학교의 구조적인 문제점이 먼저 고쳐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고쳐서 바로 잡은 후에 본격적으로 발전을 위한 재정이 얼마나 필요한 건지 진지하게 논의해 보아야 한다. 밑 빠진 독에 물을 부어대기 위한 등록금 인상, 그래서 반대한다.
덧붙이는 글 | 한겨레 블로그에도 올렸습니다.
송영복 기자는 서울소재 대학교수입니다